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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의원님의 수상한 예산심사는 계속됩니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마침] 의원님의 수상한 예산심사는 계속됩니다
※'마침'은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의 줄임말이자 길고 긴 종합기사를 뜻합니다. 개별 기사를 하나씩 찾아 읽기보다는, 다소 길더라도 한 번에 읽고 싶어할 독자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를 끝마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2020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을 의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예산안 등의 심의에 애써 주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김재원 위원장님과 위원님 여러분, 예산안 협상을 마무리해 주신 여야 지도자 여러분께 각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정부는 예산을 적기에 효율적으로 집행해 국가의 당면과제에 대응하고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

"우리는 오늘 국민의 삶과 국가 안위를 위해서 쓰여야 될 국가의 재정이,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피 같은 세금이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적 뒷거래의 떡고물처럼 이리저리 나눠지고 그것으로 예산이 확정되는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우리 국회가 이렇게 20대 국회를 마감하는 것이 치욕스럽습니다."
-김재원 의원(예산결산특별위원장)

2019년 12월 10일, 국회 본 회의장. 2020년 예산안 수정안이 161명 투표, 156명 찬성, 3명 반대, 2명 기권으로 가결됐다.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는 감사인사를 했고 이 전 총리가 거명까지 했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김재원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회의록에 기록된 것만 '날치기' 27회, '세금 도둑' 6회 등을 외치며 항의했다. 20대 마지막 예산국회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가. 또 이번이 새삼스러웠을까, 아니었을까.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2018년부터 국회의 예산안 심사를 분석해 왔다. 이번에도 여느 해처럼, 또는 더 소란스럽게, 혹은 더 외면받으면서 새해 예산이 확정됐다. [마부작침]은 국회 예산회의록 4,795페이지와 각 상임위-예결위 심사보고서를 근거로 예산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분석했다. 그리고 질문을 던졌다. "의원님, 마지막 예산 심사 제대로 하셨습니까?"

● 512.3조 원 '슈퍼 예산'... 10년 새 두 번 바뀐 앞자리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2007년 이후 국가 예산은 줄어든 일이 없다. 2007년 237조 1,000억 원에서 2020년 512조 2,505억 원으로 13년 만에 2배 넘게 늘었다. 2011년 처음으로 300조 원을 돌파했고 6년 만인 2017년 400조 원을 넘어섰으며 그로부터 3년이 지나 512조 원, 10년 만에 앞자리를 두 번 갈아 치웠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사회복지 예산으로 유일하게 30%를 넘겼다. 고령화 추세가 강화되는 만큼 이 분야 예산 비중은 앞으로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 국회 예산 심사, 이렇게 진행했다

새해 예산을 정하는 절차는 대략 이렇다. 정부가 예산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면 이를 국회가 심사해 확정한다. 2020년 예산이 확정되는 과정은 아래와 같았다.
[마부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국가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 시작해 12월 31일 종료된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정부는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까지 국회에 정부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 시한은 9월 3일까지, 정부는 올해 딱 맞춰서 제출했다.
[마부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정부 예산안 제출 이후부터 국회의 예산 심사는 가능하다. 허나 통상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가 끝나는 10월 말에서 11월 초, 정부 대표의 시정연설을 기점으로 본격 예산 국회가 시작된다. 대통령이 직접 연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부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서 먼저 소관 부처 예산안에 대해 예비심사를 벌인다. 심사에 앞서 예비심사검토보고서를 제시하고, 심사가 끝나면 상임위는 각각 예비심사보고서를 마련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보낸다.
[마부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상임위 예비심사를 바탕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본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에 앞서 전문위원들은 부처별과 종합 검토보고서를 마련해 심사를 돕는다. 세부내역의 실질적인 심사가 이뤄지는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심사는 이번엔 11월 11일부터 진행했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 예산 심사는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한다. 이날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 날 자동으로 본 회의에 부의되는데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대표의원이 합의하면 계속 심사할 수 있다. 2019 예산안 심사부터 2년 연속 11월 30일까지 예결위 심사를 마치지 못했다.
[마부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작침]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국회는 헌법에 따라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즉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2018년에는 12월 8일에 의결했고 2019년엔 12월 10일에 했다. 법정 시한을 또 넘겼다.

