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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S] '우승 한' 눈시울 붉힌 김태균 "타격에 후회는 없습니다"

지난 2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한화 김태균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유니폼 대신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등장한 김태균은 정민철 단정과 최원호 감독대행, 주장 이용규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안녕하십니까. 한화 이글스 김태균입니다"라고 말을 뗀 그는 이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5분 가까이 눈물을 흘린 뒤에서야 작별 인사를 시작했습니다.

"20년 동안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셨던 한화 팬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워낙 감사드릴 분이 많아 먼저 인사 드리겠습니다"고 밝힌 김태균은 김승연 구단주와 역대 감독, 코치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희생하시고, 저만 바라보고 사셨던 부모님과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20년 동안 몸담았던 한화 이글스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습니다. 김태균은 "충청도 천안 출신으로 한화에 입단해 잘하고 싶은 목표와 꿈을 가지고 자라왔다"며 "한화 이글스는 언제나 저에게 자존심이었고, 자부심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승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김태균은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시즌 시작 전에 팬들에게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 '우승의 기쁨을 팬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정말 팬들에게 죄송하고. 제 남은 인생에서도 인생의 한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맺혔습니다.

김태균이 활약한 지난 20년 동안 한화 이글스는 우승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200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내리막을 걸었고, 2010년 이후엔 하위권을 전전했습니다. 팀 성적 하락에 따른 비난의 화살은 팀의 간판 타자이자 중심타자인 김태균에게 쏠렸습니다. 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우타자라는 평가 속에서도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똑딱이'라는 오명도 들어야 했습니다.

김태균은 18시즌 동안 2천14경기에 출전해 통산 타율 0.320, 홈런 311개, 출루율 0.421, 통산 장타율 0.516을 기록했습니다. 통산 타율과 안타, 출루 모두 우타자 최고 기록이며, 정확성과 선구안 능력은 범접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태균의 BABIP는 3천 타석 이상 선수 중 역대 6위. 10위권 중 우타자는 그가 유일하다. (자료출처=스탯티즈)

그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BABIP(인플레이 타구 비율)입니다. 3천 타석 이상을 소화한 타자 중 김태균의 BABIP는 0.360으로 전체 6위에 해당합니다. 놀라운 건 1~10위 선수 중 유일한 우타자라는 점입니다. BABIP이 높으려면 1. 좌타자이거나 2. 발이 빠르거나 3. 라인드라이브 타구 생산을 잘해야 합니다. 김태균은 오른손 타자이며 발도 빠르지 않습니다. 즉, 라인드라이브 타구 생산만으로 역대 6위에 올랐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김태균은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화로 복귀한 2012년부터 장타력 부족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원인은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습니다. 한화 구단은 김응용 감독 재임 시절이던 2012년 겨울 대전구장을 확장합니다. 그러면서 대전구장은 잠실 다음으로 홈런을 치기 어려운 구장이 됐습니다. 과거 라인드라이브로 담장을 넘겼던 김태균의 타구가 펜스에 걸리기 시작한 게 이때부터였습니다.

김태균은 외로웠다. 그는 한화 팀 타선 WAR의 18.1%를 감당해야 했다.

여기에 김태균의 뛰어난 라인드라이브 양산 능력과 출루 능력을 살릴 수 있는 파트너가 이때부터 부족했습니다. 한화가 강팀으로 불리던 시절 이범호, 이도형, 데이비스 등 강타자들이 김태균을 지원 사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김태균은 중심타선에서 홀로 외롭게 싸워야 했습니다. WAR 비중에서 알 수 있습니다. 김태균은 18년 동안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 69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한화 팀 타선 전체가 생산한 WAR의 18.1%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혼자 많은 걸 감당해야 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김태균은 장타력 논란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해법을 찾기 위해 타격에 여러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비난을 받아도, '똑딱이'라는 오명에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선택에 대한 후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태균은 은퇴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자신의 타격관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웃되는 걸 싫어했습니다." 김태균은 오늘(30일) 대전구장서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웃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아웃되는 것도 싫었고, 삼진당하는 것도 싫었습니다. 아웃이 되더라도 배트에 공이 안 맞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 컸습니다. 항상 타율도 좋고, 정확성도 좋고, 홈런도 잘 치고, 안타도 잘 치고, 투수들이 상대하기 꺼려하는 타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습니다. 프로에 와서도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준비했습니다. 홈런이 많지 않지만 내가 생각하는 좋은 타자의 기준에 맞춰서 해왔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김태균은 오늘(30일) 마지막 홈 경기가 열리는 대전구장을 찾아 구단 관계자,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예정입니다. 후회 없이 자신의 야구를 다한 김태균의 인생 2막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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