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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여름엔 하루키,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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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46 : 여름엔 하루키, 아무튼!

"나도 대학생이 되면… 25미터 풀장을 가득 채울 만큼 맥주를 마시고 술집 바닥에 땅콩 껍질을 5 센터 미터 두께로 뿌려댈지 궁금했다. 맥주가 아무리 맛없어도 왠지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 시절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여름만 되면 스스로를 마음에 들어하는 나, 왠지 모르게 근사해 보이는 나, 온갖 고민과 불안 따위는 저 멀리 치워두고 그 계절만큼 생기 넘치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겨울인 사람은 여름 나라에서도 겨울을 산다."


봄이었으나 봄 같지 않던 그 봄을 지나 자고 일어나니 여름이 왔습니다. 역시 아직은 여름이 여름 같지 않네요.

파릇파릇 싱그럽고 뜨겁고 설레는 봄과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요. 오늘은 봄을 떠올리는, 그리고 여름을 기억하게 하는, 길지 않은 책 두 권을 한꺼번에 가져왔습니다. 이런저런 불안과 한숨을 잠시 책과 함께 잊어보시면 어떨까요. <아무튼 하루키>, <아무튼 여름>입니다.

"눈을 감으면 언제 어디서나 고베의 미지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는 소설이었다. 청춘의 한복판에 서보기도 전에 청춘을 한바탕 겪은 듯한 느낌을 맛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 습하고 나른한, 떠올리면 조금은 슬퍼지는 세계를 나는 사랑했다.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의 과거처럼 그리워했다. 그렇게 나는 이 책과 함께 십 대의 한 시기를 통과했다."

"상실감과 무력감이 밀물처럼 덮쳐 오는 날이면 눈을 감고 고베의 미지근한 바닷바람을, 스물아홉이나 서른이 되어 그 바닷가에 서 있을 나 자신을 그려봤다. 그러면 그 상상은 매번 바닥 없는 늪에서 나를 건져 올려줬다. 나의 불완전한 이해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느슨한 구원의 손길을 나는 지금도 느낄 수 있다."

"하루키는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했고, 어쩌면 나 역시 하루키를 편파적으로 사랑해서 그의 신간이라면 무조건 구매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루키가 이름만으로 책을 파는 작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일본 문학에 열광했던 독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요시모토 바나나나 무라카미 류, 에쿠니 가오리를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가끔 쓸쓸하게 느껴진다. 같은 쓸쓸함을 하루키에게서만은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오랜 팬으로서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작가의 저작과 함께 보내게 해 준 것. 그리하여 나의 내면과 삶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일으킨 것. 그것만으로도 노벨문학상을 받든 말든 하루키는 나에게 언제까지나 가장 특별한 작가일 터다."
-<아무튼 하루키>


저는 20대 초반에 알게 된 무라카미 하루키를 지금까지 읽어오고 있습니다. 예전보단 약간 식었지만 그래도 팬심은 아직 따끈합니다만, 그의 모든 작품에 열광하는 건 아니죠. 초기작이 더 좋고 근작은 좀 아쉬운 점이 많았는데 그래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읽어가는 작가는 하루키 말고는 몇 없는 것 같아요.

"여름은 늘 그런 식이다. 부푼 가슴으로 기다리면서도 정작 다가오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맛만 다시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예상보다 많은 추억이 쌓여 있다."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럽게 나를 지켜봐 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다가오는 여름 향기를 느끼며 편의점 가는 길은 그해 첫여름 산책이다. 그날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편의점으로 휘익 방향을 트는 일 역시, 상상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그해 첫여름 나들이다. 여름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그 발걸음이 좋아서다. 그 발걸음 끝에 시원한 맥주가 있어서다."

"여름은 매번 내게 대단한 걸 가져다주지 않는다. 덥고, 지치고, 체력은 점점 후달리고,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사건도 딱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치만... 계속 여름이 좋으니 어쩜 좋을까. 짝사랑도 이런 짝사랑이 없다. 그 마음을 글로 써온 시간 역시 여름을 기다릴 때처럼 설레고 가슴 벅찼다."
-<아무튼 여름>


내가 좋아하고 생각하면 즐거운 무엇, 저에게도 하루키가 그렇고, 여름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00 시리즈는, 작가들이 그 좋아하는 소재를 통해 풀어낸 자신의 인생을 풍성하게 즐기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매력 같습니다. 저와도 어느 정도 겹쳐지는 이지수 작가의 경험담이 흥미롭고 김신회 작가의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2020년 여름은 이제 시작입니다. 아무튼 맥주든 와인이든, 무협이든, 야구든 저마다 인생의 즐거움을 하나씩 가지고 이 무덥고 때로는 짜증 나며 지루한 여름을 즐기고 견뎌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출판사 제철소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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