● 국회발 신규사업, 역대 최대 규모

[마부작침]은 이번에도 '국회발 신규사업'에 주목했다. 국회발 신규사업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는 없지만 국회에서 필요하다며 추가한 사업이다. 2020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국회가 추가한 신규 사업은 487건, 예산액은 합쳐서 8조 557억 9,500만 원이었다. 정부 동의를 받지 못했거나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제외된 것을 감안하면 국회의원들이 이보다 더 많은 신규사업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발 신규사업 가운데 특정 지역과 관련이 있는 지역성 사업은 329개 사업, 67.6%가 해당했다. 지역성 사업이 모두 문제 있는 사업은 아니다. 다만 지역구 의원들, 혹은 차기에 노리는 지역구가 있는 의원들이 지역 예산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노력했을 가능성이 있어 따로 분류했다.
① 마지막 예산 국회도 그랬다

● 마부작침의 기준 '4불 심사', 이번에는?

[마부작침]은 국회의 예산심사가 적절하게 이뤄졌는지 판단하기 위한 기준으로 '4불'을 정했다. '네 가지 아닌 것'(불 不)으로 첫째는 '불법', 즉 관련 법령이나 예산 편성 지침 등을 어기고 예산을 편성한 사업이다. 둘째는 '불용', 즉 과거 예산을 편성해도 쓰지 못한 이력이 있거나 새해에도 사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사업을 이른다. 셋째 '불심사', 비슷한 내역의 사업이라고 해서 뭉텅이로 심사하며 세부 사업은 심사 없이 넘어간 것을 뜻한다. 넷째 '불논의', 예산회의록 어디에도 논의한 흔적이 없는 사업을 가리킨다.

2018년 서울시 하수처리장 확충사업 예산 836억 원, 2019년 서울시 노후 하수관로 정비사업 예산 391억 원. 공통점은 하수 관련 사업, 서울시 사업, 또 국회발 신규사업, 민주당 한정애 의원 요구 사업, 그리고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을 위반한 예산 편성이었다는 점이었다.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에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는 국비 보조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데 국회에서 이를 위반하고 사업 예산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2020년 예산심사는 다행히 서울시 하수 관련 사업 예산을 '불법' 편성하진 않았지만 또 다른 '불법' 사업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불용, 불심사, 불논의 예산도 어김없이 발견됐다.

● 의원님, 마지막 예산 심사도 그렇게 하셨네요?!

2018년 국회 예산심사 분석 당시 [마부작침]이 던진 질문은 "의원님, 예산심사 왜 그렇게 하셨어요?", 2019년엔 "의원님, 예산심사 왜 또 그렇게 하셨어요?"였다. 2019년 10월 말 [마부작침]은 아예 2020년 예산안 심사를 시작할 무렵에 다시 물었다. "의원님, 이번 예산 심사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큰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20대 국회의 마지막 예산 심사는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국회는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나빠진 면들이 눈에 띄었다. 다른 쟁점 법안들에 치여 예산 심사를 뒷전으로 하는 모습, 예산안과 쟁점 법안 통과를 연계하는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자 아예 특정 야당을 배제하고 강행 처리하는 모습도 등장했다. 

● 2020년도 예산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마부작침]이 골라 낸 국회 예산 심사의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다. 불법, 불용, 불심사, 불논의. 예산 심사에 주요하게 고려할 사항들이 누락됐다는 취지로 '불不-'을 붙였다. 문제가 중복된 사업도 있었으나 가장 주요한 폐해를 중심으로 분류했다.

● 지키지 않은 원칙: ① '불법' 예산

창업인프라 지원사업-지식산업센터 건립. 2020년 신규 사업지 7곳에 대한 예산이 편성됐다. 각 사업지에 우선 초기 설계비 10억 원씩을 배정하지만 이후 4년에 걸쳐 센터 건립비의 최대 70%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거웠다.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해당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측은 건립부지가 사전에 확보돼 있는지, 혹은 2020년 중에 확보 가능한지, 또 과거 동일한 지역에 지원한 실적이 있는지를 근거로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국회에서 지적해 왔던 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신규 신청한 곳 중 전북 전주에 대해 중기부는 "동일한 번지 바로 옆 동일한 건물에 추가로 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라며 난색을 보였다. 중기부 예산 편성 지침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기선 소위원장은 "중기부가 제시한 대로 결정하겠다"며 논의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정리된 줄 알았던 전북 전주, 최종 예산에서 다른 지역을 제치고 신규 사업지 7곳에 포함됐다. 현장에 가보니 완공을 앞둔 지식산업센터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이 새로 지을 센터 부지였다. 전주에만 이런 센터가 3곳, 앞으로 500억 원 가까운 국가균형 특별회계 예산이 투입된다. 지역구 의원은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이었다.

