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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방사청 2인자의 돌연 '면직' 신청…분분한 해석들

[취재파일] 방사청 2인자의 돌연 '면직' 신청…분분한 해석들
▲ 작년 방사청 국정감사 중 왕정홍 방사청장(가운데 발언자)과 남세규 ADD 소장(제일 왼쪽), 강은호 방사청 차장(왼쪽에서 두번째)

방위사업청은 우리 군의 무기 도입, 개발의 사령탑입니다. 1인자는 왕정홍 청장이고, 2인자는 강은호 차장입니다. 강 차장은 방사청의 2인자이지만 활동 폭이 넓고 액션이 큰, 이른바 튀는 캐릭터여서 청장 버금가게 눈길을 끌어왔습니다. 무엇보다 자의 반 타의 반 차기 국방부 차관, 차기 방사청장으로 자주 거론되면서 국방 쪽 관가의 관심사인 장관 아랫자리 인사의 최대 변수입니다.

이런 강 차장이 지난주 후반 돌연 의원면직(依願免職)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복수의 청와대, 방사청 관계자들이 강 차장의 의원면직 신청 사실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의원면직은 '본인이 원하는 바에 의해서 현직을 면하는 것'으로 곧 퇴직입니다.

그가 의원면직 신청을 했다지만 공직을 완전히 내려놓은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국방부, 방사청뿐 아니라 방산업계, 국방과학연구소(ADD)도 술렁이고 있습니다. 어떤 포석이 숨겨져 있는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ADD 소장설(說)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와대, 여당, 방사청, ADD, 업계에서 일제히 ADD 차기 소장 자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강 차장의 의원면직도 파격이고, ADD 소장설도 파격입니다. ADD 소장은 절정의 국방과학 전문가들의 자리입니다. 비전문가가 잠시 머물다 떠날 자리가 아닙니다.

강은호 방위사업청 차장 (사진=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 왜 의원면직이라는 초식을 택했나

강 차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방사청을 개청할 때부터 방사청을 지켜온 방사청맨입니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주인을 가리지 않고 승승장구한 수완가로 통합니다.

이런 강 차장이 차기 국방부 차관이나 차기 방사청장 자리를 약속받았다면 벌써 의원면직할 이유가 없습니다. 언론 발표가 날 때쯤 의원면직하고 다음 자리의 임명장을 받으면 됩니다. 그가 차관이나 방사청장의 유력 후보로 알려졌지만 이번 의원면직 신청으로 차관, 방사청장 내정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ADD 소장 자리는 오는 12월이면 남세규 현 소장이 떠나고 차기 소장이 이어받게 됩니다. 다음 달 중 공모를 위한 공고가 게시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강 차장이 의원면직하고 차기 ADD 소장 공모에 신청할 것이란 전망이 군과 방사청, 업계에서 파다합니다.

청와대의 A 씨는 "ADD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 건 맞다"고 말했습니다. 방사청의 B 씨는 "ADD 소장설이 여러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짚었습니다. 대형 방산업체의 B 씨는 "평생 공무원을 한 생리상 확실한 약속이 없다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벌써 청와대의 내락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촌평했습니다.

ADD 국방과학연구소 사상 최대 기밀유출

● ADD 소장으로서 전문성·애정 있나

ADD 소장은 최고 국방과학자들의 자리입니다. 남세규 현 소장은 유도무기 전문가입니다. ADD에서 무기 연구만 했습니다. 김인호 전 소장은 마찬가지로 ADD에서 레이더 등을 개발했던 공학박사입니다. 김 전 소장 이전의 정홍용 전 소장은 예비역 장성이지만 현역 시절 전력(戰力) 증강, 무기 개발 업무를 도맡았습니다. 대학원에서 기계공학과 네트워크중심전학을 전공한 공학도입니다.

ADD가 국산무기 개발을 책임지는 곳이다 보니 ADD에서 연구와 개발에 잔뼈가 굵고 조직 장악력과 비전이 돋보이는 전문가, 또는 군의 무기개발 전문가가 ADD 소장을 맡았습니다. 자주국방의 메카 ADD의 소장 자리는 정권의 낙하산도 뚫지 못하는, 아니 그런 시도조차 한 적 없는 청정 지역이었습니다.

강은호 차장은 무기 도입과 개발 사업을 '관리'하는 데 전문입니다. 방사청이 ADD를 감독하는 기관이다 보니 어깨 너머로 구경은 했겠지만 개발과 연구는 모릅니다. 관리의 DNA와 연구 개발의 DNA는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도 강 차장의 ADD 행(行)이 기정사실처럼 회자되니 방사청, 군, ADD, 업계의 반응이 싸늘합니다. ADD 연구원의 D 씨는 "ADD의 위상이 많이 추락했다고 해도 ADD는 자주국방의 창끝인 국산 무기 개발을 책임지는 국가 연구기관"이라며 "그 누구든 행여 ADD 소장 자리를 경력 쌓기용, 시간 벌기용 따위로 이용하지 말기 바란다"고 각을 세웠습니다.

방사청은 ADD 기밀 유출 사건을 조사하고 지난 6월 25일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때 강은호 차장은 "ADD의 기술보호업무 총괄부서에서 퇴직자의 자료 유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임의로 종결처리했다"면서 "방사청은 지난 4월 중순에야 인지했다"고 밝혔습니다. ADD는 알고도 덮었고, 그래서 방사청은 언론 취재가 시작될 때쯤에야 뒤늦게 인지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에 정통한 ADD 연구원들은 속으로 발끈했습니다. 감독책임기관인 방사청이 ADD에서 궂은 일이 벌어지자 멀찍이 거리를 둔 데 대한 서운함입니다. ADD 연구원이 아니더라도 강 차장의 그날 발언에서 ADD에 대한 애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ADD 연구원 E씨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안되니까 마지못해 눈 돌리는 자리가 ADD 소장이냐"라고 말했습니다.

● ADD로 선회한 이유는

ADD 차기 소장 후보군에는 애초 강은호 차장의 이름이 거론된 적도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강 차장은 자의 반 타의 반 국방부 차관, 방사청장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방사청 내부에서는 "방사청장과 차관으로서 경쟁력이 떨어지니까 ADD를 선택한 것 같다", "ADD에서 3년 동안 시간을 번 뒤, 방사청 차장과 ADD 소장의 경력을 내세워 차차기 방사청장을 노리는 포석 아니겠느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방사청의 내부 의견은 ADD 연구원들의 비전문가 낙하산 우려와 맥이 통합니다. 지난 8월 말 조용히 청와대를 다녀왔고 지난 23일에도 일과 중 홀로 어디를 다녀왔다는데 이번 의원면직 신청 건과 연관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됩니다.

ADD 차기 소장의 인사판을 그리는 측과 인사권자는 성(城) 밖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ADD 소장 자리에 무기 개발 최고 전문가들을 앉힌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무기 개발 과정을 속속들이 알고 연구원들과 함께 좋은 무기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인재에게만 ADD 소장을 맡겨 안보를 우위로 한 경제적 효율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정치'가 끼어들 틈은 없었습니다.

물론 다음 달 ADD 소장 공모에 많은 전문가들이 몰릴 테니 비전문가인 강 차장이 임명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허나 많은 이들이 요즘 강 소장의 이런저런 행보에서 "ADD 소장 공모는 요식행위"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읽고 있습니다. 어제 강 차장에게 전화도 해보고 문자메시지도 보내봤지만 어떤 답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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