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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찬밥 신세' 폐공장, 힙플레이스로 뜨다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오래된 도시에는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원래의 기능을 다해 사용하지 않게 된 '낡은 건축물'이다.

건축물의 기능이 멈추는 이유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산업의 변화이다. KTX가 생기면서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 역들은 원래의 기능을 잃어버려 문을 닫았고, 도심지에 있던 방직 공장들은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폐업하거나 산업단지로 옮기면서 기존의 공장들은 폐건물이 되었다. 과거에는 도심지 밖에 위치했지만, 도시가 점차 확장되면서 도심 안으로 들어온 폐공장들은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농촌에 있는 학교는 농촌인구가 줄면서 학생들도 줄어들자 폐교가 늘어났고, 혹여 불량배들의 아지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로 민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이처럼 쓸모없을 것만 같던 폐공간들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지역의 새 명소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한때 폐공장이었던 부산 'F1963'의 외부 모습. (사진은 연합뉴스)

부산의 'F1963', 철제와이어를 만들던 공장이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하였다.

부산의 'F1963'은 찬밥 신세였던 폐공장이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한 대표적인 예이다. 넓은 공연장과 전시장, 책방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과 커피, 수제 맥주, 전통주 등을 즐길 수 있는 상업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산업용 와이어를 생산하던 공장답게 넓고 높은 실내 공간, 그리고 지붕을 받치고 있는 목재 트러스는 산업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1963년에 지어져 2008년까지, 45년간 돌아가던 공장은 한동안 비어 있다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하면서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이 시작되었다. 한때는 낡고 보잘 것 없는 폐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각종 문화행사로 인해 부산의 젊은이들이 앞다퉈 찾는 핫 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담양의 '담빛예술창고' 외부 모습. (사진은 담양군문화재단)

'담빛예술창고' 내부 모습. 거친 벽돌 벽 배경이 전시물이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전남 담양의 '담빛예술창고'는 농산물을 저장하던 벽돌 창고였는데, 먼지를 털어내고 담양 특산물인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과 예술품들로 내부를 채웠다. 인근 지역인 광주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고,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다양한 예술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관광명소로만 알려진 담양에 폐 창고를 활용한 멋진 미술관이 생기자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담빛예술창고'안의 카페는 일 년에 3.5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지역의 명소로 떠올랐다.

외국에도 폐 공간이 지역 명소가 된 사례가 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1933 라오창팡'은 원래 소도축장이었다. 근대식 도축산업을 위해 1933년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소가 도축장으로 가기 위해 만들어진 통로가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는데, 지금은 사람들의 다양한 접근 동선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도축장에서 냉동육가공공장, 제약공장으로 차례로 사용되다가 2006년에 갤러리, 극장, 레스토랑, 디자인스튜디오를 갖춘 문화공간으로 변신하였다. 도축장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상하이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폐 철도 역사를 문화공간으로 바꾼 유명한 사례는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뮤지엄'이다. 1804년 최고재판소인 '오르세 궁'이 불타 없어진 자리에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위해 호화롭게 지어진 '오르세 역'이 1939년 문을 닫은 후 방치되었다가 1979년 미술관으로 변신하였다. 역의 특수성을 반영한 기둥이 없는 넓은 아치 공간은 화려한 장식적인 요소과 함께 '오르세 뮤지엄'의 상징이 됐고, 박람회를 염두에 두고 최고의 기술로 지어졌기 때문에 전시된 미술품보다 더 인기가 많은 미술관이 되었다.

(왼쪽) 통로가 미로처럼 연결된 상하이 '1933라오창팡'<br><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오른쪽) 폐철도 역사를 미술관으로 만든 파리 '오르세뮤지엄'" data-captionyn="Y" id="i20142434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423/20142434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오래된 건축물이 문화를 입으면서 사랑받게 된 이유는 첫 번째, 건축물을 통해서 역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한 '오르세 뮤지엄'이나 서구의 중국 진출을 보여주는 '1933 라오창팡' 처럼 건축물은 지어진 시대적 배경을 담은 역사의 생생한 기록물이다. 두 번째,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과거의 자신에 대한 연민이 많은 것처럼 발전한 국가일수록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자부심도 커진다. 세 번째, 경제적인 이유이다. 공장 건물이나 역사처럼 대규모의 건물을 지으려면 부지 확보와 건축 비용이 많이 드는데 오래된 유휴 건축물을 활용하면 건물 활성화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오래된 건축물의 활용도는 앞에서 언급한 이유 외에도 우리 곁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정서적인 유대감도 중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지역의 명소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사람도, 건축물도 시대에 맞는 변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편집자 주 : 김종대 건축가의 '건축 뒤 담화(談話)' 시리즈는 도시 · 건축 · 시장 세 가지 주제로 건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습니다. 격주 토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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