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사실상 임기 '마지막' 패전일…아베 총리, '야스쿠니' 참배하나?

역대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도발기

[월드리포트] 사실상 임기 '마지막' 패전일…아베 총리, '야스쿠니' 참배하나?
오늘(11일) 오전, 일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의 한 장면입니다.

[기자] 종전기념일에 각료(장관급)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이번 주말 종전기념일인데 매년 같은 질문을 해서 죄송하지만, 총리와 관방장관의 참배 예정 혹은 계획은 있습니까?
[스가 관방장관] 이 대답도 매년 같은 내용이라 죄송하지만,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할지 안 할지는 총리가 적절히 판단할 일입니다.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된 광복절이지만, 일본에서는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르는 '패전일'입니다. 일본 정부는 매년 8월 15일에 도쿄의 일본무도관(부도칸)에서 일왕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전몰자추도식'을 갖습니다만, 이보다는 15일에 총리와 내각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느냐 마느냐가 큰 관심사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이 저지른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주역인 이른바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일본의 극우 세력이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장소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그동안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등 동아시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로 미국의 군정 체제하에 있었던 일본은 다음 해인 1952년 독립을 약속받았습니다. 당시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조약 체결 직후인 10월 18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습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패전 후 7년에 걸친 미 군정의 종식을 사망한 그들의 '선배들'에게 보고하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미 군정이 끝나고 자민당의 사실상 1당 집권체제인 이른바 '55년 체제'가 성립된 이후 일본은 조금씩 과거 전쟁 책임을 방기하기 시작했고, 61대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1965년 야스쿠니를 참배한 이후 임기 전체에 걸쳐 11차례나 야스쿠니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패전일'인 8월 15일은 참배를 피해 여전히 큰 미국의 대일 영향력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관례를 끊고 '패전일' 당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참배한 일본의 총리는 66대 미키 다케오입니다. 1975년 8월 15일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미키 다케오는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사인私人으로 표현)"의 참배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최고 권력자인 총리의 행동이 과연 어디까지가 개인적이고, 어디서부터가 공적인가에 대해서는 이후 끊임없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미키 다케오는 논쟁을 불러일으켜 관점을 흐리는 방식으로 '패전일'에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책임을 피해갔지만, 일본의 우익 세력들은 분명히 이를 '패전의 그늘'로부터 능동적으로 벗어나려는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당시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 판결을 받아 사형당하거나 옥중 사망한 14명에 대한 합사가 추진 중이었지만 최고 제관(祭官)의 '보류'로 합사는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1978년 10월 17일에 '기습적으로'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에 합사된 사실이 1979년 4월에 신문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A급 전범의 합사를 보류했던 최고 제관이 숨진 뒤, 그 후임자가 비밀리에 추진한 일이었습니다.

A급 전범의 비밀 합사 사실이 알려진 이후 당연히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주변국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당시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는 신문 보도 이틀 뒤인 1979년 4월 21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해 일본 국내외적으로 큰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오히라 앞에 총리를 지냈던 후쿠다 다케오와 후임자인 스즈키 젠코는 앞서 미키 다케오의 '선례'를 따라 '개인 자격'임을 강조하며 8월 15일 '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는데, 특히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경우는 야스쿠니신사에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된 사실이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고 나서도 개인 자격이라는 말로 참배를 포장하며 1980년부터 1982년까지 3년 연속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습니다.

'개인 자격'이 아닌 일본의 총리라는 공식 직함으로 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처음 참배한 사람은 지난해 숨진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입니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스즈키 젠코의 뒤를 이어 1982년 총리가 됐지만 집권 초기에는 자민당 내 파벌 싸움으로 큰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정권의 '배후'로 지목받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록히드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그의 정치적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총리 자격으로 '공식 참배'한 1985년은 그의 입장에서는 정치적 '독립'을 어느 정도 일궈낸 시점입니다. 일본 경제의 초고도 성장이라는 배경에 힘입어 국제 관계에서도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이런 분위기가 일본 정권이 과거사를 대하는 자세까지 '오른쪽'으로 확 끌어당겼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공공연하게 8월 15일에 '총리 공식 참배'를 표명하자 주변국들이 크게 반발했고, 중국도 처음으로 일본 정부를 '공식적으로' 비난하기에 이릅니다.

야스쿠니신사 (사진=연합뉴스)

이후 한동안 일본 총리는 패전일인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2001년 집권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선거 운동 당시 "종전기념일(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막상 정권을 잡은 뒤 첫 패전일에는 참배를 이틀 앞당겨 8월 13일에 참배했습니다. 참배를 이틀 앞당긴 것은 역시 주변국의 '직접적 비난'을 피해가겠다는 '꼼수'라는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주변국들의 비난은 비난대로 받았고, 자민당의 지지기반인 우익들로부터도 그리 환영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후 고이즈미 총리는 매년 한 차례 8월 15일을 피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지만, 2006년에는 패전일 당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습니다. 임기 막바지에 이르러 선거를 앞두고 '끝내 약속은 지킨다'는 이미지로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의도였습니다.

고이즈미의 뒤를 이은 아베 신조 총리는 2006년 9월부터 1년간 처음으로 일본 총리를 지냈고, 이후 2012년 말 재집권했습니다. 2차 집권에 성공한 뒤인 2013년 4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1차 집권 시기에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못한 것이 통한(痛恨)스럽기 그지없다"고 발언한 뒤 그 해 12월 재집권 1주년을 맞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습니다. 당시 아베 총리는 "중국 또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려는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반발했고 미국까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습니다. 그 이후 아베 총리는 주변국의 시선을 의식해 직접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았고, 매년 봄과 가을과 패전일에 공물비를 대리 전달하는 방식으로 우익 세력의 불만을 달래 왔습니다.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에 끝나지만, 그 전에 자민당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러 승리해야 합니다. 중의원 해산 시점에 대해서는 현재 일본 정계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지만, 일단 가장 큰 변수는 제2파가 확실해 보이는 일본의 코로나 확산 상황입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일 발매된 월간지 '중앙공론(9월호)'의 인터뷰에서 올 가을로 점쳐지던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 전망을 스스로 부인했습니다. 코로나 여파라는 변수가 있기는 하지만 올해 8월 15일이 아베 총리에게는 총리로서 맞는 사실상 마지막 '패전일'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전 고이즈미 총리처럼 보수 결집을 위해 패전일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할 거라는 전망도 없지는 않지만, 잇단 코로나 대응 부실로 감염이 재확산하고 있는데도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내각 지지율이 임기 중 최저 상황을 기록하는 지금 상황을 보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