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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김갑두 왈 "경비원은 사람이 아냐"…임계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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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243 : 김갑두 왈 "경비원은 사람이 아냐"…<임계장 이야기>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 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 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어디 사느냐에 따라 나누면 아파트 주민이 절반, 비아파트가 절반입니다. 전국에 아파트 거주자가 50%를 넘었죠. 저도 아파트에서 산지 30년이 다 돼 갑니다. 가족 외에 집에 가서 가장 많이 만나는 이는 경비원입니다. 택배 때문에, 재활용 쓰레기 때문에, 집과 관련한 여러 대소사 때문에.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 주민의 폭언과 폭행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고 그 장면을 담은 CCTV 영상과, 숨진 이의 음성과 유서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질까, 거꾸로 저 경비원 자리는 어떤 일자리일까. 최저임금 때로는 그보다도 못 미치게 60대 이상 노년층만 저 일을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번 주 북적북적의 선택은 조정진 작가의 <임계장 이야기>입니다.

"다들 나를 임계장이라 불렀다... '임시 계약직'이라는 말에 노인 '장' 자를 하나 덧붙인 것이다. 그러니까 임계장이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말이다. 나는 계약직 중에서도 '단기'인 임시 계약직이기 때문에 임계장이 된 것이다."

"당신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니까 해주는 말인데, 버스 회사에서 업무상 재해라는 건 교통사고 하나뿐이야. 당신이 회사 버스에 치였어? 아니지? 당신이 한눈팔고 일하다 다친 거지? 그래 놓고 회사에 책임을 떠밀어?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

"저 유명한 김갑두를 조심하라고 진즉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요. 모두가 치를 떠는 인간이 저 작자요. '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으로 우리가 붙여 준 이름이지. 저 자의 등쌀에 그만둔 경비원이 여럿이라우."... 주민들은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초소에서 잘 수 있겠어?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면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우리시대의 '임계장'은 아파트 경비원이나 버스 회사 배차원, 빌딩 주차관리원 등 곳곳에 있습니다. 조정진 작가는 38년 간 공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다 퇴직해서 4년째 시급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고 하고요, 저 일자리를 다 거치면서 다쳐서 7개월 요양을 했고 지금은 주상복합건물의 경비원 및 청소원을 하고 있다네요. 일하면서 틈틈이 적었던 일지를 바탕으로 이 책이 나오게 됐다는군요.

일전에 한승태 작가의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몇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했던 현실을, 바닥까지 체험하고 그걸 글로 풀어낼 줄 아는 이를 통해 생생하게 접했을 때의 쾌감과 고통은 압도적이었습니다. 다른 전업작가의 르포를 비슷한 시기에 또 읽었는데 상대적으로 시시해 보였을 정도였습니다. <임계장 이야기>의 임팩트 또한 그러합니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 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라는 책의 마지막 또한 묵직하게 마음에 남습니다.

*출판사 후마니타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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