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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제2의 '기생충'이 나오려면?

영화 '기생충' 중 한 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연합뉴스)

코로나 사태로 괴멸적 타격을 받은 산업들 가운데 하나가 영화산업입니다.

영화 관람객의 감소 추이를 돌아보면, 영화 '기생충'의 미국 아카데미 4관왕 수상 소식이 들려온 2월 10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천776명이었습니다. 이후 아래와 같이 급감합니다. 4월 7일 1만 5천400여 명은 절망적인 숫자입니다.

(자료=영화진흥위원회)

결국 올 1~3월 국내 영화시장 매출액은 2천211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7.2% 수준에 그쳤습니다. 영화계는 향후 마이너스 80~90%에 이를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료=영화진흥위 '3월 한국 영화 결산')

문화체육관광부가 어제(21일) 고사 위기에 놓인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세부 지원책을 발표했습니다.
1) 영화 관람권의 3%를 제하던 '영화발전기금' 부과 기준을 0.3%로 낮춥니다. 다만, 영화비디오물진흥법 산하 시행령을 개정한 뒤 실시됩니다. 영화발전기금이 2016~2019년 연평균 540억 원씩 부과된 만큼 약 500억 원 정도의 지원 규모입니다.
2) 영화 관람권 한 장당 6천 원씩을 깎아주는 할인 영화권을 130만 장 공급합니다. 구체적인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예매에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쿠폰 발급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총 90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3) 중소 영화들의 제작 및 개봉 비용을 작품당 최대 1억 원씩 최대 42억 원 지원합니다.
4) 실업 상태에 놓인 현장 영화인들에게 직업훈련 기회를 주는 데 8 억원을 투입합니다.
5) 중소 영화관 200여 곳이 각종 특별 상영전을 개최할 수 있도록 또 30억 원을 지원합니다.

2~5)을 합치면 170억 원입니다. 1)을 포함해도 700억 원을 넘지 않습니다. 1~3월 시장 전체의 매출 감소분 2천200여억 원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대책영화인연대회의에 참여 중인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SBS와의 인터뷰에서 "부족한 지원금 규모에 대해 불만을 말하기 보다 정부가 이 금액을 보다 신속히 집행해주길 먼저 부탁한다"고 말했습니다.

최정화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

최 대표는 "영화는 '창작'과 '산업'의 두 부분이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산업 쪽에서 돈이 돌아줘야 창작 활동이 원활해진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산업 쪽이 이렇게 고사하면 창작 영역까지 붕괴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밀정'(2016년 750만 관객) 프로듀서로도 일했던 최 대표는 "영화 비즈니스는 창작-투자-매출까지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번 코로나 사태의 피해는 앞으로 수년 간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창작부터 개봉까지 7년 안팎이 걸렸던 영화 '기생충'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이하 기생충 제작 시간표)
[2013년] 아이디어 개발
[2015년 4월] 줄거리 요약본(트리트먼트) 완성
[2017년 12월] 시나리오 완성
[2018년 1월] 배우 캐스팅 완료
[2018년 5~9월] 촬영
[2019년 3월] 가편집본 내부 시사
[2019년 4월] 영화 마케팅 및 영화제 참석
[2019년 5월21일] 프랑스 칸 영화제 상영
[2019년 5월30일] 국내 개봉
[2020년 3월] 아카데미 수상

코로나19가 지금 극장에 걸린 영화들만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그 전 제작, 시나리오 작성 단계에 있는 많은 영화들, 그 전의 기획과 아이디어들까지, 즉 우리 영화 생태계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입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꽃잎과 가지, 줄기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 부문까지 동시에 고사하고 있는 셈입니다.

2012년 '광해'와 2017년 '신과 함께-죄와 벌'로 두 차례 1천만 영화를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는 SBS와의 통화에서 "영화는 지금 순간만 볼 것이 아니라 스토리 산업이자 차세대 먹거리라는 측면도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장 산업으로도 인정해달라는 뜻입니다.

원 대표는 "사실 현재 한국 영화는 아시아시장을 석권한 뒤 이제 기생충 수상을 통해 세계시장으로 확대되는 K무비 2.0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장기 투자라는 측면에서 FI(재무적 투자자)들의 걱정이 날로 커지고 있다. 나도 앞으로 제작비 200억 원대 영화들을 몇 편 준비 중인데, 현 극장 상황을 고려할 때 걱정이 많다. 한국 영화가 지금 도약의 시기를 맞았는데, 코로나 사태로 순식간에 괴멸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한토막] 통상 영화계에선 총제작비(순제작비+마케팅P&A비용) 100억 원 회수를 위해선 100 ÷ 3800 = 263.…'그럼 순익분기점은 대략 관객 260만 명 전후' 이런 식으로 어림 계산을 합니다. 그럼 5주 전후의 상영기간을 고려할 때 매일 평균 5~7만 명이 영화를 봐야 합니다. 하루 전체 관객이 1만 5천400여 명(4월 7일)이면 수 년을 투자해서 만든 영화, 어느 한 편도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인 겁니다.

영화인들은 '정부가 영화 산업의 성장성과 문화적 의미를 좀 더 생각해줬으면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기 투자 산업, 미래 성장 산업이라는 두 측면에서 정부의 영화 지원 모태펀드 규모를 대폭 늘리고, 과감한 감세 정책을 도입해 "정부는 우리 영화 산업이 쓰러지도록 절대 놔두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또 다른 영화사 대표는 SBS에 "지금 상태에선 관객 분들에게 영화관에 오시라고 쉽게 말을 못한다. 그래도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 영화관에 오셨을 때 지금처럼 세계적 수준의 한국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으려면 그 몇 개월, 몇 년 전인 지금 이 순간, 영화인들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는 점은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영화가 과거 어려운 국난의 시기마다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줬다는 점도 떠올려봅니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약속', '8월의 크리스마스'가 대표적입니다. 당시에도 타격을 받은 산업들 가운데 하나가 영화산업이었습니다.

참고로 2019년 한국 영화시장의 규모는 6조 1천772억 원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18년까지 '관람 매출'을 중심으로 계산해 시장 규모를 2조3천764억원으로 집계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각종 광고 수익과 매점 판매 등 극장 내 다양한 매출까지 포함해 영화산업 규모를 6조 원 이상으로 대폭 수정했습니다.) 영화계가 700억 전후의 지원 규모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영화계에 대한 추가적인 지원은 분명히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코로나19로 우수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모든 영화인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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