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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는 "휴먼 에러"…하청업체와는 계약 해지

● 방사선 피폭사고는 "휴먼 에러"…사고 피해자에게 책임 떠넘겨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서울반도체는 반도체인 LED를 주력으로 생산하는 업체입니다. 본사 직원과 하청업체 등 협력사를 포함해 총 2천여 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작년 7월 서울반도체에서는 하청업체 소속 직원 2명이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직원과 그날 처음 일을 시작한 신입사원이었습니다. 당시 23살이던 이 OO군은 방사선에 피폭돼 손가락이 누렇게 변하면서 피부가 벗겨졌고, 아직까지도 손가락 통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서울반도체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는 답변만 내놓았습니다. 더구나 피해자들에게는 보상은 고사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취재 결과 서울반도체 측은 사내방송을 통해 계속해서 사고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올해 1월, 서울반도체 사내방송 : 안전장치도 설치되어있었고 (장비가) 정상 작동하였으며 차폐도 되어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장비의 문제점이 아닌 휴먼 에러로 판단됩니다.]

"휴먼 에러"… 서울반도체는 이 사고를 '사람의 잘못'이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해당 방송에서는 피해자의 행동을 끊임없이 지적하며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습니다. 사고의 책임이 갓 입사한 20대 청년들에게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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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폭사고는 하청업체 직원들 책임일까?

사고를 당한 직원들은 서울반도체의 하청업체인 SI세미콘 소속입니다. SI 세미콘은 지난 2012년 서울반도체에서 분사한 회사로, 직원들과 사무실이 모두 서울반도체와 같은 건물에 있습니다. 사내 하청업체인 겁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사고 이후 약 5개월 동안 피폭사고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국 지난 12월 24일 원안위는 서울반도체 측에 과징금과 과태료를 포함해 4천50만 원의 행정처분을 내립니다. 사고의 책임이 하청업체가 아닌 '서울반도체'에 있다는 겁니다.

원자력안전법(이하 원안법)에 따라서 사고의 책임은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신고기관 '서울반도체'에 있습니다. 원안위는 서울반도체 측에 크게 3가지 문제가 있다고 봤습니다.

첫 번째는 직원이 방사선에 피폭되었다는 겁니다. 원안법 91조에 따라 회사는 방사선 작업종사자들이 등가선량이상 방사선에 피폭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피폭된 직원들의 등가선량은 선량한도인 500mSv/yr를 넘었고, 이에 따라 서울반도체는 과태료 600만 원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로 방사선 발생장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사선발생장치 취급기술기준 미준수'로 과태료 450만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관리가 소홀했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방사선 발생장비를 사용하면, 회사는 장비 위치만 변경해도 행정기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장비 2대를 무단으로 이동해 사용하고, 심지어 신고도 하지 않고 장비를 베트남에 무단 수출한 것이 드러나 과징금 3천만 원 처분을 받았습니다.

서울반도체는 원안위뿐만 아니라 노동부의 조사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원안위와 노동부의 조사 결과 별게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서울반도체 사내방송 : 원자력 안전위원회, 노동부 산하 기관 포함 6개 기관에서 연 인원 112명이 회사를 방문하여 정밀 실사를 받았고 종합 진단 결과 약 260건의 개선 사항이 도출되었으나 크리티컬한 사항은 없었으며, 배관 흐름 표시 미흡 등 경미한 항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원안위는 과태료와 과징금 처분을 내렸고, 노동부는 260개 항목을 개선하라고 했는데 서울반도체는 경미한 항목이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피폭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나온 회사 입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반성이나 책임을 통감하는 부분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서울반도체에게 4천만 원의 과태료는 정말로 경미한 항목일 수 있겠습니다.

● "장비 문 열고 1년간 작업해도 안전" 서울반도체의 안일한 방사선 인식

원자력은 우리 삶의 질을 크게 올렸습니다. X-ray나 CT촬영으로 수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었고,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막대한 전기는 산업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원자력이 축복으로 다가오는 건 언제나 안전하게 사용할 때뿐입니다. 조금이라도 관리에 소홀하게 되면 피폭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원자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 정말 안타까운 것은 서울반도체의 방사선에 대한 안일한 인식입니다.

[서울반도체 사내방송 : 방사선은 연간 127밀리시버트로 측정이 되었고 이 수치는 매년 1년간 작업을 해도 연간 허용치인 500밀리시버트 대비 약 4분의 1 수치로 1년 동안 문을 열고 작업해도 안전하다는 결과입니다.]

방사선이 나오는 장비의 문을 1년 동안 열어놔도 안전한데, 피폭사고가 발생한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방사선 기준에 안전기준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방사선은 사실 어느 정도가 안전한지 아무도 모릅니다. 때문에 기준치 이하라서 안전하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뿜어져 나오는 방사선량이 안전 기준 미만이라 하더라도 그 위험성을 쉽게 기각해선 안 됩니다. 고용노동부의 고시에도 같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기준 [고용노동부고시 제 2018-62호]

제3조(노출기준 사용상의 유의사항)
③ 유해인자에 대한 감수성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에서도 직업성 질병에 이환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노출기준은 직업병 진단에 사용하거나 노출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업성 질병의 이환을 부정하는 근거 또는 반증자료로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기준치 이하다"라는 말이 "안전하다"는 말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서울반도체는 방사선 기준치를 책임을 회피하는데만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 사고 난 하청업체는 결국 폐업…"재계약 안 해"

서울반도체가 책임을 하청업체 SI세미콘과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사이, SI세미콘은 결국 폐업했습니다. 서울반도체가 올해 SI세미콘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SI세미콘은 서울반도체에서 2012년 분사한 회사입니다. 서울반도체 본사 건물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사내 하청업체이고, SI세미콘은 업무는 100% 서울반도체의 용역을 받은 일입니다. 서울반도체가 계약을 종료하니 SI세미콘은 일감이 없고, 결국 문을 닫은 겁니다.

이에 따라 SI세미콘 직원들 60여 명은 3월 31일부로 전원 해고됐습니다.

서울반도체 측은 "매출이 감소됨에 따라 도급유지가 어려워져 협의 하에 계약이 종료된 것"이라며 피폭사고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직원들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직원들 중에는 원래 서울반도체 정직원이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2012년에 서울반도체 정직원으로 입사해, 회사가 분사되면서 SI세미콘으로 강제 이직했고, 사실상 서울반도체로부터 폐업 당해 일자리를 잃었다는 겁니다.

해고된 직원들은 SI세미콘으로 분사 후에도 똑같은 업무를 해왔고, 하도급법을 어겨가며 메일로 직접 지시를 받아왔는데, 회사가 쉬운 해고를 위해 분사를 시킨 거였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일부 직원들에게는 계약직으로 서울반도체에 다시 입사할 것을 권유했는데, 정규직으로 일하던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만들기 위해 회사가 꼼수를 펼쳤다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방사선 피폭사고가 발생해 취재하게 된 서울반도체는 2020년에도 똑같이 반복되는 열악한 노동현장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교육도 못 받고 방사선 작업에 투입된 하청업체.
사고 발생하자 책임을 떠넘기는 원청.
'휴먼 에러' 첫 직장에서 사고의 책임을 떠안은 20대 청년들.
법망을 피해 벌어지는 위장 하도급. 그리고 손쉬운 해고.

지금까지 대책과 법안이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데 유리했던 것은 아닌지, 기업이 아무런 책임감을 못 느낄 정도로 법이 약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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