지자체 공무원은 "정 의원이 4+1 협의체 합의 국면에서 협상 카드로 해당 예산을 잘 관철시켜 줬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균형 발전 예산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취재진이 수 차례 질의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이번에도 관련 상임위 예비심사. 경기도 구리시 아천빗물펌프장 지원 예산에 대해 행정안전부 측은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돼야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면서 수용 곤란하다고 밝혔다. 홍익표 소위원장은 "정부 의견을 수용하겠다"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상임위 결론과 달리 최종 예산에 빗물펌프장 예산 4억 원이 반영됐다.

정부가 곤란하다고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법에 따라 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돼 있어야 예산 지원이 가능한데 근거가 없다는 것. 구리시는 2005년 재해위험지구에서 해제됐다. 해당 지자체 담당자는 "절차를 이행해야 쓸 수 있는 예산이라 이제 지구 지정 절차를 밟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예산부터 받아 놓고 사전 절차를 뒤늦게 처리하려 하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다. 이에 대해 윤 의원 측은 "예산 편성 과정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적은 없다"라고 해명했다.

2020년 국회발 신규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2조 725억 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특별회계로 예산을 편성하려면 근거 법령이 먼저 의결돼야 하지만 국회는 예산부터 통과시켰다. 예산부수법안인 '소재부품장비예산 특별법'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건 이로부터 17일 뒤인 지난해 12월 27일, 그 동안은 '불법' 예산이었다.

이렇게 예산 편성 원칙과 관련 법령을 어기면서 편성된 '불법 예산'은 79개 사업, 4조 7천 635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 법적 근거, 원칙 무시한 불법 사업 전체보기 http://bit.ly/2u5t42c

● 사업성 낮은데도 예산 편성... 왜?: ② 불용 예산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경북 포항 영일만을 가로지르는 대로, 영일만 횡단대로 사업. 사업 적정성이 낮다는 조사 결과 때문에 편성이 어렵다고 국토교통부 측이 답했지만 김석기 의원은 "포항이 지진 피해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라며 재검토를 요구했다. 국토부 측은 재차 "국가재정법 사항이라 굉장히 어려움이 있다"라고 말했고 그렇게 정리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사업 역시 최종 예산에 포함됐다.

[마부작침]이 2018년, 2019년 국회 예산심사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 '영일만 횡단대로' 사업은 2020년에도 또 다시 설계비 10억 원이 배정됐다. 2016년부터 5년 연속, 합계 70억 원이 배정됐으나 단 1원도 쓰지 못했다. 설계비 집행을 위한 전제인 본 사업을 기획재정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반대해 예산이 계속 묶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과 2011년 정부의 타당성 조사나 2017년 KDI의 사업성 재검토 결과 모두 경제성이 낮다고 나왔고 2019년 초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 선정에서도 탈락했다. 그런데도 계속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이다. 박 의원은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 예산에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마부작침]은 이처럼 사업성이 낮거나 예산을 줘도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편성한 예산을 '불용 예산'으로 분류했다. 예산 편성이 근본적으로 국가 가계부를 꾸리는 작업인 만큼, 사업성 평가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불용 예산'은 15개, 약 500억 원 규모였다.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 사업성 낮고 못 쓰는 불용 예산 사업 전체보기 http://bit.ly/2S8TurK

● 의원님 예산은 '뭉텅이 프리패스': ③ 불심사 예산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도로병목지점 개선'이라는 이름의 사업. 18곳에 각각 10억 원씩 지원하는 게 확정됐다. 어느 구간인지, 왜 그 구간 사업에 예산이 필요한지 질문도, 답변도 없다. 상임위 예비심사, 예산결산특위 본 심사를 거치는 동안 '도로병목지점 개선'이 언급된 건 지난해 10월 28일 강훈식 의원이 질의한 단 한 번뿐이었다.

국가하천 정비, 전통종교 문화유산보존 등 해마다 으레 편성하던 사업의 명분과 필요성만 심사하고 정작 그 예산을 받을 곳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설명이 빠진 뭉텅이 심사 예산, [마부작침]은 이를 '불심사 예산'으로 분류했다. 이런 '불심사 예산'은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 예산'이 되기 쉽다. 2020년 예산에서는 48개, 463억 5800만 원 규모로 분석됐다. 절반 이상이 국토교통위원회 소관 사업이었다.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 뭉텅이 처리한 불심사 예산 사업 전체보기 http://bit.ly/3aZKw92

● 어디에도 흔적 없는 깜깜이 예산: ④ 불논의 예산

심사는 했다는 데 어디에도 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기록 전무 '깜깜이 예산', [마부작침]은 이를 '불논의 예산'이라고 이름 붙였다. 각 상임위 예비심사, 예결위 본 심사에 이르기까지 회의록을 작성해 남기는 과정 어디에도 언급조차 없었다가 확정된 사업이다. 지역 민생을 위한 필수 예산인지, 정치적 거래 수단인지 가늠할 근거가 없는 이런 '불논의 예산'은 104개, 1255억 원 규모로 분석됐다.

