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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이런 사랑 못할 것" 한국 재즈 대모, 별이 되다

Max | 뭐라도 써야지. 방송사 짬밥 좀 먹은 저널리스트, 프로듀서.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 좌절과 방황을 그려내 아카데미 감독상과 촬영상, 음악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꿈은 자신의 재즈바를 여는 것이었다. 가난한 재즈 피아니스트인 그는 오래된 재즈바가 삼바 리듬이 울려 퍼지는 타파스 식당으로 바뀌자 못내 안타까워한다. 영화를 보면 재즈의 본고장에서조차 재즈는 대중적인 음악에 밀려났다. 그래도 뉴욕에는 '블루노트', '빌리지뱅가드'같은 유서깊은 재즈클럽이 명맥을 유지하며 재즈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뉴욕에 '블루노트'와 '빌리지뱅가드'가 있다면 한국에는 '올댓재즈'와 '야누스'가 있다. 야누스의 힘겨웠던 주인이자 재즈 보컬리스트였던 박성연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박성연이 신촌에 국내 첫 토종 재즈클럽인 '야누스'를 연 해가 42년 전인 1978년이다. 70년대에 여성이 혼자서 재즈클럽을 운영하고, 남성 일색의 재즈 연주자들과 함께 매일 공연하고 한달에 한번씩 발표회를 열기 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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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연과 JAZZ at The Janus

그래서일까. 1985년 출시된 '박성연과 JAZZ at The Janus'라는 첫 앨범의 표지를 보면 웃고 있지만 왠지 외로워보이는 박성연이 앉아있다. (바지 정장과 짧은 헤어스타일 탓인지 '튀어 보이지 않겠지만 남성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얼핏 봐서는 화면 중심에 자리잡은 인물이 잘 눈에 띄지 않는 구도의 이 사진을 찬찬히 읽다 보면 (게다가 다른 이들은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데 박성연만 살짝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한국 재즈의 명맥이자 산실인 야누스를 어떻게든 짊어지고 나가겠다는 박성연의 자긍심과 부담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필자가 박성연을 만난 것은 야누스가 문을 연지 20년 되던 해였다. 야누스가 신촌에서 대학로로, 다시 이대 후문으로 옮겼다가 또 청담동으로 이사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재즈팬이 많지 않아서 벌이는 시원찮았고 오르는 집세는 꼬박꼬박 내야했다.

말이 청담동이지 당시 야누스가 세 들어있던 지하 1층 공간은 다소 쓸쓸하고 퇴락해 보였다. 겨우 겨우 꾸려가던 재즈바 살림살이 때문인지 인테리어는 소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야누스는 서초동으로 또 옮겼다. 야누스가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온 데는 야누스와 박성연, 그리고 재즈를 사랑하는 후원자들의 도움도 컸던 것으로 안다) 당시 박성연과 인터뷰와 촬영을 위해서 야누스를 찾았는데 손님이 언제 많이 올지(혹은 안 올지)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필자를 포함한 취재진도 테이블에 앉아서 자리를 채웠다. 무려 이정식이 색소폰을 불었는데도 말이다. 몇 안되는 손님을 앞에 놓고 한국의 1세대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야누스 사장인 박성연은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다. 이정식은 이날 인터뷰에서 야누스를 "재즈의 친정집"이라고 말했다.

1998년 필자가 연출해 방송했던 '재즈를 닮은 여자'라는 타이틀의 미니 다큐에서 독신의 박성연은 말했다. "내가 누구를 사랑했다면 이렇게 30년 동안 사랑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음악은 끊임없이 사랑하게 만들기 때문에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 다큐에서는 야누스가 처음 문을 열었던 신촌의 건물을 다시 찾아가 보는 박성연의 모습과 들을수록 자꾸만 입가를 맴도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물안개'를 부르는 젊은 시절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재즈와 사랑운은 있었지만 당시부터 박성연은 건강운이 별로 좋지 않았다. 고고하고 도도한 프로페셔널이었던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길 꺼려했다. 안쓰러울 만큼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고 고집스러울 만큼 야누스와 재즈를 지켜가고 있던 재즈 싱어이자 재즈클럽 운영자였다.

'라라랜드'에서 무명의 재즈 피아니스트 세바스찬은 역시 배우 지망생일 뿐인 미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재즈는 그냥 듣는 음악이 아니에요. 얼마나 치열한 대결인지 직접 봐야해요…. 충돌했다가 타협하고 매번 새로워요. 그런데 죽어가고 있죠. 수명을 다했다고 죽게 내버려 두라지만 나는 지킬 거예요"

청담동 야누스의 다소 쓸쓸한 무대에서 '아임 어 풀 투 원트 유'(I'm a fool to want you)를 부르던 박성연의 살짝 허스키한 목소리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박성연은 자신의 라라랜드에서도 재즈클럽 야누스를 운영할 사람이다. 한국 재즈의 산 증인 가운데 한 명이 떠났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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