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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다큐 노벨' 거머쥔 거장, 영원히 잠든 그를 기리며

Max | 뭐라도 써야지. 방송사 짬밥 좀 먹은 저널리스트, 프로듀서.

켄 번스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 그동안 궁금했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나이는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해서 '어메리칸 헤리티지'(American Heritage)들을 다룬 선 굵은 다큐멘터리들을
40년 가까이 꾸준히 연출할 수 있는지.

애플의 동영상편집툴인 아이무비(iMovie)와 파이널 컷 프로(Final Cut Pro)에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딴 '켄 번스'란 영상효과*가 있는 사람. (*스틸 사진을 천천히 줌인/줌아웃 하거나 패닝하는 효과) 자본주의 천조국에서 대중에게 외면받기 충분한 정통 다큐멘터리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는 독보적인 다큐멘터리스트. 눈길이 가는 미국 다큐멘터리를 찾아들어가다 보면 종국에는 그의 이름과 마주치게 된다.

미국 CBS방송 '60MINUTES'에 출연한 켄 번스.

<남북 전쟁>(The Civil War,1990)부터 관심있는 분야라 DVD를 소장하고 있는 <재즈>(Jazz,2001)와 <야구>(Baseball,1994) 그리고 <국립공원>(The National Parks,2009), <베트남전>(The Vietnam War,2017), 지난해의 <컨트리뮤직>(Country Music,2019)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켄 번스는 클래식 다큐멘터리의 세계를 뚜벅뚜벅 걸어왔다.

켄 번스의 작품들.

그런 켄 번스에 대한 궁금함을 일부라도 풀게 된 건 이달 초 미국 CBS의 저명한 시사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60분>(60 MINUTES)이 그를 다뤘기 때문이다. ▶ 영상 보러가기

켄 번스가 1981년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로 다큐멘터리 연출을 시작할 때 얘기부터, 어떻게 40년 가까이 '미국의 주제'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올 수 있었는지까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 반가웠다.

한국에도 켄 번스 같은 다큐멘터리스트가 있었다. 정수웅.

1973년 KBS PD로 입사해 1977년 진도의 장례문화를 담은 30분짜리 다큐멘터리 <초분>으로 찬사를 받으며 국제상인 '골든하프상'을 받았다. 기사를 보건대 당시 한국 방송, 다큐멘터리씬에서는 흥분되는 일이었던 모양이다.

정수웅 감독은 <불교문화의 원류를 찾아서>(1978) <비구니의 세계 석남사>(1979) <신라의 신비 대왕암>(1980) 등의 작품으로 4년 내리 방송대상을 받았다. '한국의 미', '한국의 재발견' 시리즈를 제작하던 그는 1982년 KBS를 떠난다. '황강에서 북악까지'라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 전기 필름을 연출하라는 지시를 받아놓고 미적대다 사표를 썼다(고 한다. 이 부분은 확인이 어렵다). 이후 정감독은 일본 프로덕션에 스카우트돼 적을 뒀던 때를 빼면 줄곧 독립 다큐멘터리스트의 길을 걸었다. 그가 다큐멘터리를 대하는 자세는 가끔씩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내게는 큰 귀감이 됐었다.

다큐멘터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큐멘터리는 시대를 응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책무다. 다큐는 기록자이기 때문에 만약 신이 있다면, 바로 밑에 있다고 본다. 기록자의 삶은 신성한 일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부럽지 않다. 사실을 작위 없이 카메라로 포착해 영상을 기승전결로 편집해 사실 속에 있는 진실을 끄집어 내어 전달하는 행위, 멋지지 않은가." (2013년 조선일보 인터뷰)

한국 대중에게 잘 알려진 다큐멘터리와 다큐멘터리스트는 <워낭소리>(2009)의 이충렬 감독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의 진모영 감독이다. 각각 TV가 아닌 극장에서 300만 명, 5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으며 사회적 신드롬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정수웅 감독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 다큐멘터리의 역사를 써야한다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정수웅 선생은 나처럼 TV 다큐멘터리에 엉거주춤 발을 담가본 적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먼 곳에 있는 존경의 대상이었고 연세가 있으셔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조차 못했지만 뜻밖의 자리에서 뵐 기회가 있었다.

2005년 11월, 내가 연출한 SBS스페셜 <유언-죽음을 기억하라>가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에 선정돼 상을 받으러 나간 자리에 뜻밖에 정 선생이 나타났던 것이다. 당시 62세의 대선배는 시상자가 아니라 수상자로 나오셨다(이 점이 중요하다). 정 선생은 당시 KBS로 방송된 광복60주년 특별기획 <110년만의 추적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을 수상했다. 당시 수상 소감 발표때 나는 "존경하는 정수웅 감독님과 함께 시상식장에 서게 된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진심이었다.