국회 예산 심사의 투명성을 위한 장치인 예산회의록에 적잖은 규모의 사업들이 단 한 번 거론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2월 1일 오전 9시 출고) [마부작침] ② 2020년 예산 심사에 부족했던 네 가지

☞ 논의 흔적 없는 불논의 예산 사업 전체보기 http://bit.ly/2S3xONQ

'불법', '불용', '불심사', '불논의'. 2020년 예산 심사에도 부족했던 이 네 가지, 4불은, 이런 국회에 나라 살림의 감독을 맡긴 국민들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 3년 연속 증가했다, '국회발 신규사업'

'국회발 신규사업'은 원래 정부 예산안엔 없었지만 국회 심사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사업을 가리킨다. 2018년 예산에서 국회발 신규사업은 447건이었는데 2019년은 453건, 올해는 작년보다 서른 건 이상 늘어난 487건이었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사업 수뿐 아니라 사업 예산 규모도 올해가 역대 최대다. 2018년은 1조 2,580억 원, 2019년은 9,929억 원으로 1조 원 안팎이었는데 올해는 8조 557억 9,500만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농림축산식품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은 예산 규모가 작년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에는 공익기능증진 직불제 사업이 상당한 영향을 줬다. 직불제 사업은 농사 짓는 사람에게 농지 면적당 일정액을 정부가 보조하는 제도다. 기존 직불제는 쌀에만 편중돼 있었는데 올해부터 모든 작물 대상으로 확대하기 위해 공익기능 증진직불금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농림부 예산안에 담겨 있지 않았는데 국회에서 추가했고, 근거가 되는 법률인 '농업ㆍ농촌 공익기능 증진 직접지불제도 운영에 관한 법률'은 예산 확정 이후인 지난해 12월 27일 통과됐다. 예산부터 주고 근거 법령을 나중에 만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소재ㆍ부품ㆍ장비 관련 사업들이 다수 포함되면서 예산액이 늘어났다. 역시 정부 예산안에 없었던 소재ㆍ부품ㆍ장비 경쟁력 강화특별회계(이하 소특회계)를 국회 심사 과정에 새롭게 편성했고 소특회계에 포함될 사업들을 신규 사업으로 집어넣었다. 이 또한 예산부터 확정해 놓고 소특회계의 법적 근거가 되는 부수 법안을 통과시켰다.

● 3년째 반복되는 '4불(不) 심사'

[마부작침] ②편 기사에서 살펴봤듯 '4불 심사'는 올해도 계속됐다. 특히 불법 예산과 불용 예산의 증가세가 눈에 띄었다. 관련 법령과 예산 편성 지침을 어기면서 편성한 불법 예산은 2018년부터 3년 연속 증가했다. 2018년에선 8건을 확인했는데 올해는 79건이나 발견됐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사업성이 낮거나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큰 불용 예산 역시 3년 연속 증가했다. 2018년 4건, 2019년 11건에 이어 올해는 15건으로 분석됐다. 15건 중 13건이 지역성 사업이었다. 여기에 배정한 예산 규모 또한 매년 2배 넘게 증가했다. 2018년 45억 원, 2019년 131억 1,000만 원, 올해는 499억 9,200만 원이다.

개별 사업에 대한 논의 없이 뭉텅이로 처리하는 불심사 예산, 회의록에 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불논의 예산은 작년보다 감소했다. 불심사 예산은 2018년 수준인 48건으로 줄었다(2018년 42건 → 2019년 114건 → 2020년 48건). 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불논의 예산은 줄긴 했지만 올해도 100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매번 국회에서만 집어넣는 사업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기초생활체육 저변 확산 지원사업'. 작년에도, 올해도 정부안에선 빠졌지만 국회에서 요구해 예산이 편성된 사업이다. 정부 측은 사업 지연으로 예산을 편성해도 쓰지 못하고 있다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지만 영등포의 신길 복합문화체육센터 등 2곳 예산이 편성됐다. 2년 연속 이 사업 예산을 요구한 김영주 의원의 지역구는 서울 영등포구다. 이렇게 정부예산안엔 없었지만 국회가 2년 연속 추가한 사업이 2020년에 27개, 457억 4,800만 원 규모다. 이 중 24개 사업이 지역성 사업이었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부산항축제 지원', '교사 겸직 원장 지원비' 사업은 2015년부터 6년 연속 국회발 신규사업으로 반영됐다. '영일만 횡단대로' 사업은 5년 연속, '대한민국 청소년트로트 가요제'와 '서울 K-POP 공연'은 4년 연속, '코리아드라마 페스티벌'과 '동북아 해양관광레저 특구 조성지원'은 3년 연속 국회에서 추가하고 있는 사업들이다.

