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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집으로 출근 중입니다_# 공간 변화의 시작

김종대|건축가. 디자인연구소 '이선' 대표.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재택근무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재택근무가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주목을 받고는 있지만 재택근무에 대한 효율성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재택근무는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어 개인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되는 '집단 창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이유로 외국에서는 재택근무와 사무실 근무를 병행하는 기업들도 있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재택근무자 스스로 일과 여가를 잘 조절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일과 여가의 구분은 단순히 마음 자세의 문제가 아닌 상당 부분 공간 구성의 문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 BBC 생방송 인터뷰 중 자녀난입 방송사고.

2017년, 부산의 한 외국인 교수가 자택에서 BBC 생방송 인터뷰를 하던 중 느닷없이 어린 두 자녀들이 방으로 들어와 귀여운 방송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방은 교수에게는 업무 공간이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친숙한 놀이 공간이었기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인데, 일과 여가 공간의 구분이 마땅치 않은 우리의 아파트 구조 안에서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일을 위한 공간은 이제까지의 주거에서는 요구되지 않았던 부분인 것 같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일과 거주는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직장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주거와 업무 공간이 분리되었으나 재택근무라는 형태가 도입되면서 일과 거주 공간이 다시 합쳐지게 되었다. 하지만 복잡해진 현대사회의 생활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거 공간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일하는 공간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

(왼쪽) 거실 중심형아파트(경희궁자이) 거실과 침실이 직접 연결되어 있다.<br><button class= 이미지 확대하기
(오른쪽) 복도 연결형 아파트(파리 Repulique),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복도로 분리하고 있다." data-captionyn="Y" id="i201423572"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200421/201423572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주거 공간 안에서도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구분할 수 있다. 침실은 사적 공간이지만 거실과 주방은 가족이 모이는 공적 공간이다. 주택을 설계할 때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분리하여 배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층별로 분리하거나 동으로 나누어 배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면적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대다수 아파트는 거실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어있어 사적 공간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적 공간을 지나쳐야만 한다.

창이 있는 면을 기준으로 공간을 배치하는 베이식(bay는 기둥 간격을 말하는 것으로 빛을 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창이 있는 면을 기둥 혹은 벽으로 나누어 나누어진 공간이 3개일 경우 3베이, 4개일 경우 4베이 아파트라 부른다) 아파트를 선호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일자 형태의 공간 구성이 대세를 이루게 됐다.

결국 우리나라 아파트는 일자 형태의 공간을 최대한 넓게 쓰기 위해 복도를 두지 않고 거실을 중심으로 공간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거실 중심의 공간 구성은 공간의 독립성을 해치는 결과도 가져왔다. 거실은 밤늦게 귀가하는 자녀들을 감시하기 가장 좋은 위치가 되었고 거실에 외부인이 초대되었을 때, 집 안의 다른 사적 공간의 노출이 염려되어 집에서의 모임을 꺼려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일을 위한 작업 공간의 확보는 유럽의 오래된 상가 주택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가주택의 1층은 주로 상가나 사무실로 사용하고 2층과 3층은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층별로 분리된 공간은 업무 공간, 공적 공간, 사적 공간으로 차례로 이어져있어 기능적인 분리가 가능하다.

아파트를 복층으로 만들어 아래층은 업무 공간과 거실로, 위층은 침실 등의 사적 공간으로 나누어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래층에서 부모들이 친구들과 홈 파티를 하여도 위층의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할 수 있다. 기존의 아파트에서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업무 공간으로 활용하고 거실과 안방이 있는 공간 사이에 중간 문을 설치하면 업무 공간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물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을 반영했을 때 가능해진다. (WOZOCO, 네덜란드 집합주택, MVRDV 설계/ 사진은 MVRDV 홈페이지)

공간의 형태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 건축가들에게 아파트 평면의 다양화는 도전의 대상이었지만 항상 경제성에 밀려 이루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사무실 창밖으로 만개한 벚꽃을 보며 천편일률적인 우리네 아파트가 재택근무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될지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을 가져 본다.

* 편집자 주 : 김종대 건축가의 '건축 뒤 담화(談話)' 시리즈는 도시 · 건축 · 시장 세 가지 주제로 건축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습니다. 격주 토요일 '인-잇'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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