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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또 불거진 사모펀드 문제…'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 "이탈리아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 없다"던 펀드

라임자산운용, 디스커버리 자산운용에 이어 최근 또 다른 사모펀드에서 환매지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하나은행에서 판매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라는 상품입니다. 2019년에 9개 펀드 1100억 원 어치가 투자자 400여 명에게 팔렸는데 원금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이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역 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 채권에 투자하는 상품입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은행 PB의 권유로 이 펀드에 투자하게 됐습니다. 예금, 적금 상품을 알아보러 은행에 갔다가 안정적인데 수익률은 예금보다 높은 5% 수준이라는 PB 권유로 투자하게 됐습니다. 투자자들은 공통적으로 은행에서 "이탈리아 정부가 파산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이 나지 않는 매우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소개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투자자들
투자자 A 씨
"평소 거래하던 은행 직원이 정기예금처럼 안정성을 강조하며 이 펀드를 권유했습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부도나지 않으면 원금손실은 전혀 없다고 설명을 들었어요. 정기예금을 넣으려 생각하고 갔다가 자연스럽게 이 상품에 가입하게 된 거죠."


원금 절반만 남은 부실 펀드

펀드의 실상은 판매 당시 은행 직원 설명과 달랐습니다. 펀드 부실이 드러나자 하나은행은 회계법인과 함께 실사에 나섰습니다. 하나은행이 이 펀드 실사 결과를 정리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펀드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우선 단기채권 위주로 운용할 계획이라던 펀드는 장기채권이 편입됐습니다. 이런 장기채권을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매입한 정황도 나왔습니다. 판매할 당시 고객들에게 13개월이면 조기상환 가능하다던 펀드는, 5년에서 6년 뒤까지 원금상환이 지연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하나은행 펀드 실사결과 문건
1188억 원 가량이 이 펀드에 투자됐는데, 실사 결과 자산 가치는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9개 펀드 중 4개 펀드가 투자금의 57%, 다른 4개는 58% 수준만 남았고, 한 펀드는 투자금액의 39%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은행이 내놓은 보상안

지난달 펀드 실사를 진행한 하나은행은 사적 화해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투자자들에게 두 가지 보상안을 제안한 겁니다. 첫 번째 안은 실사 결과 남아있는 투자금(55% 수준)에 은행이 손해배상금을 더해 총 투자금의 75%가량을 보상하는 안입니다. 두 번째 안은 현재 시점으로 추정되는 회수금액을 가지급해준 뒤 나중에 펀드 회수 시점에 정산하는 방안인데, 10억을 투자한 고객이라면 5억 5천만 원 정도를 되돌려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나은행 보상안
투자자 중 상당수는 하나은행의 보상안 수령을 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은행에서 판매 당시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게 홍보했고, 펀드 운용 또한 내세웠던 것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B 씨
"이 펀드에 대해 잘못이 어디서부터 기인됐는지 찾아보면요. 고객에게는 책임이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은행이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서 사실과 다르게 판매를 했으니까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몇% 라도 손실을 본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은행이 불완전판매를 한 것을 넘어 사실상 사기 판매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투자자들은 펀드 계약을 취소해달라는 민사소송과 사기 등 형사책임을 묻는 소송을 준비 중입니다. 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 임진성 변호사는 "하나은행이 판매 당시에 상품설명서라든가 설명했던 내용과 달리 실제로는 장기채권 등 부실 자산 포함되어있는지 인지한 상태에서 판매했다면 기망에 해당한다"고 봤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기나 착오에 의한 취소 책임을 묻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므로 피해자들로서는 투자금 전액을 반환받을 가능성도 높다"고 봤습니다.

OEM 펀드 의혹

투자자들은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가 하나은행이 처음부터 펀드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자산운용사 여러 곳을 끌어들인 이른바 'OEM 펀드'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법상 펀드의 운용과 기획은 자산운용사가, 판매는 증권사와 은행 등 판매사가 하도록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판매사가 처음부터 상품을 기획해 자산운용사에 펀드를 만들도록 한 상품을 'OEM 펀드'라고 부릅니다. 문제가 된 라임자산운용의 경우도 대신증권 장 모 센터장과 신한금융투자 직원이 라임자산운용과 함께 펀드를 기획한 의혹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투자자 C 씨
"하나은행 PB가 '이 펀드는 하나은행 고객들만 위해서 은행이 만든 거고, 하나은행만 팔 수 있는 겁니다'라고 했었어요. 특별하게 만든 상품이라고요. 투자자 입장에선 자산운용사가 어디인지와 상관없이 하나은행이 만들어서 판다고 해서 투자를 한 거고요."

임진성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
임진성 변호사는 "일반적으로는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하나 만들었으면 그걸 여러 판매사 통해서 판매하게 되는데, 이 펀드는 오히려 자산운용사가 여러 곳이고 판매사가 한 곳이기 때문에 OEM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판매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은행은 DB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 등 9개 자산운용사와 계약을 맺고 같은 상품인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를 판매했습니다.

● 하나은행 "부실 펀드, 4월에 처음 인지"

하나은행은 자산운용사가 해당 펀드 상품을 설계하고 운용해왔기 때문에 지난달 실사 전까지는 펀드 부실에 대해 몰랐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OEM 펀드' 의혹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답했습니다. 하나은행 측은 이 상품이 DB자산운용이 해외 역외펀드 운용사인 아파치(Apache Asset Management Ltd.)의 제안 등으로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고 밝혔습니다. 하나은행도 DB자산운용으로부터 이 펀드를 제안받아 판매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투자자 측 임진성 변호사는 "하나은행이 제시한 보상안을 보면 투자금의 비율(55%~75%)이 적은 수준은 아니다. 그 의미는 사실 하나은행 측도 이 펀드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 펀드였는지 어느 정도는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불완전판매는 이미 어느 정도 인정을 한 것으로 보이는 만큼 소송을 한다면 사기 판매인지 아닌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 밝혔습니다.

즉, 앞으로 하나은행이 이 펀드를 기획하고 운용하는 데 얼마나 관여했는지, 판매 당시에 부실한 펀드 구조를 얼마나 인지하고 있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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