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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북한 축구 대표 출신 안병준…그리고 세 개의 조국

[취재파일] 북한 축구 대표 출신 안병준…그리고 세 개의 조국
2020년, 안병준에겐 생애 최고의 한 해였다. 프로축구 2부리그 수원FC의 최전방을 누비며 26경기 21골. 놀라운 득점 행진으로 득점왕을 거머쥐었다. 마지막 골은 경남과 승격 플레이오프. 팀의 승격을 결정짓는 '극장골'이었다. 2부리그 시상식에서 안병준은 득점왕, 베스트11, MVP '3관왕'을 달성했다. 압도적인 지지로 K리그 사상 첫 북한 대표 출신 MVP가 됐다.

곧이어 '최초'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했다. KFA(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손흥민, 손준호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북한 대표 출신 선수가 KFA 올해의 선수 투표에서 표를 받은 건 안병준이 처음이다. 모순이다. PRK(북한축구협회) 성인 대표팀 경험이 있는 안병준은 국제연맹 규정상 KFA 대표 선수가 될 수 없다. 기자단 투표에선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축구협회 기술부문 전임지도자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아 합산 결과 3위가 됐다. 후보를 특정하지 않고, 올 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한국 선수' 3명을 뽑는 선정 방식이 논쟁을 야기했다.

KFA 올해의 선수는 기자단 투표와 협회 기술부문 투표 결과를 합산해 선정한다

안병준에게 표를 준 KFA 기술위원들은 그를 '한국 선수'로 봤다. 역설적이다. K리그에서 안병준은 외국인과 한국인의 경계에 있다. 이적료 규정을 적용할 때는 외국인 선수로 분류되지만, 아시아 선수 1명을 포함해 팀 당 4명까지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 쿼터를 따질 때는 한국 선수로 간주된다.

● '세 개의 조국, 그리고 축구'

안병준은 재일교포 3세다. 제주에 살던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대한해협을 건넜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안병준에겐 앞서 K리그를 누볐던 북한 대표 출신 안영학이 그랬듯 3개의 신분증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여권인 여행증명서, 북한 여권, 일본의 재입국허가서. 조선학교에서 축구 선수 꿈을 키운 그에게는 세 갈래 길이 있었다. 대한민국, 북한, 그리고 일본 국가 대표 선수. 태극마크를 달았던 박강조, 귀화 뒤 일본 대표가 된 이충성과는 달리 안병준은 17살이 되던 2007년, 북한 대표 선수가 됐다.

2007년 제주에 방문한 안병준 모습

북한 대표로서 처음 참가한 국제대회는 FIFA 17세 이하 월드컵이었다. 개최국은 우리나라, 북한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린 곳은 공교롭게도 안병준 조부모의 고향, 제주였다. 태어나서 처음 제주 땅을 밟은 안병준은 유독 표정이 밝았다. 다소 긴장한 기색의 동료와 분명한 대조를 이뤘다. 13년이 넘게 흘렀지만 그는 어제 일처럼 기억한다.

"여기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특별한 기분. 올해 제주 원정 때마다 그런 느낌이 또 있었습니다."

그때는 좋은 기억을 남기진 못했다.

"한국에 와서 첫 훈련 때 발목을 크게 다쳤어요."

당시 북한은 참가국 가운데 가장 먼저 들어와 대회를 준비했다. 안병준은 부상을 쉽게 털어내지 못했다.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고 호텔에서 엄청 울었어요."

북한은 16강에 진출했지만 안병준은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그리고 꼭 10년 뒤. 또 한 번 대한민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는다. 일본 J리그에서 뛰며 성인 대표로 성장한 그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한국전에 후반 28분 교체 투입되며 생애 첫 남북대결을 치렀다. 조선학교 후배들이 큰 목소리로 '안병준'을 응원했다.

"경기 분위기도 그렇고 정말 긴장해서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상대가 한국이라고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어요."

