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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삶이 버거운 당신께 바치는 '마음 휴양지'

김지용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들이 참여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진행 중

"진료실에서 20대 분들 이야기 듣다 보면 이런 생각 들지 않아? 그 사람들의 높은 불안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하다는 생각. 취직은 힘들고, 월급으로는 내 집 장만도 어렵고."

"그치. 나 같아도 불안할 수밖에 없겠더라고. 근데 20대뿐이겠어. 10대도 그렇고 30대도 그렇고, 이게 대체 편한 나이대가 없네. 어쩌냐… 해결책은 없어 보이고 내가 다 답답하네."

요즘 자주 반복하게 되는 동료 의사들과의 대화 패턴이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다. 그리고 이는 주장이 아닌 사실이다. 물론 내가 우울과 불안을 호소하는, 힘든 상태에 놓여있는 분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편향된 시각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은가.

세상이 힘들어지는 만큼 그 속에서 잘 버티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계속해서 주창되고 있다. 유행처럼 들끓었던 '욜로' 열풍은 어느덧 지나가고, 이제는 돈 잘 버는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방송계와 출판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지난 몇 년간 계속해서 커져 왔다. 수많은 힐링 서적들과 유명 강연자들을 찾는 손길이 끊기지 않는다. 최근 몇 개월 안에 정신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전에는 없던 형태의 드라마들이 여럿 나타났다. 이런 짜 맞춘 듯한 트렌드는 분명 누군가가 지시한 것이 아닐 텐데, 우리 사회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내는 자구책들일 것이다.

힘든 세상, '마음의 휴양지'가 필요하다. 이번에 '서울시 청년 마음건강 랜선 박람회'가 9월 1일부터 13일 동안 진행된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해오던 여러 전문가들과 단체들이 한데 모여 자신들이 제공하는 치유 프로그램을 대중 앞에 소개한다. 원래는 서울 신촌로에서 오프라인으로 예정되어 있던 행사가 코로나19 사태 속에 아쉽게도 온라인으로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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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년 마음건강 랜선박람회

이름도 생소한 '마음건강 박람회'. 매년 '정신건강의 날'마다 서울시를 비롯한 몇몇 광역지자체에서 열리던 정신건강축제와의 차이가 뭘까? 나는 정신건강축제에 몇 차례 참여를 했었다. 전공의 때에는 상담부스에 앉아있는 의사로, 전문의가 된 이후에는 강연자로.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정신건강축제에 몰린 많은 인파들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신건강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항상 사회 속 소수자로 느끼며 살아왔던 이들끼리 서로가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었다. 그렇기에 이번 행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견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 기회이기도 하다. 매년 정신건강축제가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의 수가 얼마나 될까.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크게 외치듯 도심의 번화가에서 행사를 열어왔지만, 분명 확장성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온라인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가벼운 마음으로 들러 더 많은 단체들의 활동들을 효율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온라인, 오프라인뿐이 아닌, 큰 차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마음'과 '정신'. 사실 거의 차이없이 동의어인 이 단어 변경 하나로 큰 것이 달라진다. 정신건강이 아닌 마음건강이란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 역시 확장성이다. 사회적 통념상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 정신과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명칭을 정신건강의학과로 바꾼 지 10년이 되었지만, 정신건강이란 단어 역시 많은 이들에겐 부정적 색채를 띈다. 그런데 단어 하나만 바꿈으로써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다. 문턱을 낮출 수 있다. 정신 질환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외에도, 그저 자신과 타인의 마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찾아오셔도 되는 자리가 되었다. '당신을 위한 마음 휴양지'. 이번 박람회의 캐치프레이즈이다.

또 한 가지 큰 변화는 컨텐츠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폭이 더 넓어졌다는 것이다. 정신건강에서 마음건강으로 영역을 넓혔을 때, 정신과 의사들이 해 온 진료 활동은 극히 일부 영역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료실 밖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건강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번 박람회에는 그들이 모였다. 심리상담가, 명상 전문가, 청년 상담가, 예술가, 1인 가구 커뮤니티센터 등 현대인들의 마음 건강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해온 이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마음건강 분야에 몸을 담고 있는 나 또한 잘 몰랐던,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된 그들의 귀한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한다. 이는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문제들을 나 혼자서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이 힘든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살만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치유의 공간들과 프로그램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힘든 세상, 조금이라도 더 살만해지기 위해.

분명 이 세상은 살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 단체들이 힘든 마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번 박람회에서 만날 사람들도 당신 마음의 힘듦을 온전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 없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마음을 짓누르는 그 삶의 무게를 조금은 줄이거나 조금은 더 잘 견딜 수 있는 방법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사는 것, 조금 더 편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마음마저 무거워진 당신, '당신을 위한 마음 휴양지'에 한 번 들러 보시길.

인잇 필진 네임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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