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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시대의 기후를 바꿨던 '긴즈버그의 말'

[북적북적] 시대의 기후를 바꿨던 '긴즈버그의 말'


[골룸] 북적북적 271 : 시대의 기후를 바꿨던 '긴즈버그의 말'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 여자아이라면 의사건 변호사건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건 원하는 일은 무엇이건 자유롭게 하라. 남자아이라면, 그리고 그 아이가 가르치고 돌보는 일을 좋아하고 인형을 갖고 싶어 한다면 그것 역시 괜찮다."

(저에겐) 2020년 마지막 북적북적, 어떤 책이 좋을까 궁리하다 이 분의 삶을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골랐습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a.k.a. RBG. 'Notorious RBG'라는, 래퍼에게서 따온 별명도 있습니다. 지난 9월 18일 타계한 미국의 법조인, 연방 대법관입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평생을 여성과 소수자 권익을 위해 헌신해왔으며 특히 대법원 내에서 가장 많이 소수의견을 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분이죠. 그것만으로는 왜 이 대법관이 '시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명성을 떨쳤는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말에서 확인해보시죠. RBG의 법정의견서와 강연, 인터뷰 등을 모은 [긴즈버그의 말]이 올해 저의 마지막 북적북적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본질을 포착하는 설명은, 말로 토마스가 노래한 <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가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 어떤 재능이 있건 각자의 재능을 자유롭게 개발할 수 있어야 하고 인위적인 장애물-단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장애물-에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 시민의 자유, 나의 인생 이렇게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맨 앞 머리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긴즈버그의 삶의 지향을 압축하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933년생으로, 87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여성이라는 기록을 세워왔을 정도로 끊임없이 차별을 당하거나 견디거나 이겨내야 했던 생이었습니다. 그걸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죠.

"2는 내게 행운의 숫자다. 컬럼비아대학교로 옮기기 이전에 나는 럿거스대학교에서 두 번째 여성 교수였다. 또한 컬럼비아대에서 두 번째 여성 교수였지만 종신 재직권이 보장된 첫 여성 교수였다. 워싱턴 항소법원의 두 번째 여성 판사, 그리고 미국 연방대법원의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 되었다." - <에런 하버 쇼>

책의 맨 뒤에 실려 있는 긴즈버그의 '연보 및 주요 사건'을 보면 "임신하자 직위가 강등된다", "로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졸업한다... 지원하는 로펌마다 불합격", "임신 사실이 알려지면 이듬해 계약을 갱신하지 못할까 봐 처음에는 로스쿨과 동료 교수들에게 임신 사실을 숨긴다" 같은 사실들이 적혀 있기도 합니다. 이런 고비들은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차별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는 시민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한 노력과 맞닿아 있습니다.

"1837년에… 유명한 노예 폐지론자이자 양성평등주의자인 세라 그림케는… 우아한 목소리가 아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호의를 베풀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형제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 목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치우라는 것이다." -1973년 1월 17일,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 구두변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른 중요한 일이 많다. 여자들은 기다려야 한다. 인종차별이 근절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계 평화를 이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여자들은 늘 기다리라는 것이다."
- 2000년 11월 15일, 뉴욕변호사협회

"릿거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어디에, 그러니까 어느 단체에 가입할지 고민하다가 내가 선택한 곳은 미국시민자유연맹, 곧 ACLU였다. 중요한 것은 여성 인권이 아니라 시민 인권이었기 때문이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권리도 중요했다. 나는 그것을 양성의 평등한 시민권을 위한 투쟁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제기한 많은 사건은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남성들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 2016년 10월 10일, <찰리 로즈>

"렌퀴스트 대법관이 말했다. '그래서 긴즈버그 판사님, 1달러짜리 새 동전에 수전 B. 앤서니의… 얼굴이 들어가는 걸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거지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원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최선의 대답이 생각나는 법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은 이랬다. '그럼요, 판사님. 동전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 2005년 1월 31일, 듀크대학교 로스쿨


홀아버지인 스티븐 와인젠펠드가 아들 부양을 위해 사회 보장 혜택을 받으려고 하자 홀어머니가 아니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하자, 젠더 차별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법원과 대중에 보여주기 위해 이 사건을 대법원에 제소했습니다. 1975년 <와인버거 대 와인젠펠드 사건>. 대법원은 사회보장법에 내재된 젠더 차별이 세 명의 당사자, 곧 사망한 아내, 생존한 남편, 아기 모두를 차별한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커티스 크레이그와 주류 판매상은 남성의 음주 가능 연령을 여성보다 높게 잡은 오클라호마주 법이 위법하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긴즈버그는 이 사건에 대한 법정 의견서를 냈습니다. 1976년 <크레이그 대 보런 사건>. 대법원은 오클라호마주 법을 위법으로 판단하면서 주 법에 내재된 성별에 근거한 구분은 이후 "적절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결정합니다. 이렇게 긴즈버그가 담당했던 의미 있는 사건에 대한 정리 또한 책 맨 뒤 '연보 및 주요 사건'에 나와 있습니다.

"판사는 관련 사실과 해당 법에 부합하는지 살피면서 각각의 사건에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판사가 '홈 관중이 원하는' 바에 이끌리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이제 그만 사직서를 내고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때다." - 1993년 7월, 미 상원 법사위원회의 인준 질문서에 대한 답변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 1993년 7월, 미 상원 법사위원회 인준 청문회


이 책은 주로 말들로 구성돼 있다 보니 그리 두껍지 않지만 맥락을 모르면 무슨 뜻인지 약간 갸웃거릴 수도 있습니다. 해제를 쓴 이다혜 기자가 권하는 이 책의 독서법은 그런 의미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소리 내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목소리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세상을 바꾼 언어들을 말하고 들어보기를 원한다. 한국은 미국만큼이나 더 나아져야 할 여지가 많은 나라이고, 이상하고 불평등한 듯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헷갈리던 개념을 구체적인 언어의 형태로 만날 수 있다. 말은 힘이 세다. 법정에서 반대파를 설득하고 오늘의 세상을 어제보다 평등한 곳으로 바꿀 힘을 지닌 단련된 언어가 갖는 단단함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다. 이것이 언어가 지닐 수 있는 궁극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소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는 데 대한 그의 생각도.

"…그러나 중요한 문제가 걸린 사건이라면… 나는 내 길을 가겠다. 이를테면 표현과 언론의 자유, 젠더 평등에 관련된 문제라면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제시한 반대 의견 대부분이 언젠가는 법이 되리라 믿는다."

*출판사 마음산책으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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