우리나라가 공격을 주도했지만 북한도 탄탄한 수비로 버텼다. 후반 19분에 나온 북한의 자책골이 이날 나온 유일한 골이었다.

"제 힘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낀 경기였어요."

한국 축구와 세 번째 인연은 금세 찾아왔다. 이듬해 그는 J2리그 구마모토에서 뛰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그해 겨울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K리그 2부리그 수원 FC의 러브콜이었다. ▶ [2020.11.30 8뉴스] 북한 대표 출신 안병준, K리그2 '최고의 별' 등극

● 2년간의 한국 생활…그리고 가족

선뜻 한국행을 결심한 건 아니었다.

"아내와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우리가 조선학교에서 우리말과 글을 배웠으니 소통은 어렵지 않지 않겠냐'며 아내가 용기를 줬지요."

재일교포 출신 북한대표팀 선배 정대세와 안영학도 적극 추천에 나섰다.

"아이들은 우리말을 전혀 못했는데 어린이집, 유치원에 보내는 것도 걱정이 됐죠. 아내 역시 친구 한 명 없는 한국에 저만 보고 함께 온 건데...그런 면에서 아내에게 고맙고, 많이 존경해요."

그의 부인과 자녀는 모두 한국 국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매운 음식이요."

마스크에 가렸지만 가볍게 웃는 표정으로 "음식 주문 전에 '이거 매워요?'라고 물으면 하나도 안 맵대요. 근데 저와 아내에겐 너무 매운 거예요"라고 말했다. 어려운 질문을 재치있게 피해나가려는 기색이 느껴졌다. 가족사진을 보여줄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난처해하며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의 가족이 우리 사회에서 받았을 편견의 시선, 그것을 걱정하는 가장의 책임감이 엿보였다.
앞서 이충성은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시절을 이렇게 떠올렸다.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제 편이 되어줄 거라 생각해서 한국에 갔다. 그런데 '자이니치 놈'이 여기 왜 왔냐고 하더라."

더 충격적인 말도 들었다.

"반쪽바리.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세계관이 깨진 공허함이 느껴졌다."

북한 대표 출신 안영학도 차별을 피할 수 없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동안 K리그에서 뛰고도 이후 한동안 다시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동료 선수들에게 청첩장을 받았는데, 여행증명서가 나오지 않아 3~4년가량 한국에 올 수 없었습니다.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한국에 못 간다는 걸 알았을 때는 안타깝고 섭섭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들은 남(南), 북(北), 일(日) 모두로부터 이방인이었다.

● 2021년, 도전의 해

최근 일본에서 방송된 스포츠용품사의 광고가 뜨거운 감자였다. 차별과 편견을 참고 지내야 했던 재일교포 축구선수가 '있는 그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도전을 이어간다는 내용이다. ▶ 광고 보러 가기

안병준도 2021년, 새로운 환경에 맞서 더 큰 도전에 나선다. 먼저 강원으로 이적해 K리그 1부리그 데뷔를 준비한다. 조나탄과 말컹 등 2부리그 득점왕 출신으로 1부에서도 연이어 득점왕에 오른 사례가 있지만 안병준은 신중하다.

"K리그2에서 잘했다고 K리그1에서도 잘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강해져야 합니다."

북한 대표팀에 대한 생각도 궁금했다. 카타르월드컵 2차 예선에서 한 조에 속한 남과 북은 올해 우리나라에서 맞대결이 예정돼 있다.

"만약에 북한 대표팀에 다시 뽑힌 다면, 그래서 한국전에 나설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특히 일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 재일교포 동포들이 많이 기뻐해 줄 거라 생각해요."

북한 대표 출신 K리거는 안병준이 네 번째다. 안병준은 K리그에 온 뒤로 대표팀 부름을 받지 못했다. 앞서 K리그 소속으로 북한 대표팀에 차출된 건 안영학이 유일하다. 북한 축구 소식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뛰는 선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고 한다. 안병준이 다시 북한 대표가 된다면, 또 한 번 차별과 편견을 극복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다.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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