고 정수웅 감독.

정수웅 선생은 누가 크게 알아주지 않아도 환갑을 넘어 칠순까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카메라를 들고 대본을 쓰며 <송화강, 한인들의 숨결>(1990) <노예 소년 안토니오 코레아>(1993) <잃어버린 50년, 캄차카의 한인들>(1995) <세기의 무희 최승희>(2002) 등 '코리안 헤리티지'를 다룬 굵직한 다큐멘터리 40여편을 만들었다. 최초로 한글 전용과 전면 가로쓰기를 도입한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선생이 그랬듯 그도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지 탐구하고 기록으로 남겼다. 그리고 약 1년 전인 올해 1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가족들에게 부고(訃告)하지 말라고 하여 타계 소식마저 보름이 지나서야 몇몇 일간지에 짤막하게 보도됐다.

이제 과거 지상파TV에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했던 TV 다큐멘터리의 시대는 거의 끝난 것처럼 보인다. 지상파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과거처럼 대작 다큐멘터리 제작이 쉽지 않게 됐고, 공영방송인 KBS도 곧잘 BBC의 다큐멘터리를 사서 틀고 있다. 새로운 다큐멘터리 포맷들이 나오고 있으나 관찰 예능의 시대에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16년에 <응답하라 노량진수상시장 1971-2016>이라는 5부작 웹다큐를, 2017년에는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이 울려퍼지게 된 이야기를 다룬 3부작 웹다큐 <아름다운 강산>을 제작해 비디오머그 채널을 통해 유통하며 뉴미디어 환경에서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지만 계속할 수 있는 추진력을 얻지는 못했다. ▶ 비디오머그 웹다큐 보러가기

그런 와중에도 플랫폼의 힘인지는 모르겠으나 넷플릭스에서는 <타이거 킹>, <소셜 딜레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사카라-무덤의 비밀>같은 다큐멘터리가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60분>(60MINUTES)에서 켄 번스를 인터뷰한 베테랑 기자 스캇 펠리는 이렇게 내레이션한다. 켄 번스의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들이 생각하며 볼 수 있는 호흡을 가지고 있다고. ("His films have the pace of patient revelation. And time to think.") 지금처럼 콘텐츠 제작자들이 기-승-전-결이 아니라 결-결-결-결로 가야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단군 이래 최고로 긴 동영상 시청시간을 소비하는 요즘이지만 사람들은 기다리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긴 시간을 동영상을 보는데 쓰려면 개개의 콘텐츠에 들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질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올해 67세인 켄 번스는 지금도 7편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동시에 제작하고 있다고 한다. 주제는 헤밍웨이, 무하마드 알리, 벤저민 프랭클린, 미국 혁명의 역사 등등이다.

정수웅 감독 (사진=연합뉴스)

7년 전, 칠순의 다큐멘터리스트 정수웅은 '동아시아 격동 20세기-그 현장을 가다'를 기획하고 있었다. 찾아간 기자가 물었다.

'동아시아 격동 20세기'는 무엇을 하자는 말인가.


"20세기는 인류가 처음 맞은 필름의 시대였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수많은 증거 자료가 널려 있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너무 방대할뿐더러 지금처럼 그냥 흩어져 있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 이것을 다큐멘터리 시리즈의 형태로 잡아줘야 한다. 이미 혼자서 라이브러리도 찾아놨고 18부작으로 계획을 잡아서 영국 BBC를 비롯해 곳곳에서 영상 자료 리스트를 받아 놓았다. 이 리스트를 보고 대본에 따라 필요한 자료들을 사와야 한다." (조선일보 2013년 1월26일자 '신동흔의 휴먼카페' 인터뷰)

기자가 "자료들을 사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요" 하며 다시 물었다.

"로또 열심히 하고 있다(웃음). 나 혼자 되는 것도 아니고, 일개 방송국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국가적 사업으로 생각하고 우리 시대에 만들어야 한다."

농반진반이겠지만 "로또 열심히 한다"는 정선생의 대답이 퍽 쓸쓸하게 들렸다. 칠순의 나이에 로또를 해서라도 역사와 후세에 남겨야할 무엇인가를 영상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고자 했던 분이 이제 없다. '시장' 상황을 보건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이다. 켄 번스 인터뷰를 보다 불현듯 떠올라 곧 1주기를 맞는 다큐멘터리스트 고 정수웅 선생의 삶의 편린이나마 여기 조용히 '기록'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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