정부에서 미처 파악하지 못했거나 시급성을 간과한 사업을 국회에서 추가하는 건 예산심사의 순기능으로 볼 수 있다. [마부작침]이 이제까지 접촉했던 모든 의원들은 자신들이 요구했던 신규 사업이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 사업들은 정부 예산안에서 매번 제외되고 있고 국회에서만 추가되고 있다는 점은 사업의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 2년 이상 연속 국회발 신규사업 전체보기 http://bit.ly/2OaXwyI

● 회의록 피하기 대작전? 소소위 대신 '간사 협의체'
2020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 분석

정회 중인데 기획재정부 차관은 들어오라는 의원의 주문,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회의에서 오간 모든 발언을 기록하던 속기사는 정회 중 기록을 멈췄다. 김성식 의원이 기재부 차관과 나눈 대화는 제 3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른 회의록에서도 의원들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잠시 정회 요청하시고요, 이게 속기록에 남으니까." 같은 발언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국회 회의록은 국회에서 열린 회의의 내용과 결과를 충실하게 기록한 문서다. 공적 기록으로 누구나 볼 수 있다. 특히 예산회의록은 의원들이 국가 예산을 어떤 의도로 증액하거나 감액했는지, 신설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의원들이 나서서 회의록에 논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예산회의록에서 400회나 등장했던 깜깜이 심사의 대명사격인 '소소위', 이번 예산 심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소위는 소위원회의 소위원회, 예산 심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야 간사와 정부 관계자만 참여하는 기구다. 법에 없는 임의기구라 공개하거나 기록을 남길 의무가 없는데 그 동안 국회는 심사 막바지에 쟁점 예산 상당수를 소소위에서 '깜깜이 심사'해 문제가 됐다.

[마부작침]을 비롯한 언론들이 계속 지적해왔기 때문에 바뀐 것일까. 그런 것처럼 보였다. 여야는 소소위 대신 간사 협의체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소소위와 달리 간사 협의체 회의는 회의록을 남기겠다는 방침까지 내비쳤지만 결국은 공개도 기록도 하지 않았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운영은 소소위와 다를 게 없었다.

2019년 11월 27일 열린 예산결산특위 예산안등조정소위 마지막 회의에서도 간사 협의체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염동열 의원은 "15명이 11차례 회의에서 전체 772건을 처리하지 못해 482건을 보류했다"면서 "여야 간사 3명이 482건을 사흘 동안 처리할 수 있겠냐"라고 비판했다. 이현재 의원은 "심사 과정이 항상 밀실, 깜깜이 비판을 받아왔다"며 "반드시 공개하고 속기록을 남길 것을 요청한다"라고 말했다. 간사 협의체는 그럼에도 개명 전 소소위처럼 운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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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님, 예산심사 언제까지 이렇게 하실 건가요?

[마부작침]은 2018년부터 올해 2020년 예산까지 3년 연속 국회 예산회의록을 분석해 국회의 부실한 예산 심사를 비판했다. 일부 나아진 면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2018년과 2019년 연속으로 보조금관리법 및 시행령을 무시해가면서 편성했던 서울시 하수 관련 예산은 올해 편성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지역 예산을 꽂아 넣거나 법과 지침을 무시하는 발언이 나오는 경향은 다소 줄어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매년 국회 신규 사업은 증가했고 '4불 심사'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회의록을 '패싱'하려는 의원들도 목격됐다. 스스로 지적했듯 시간에 쫓겨 제대로 심사하지 못한 채 상당수 예산 심사를 법외 기구에 넘겼다. 2020년 예산 심사는 아예 공직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개정 논의에 밀려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제1야당이 예산안을 볼모로 쟁점 법 개정을 가로막자 여당과 다른 야당들은 자기들끼리 새해 예산을 확정해 버렸다. 이대로는 21대 국회에서도 '구태 심사'가 개선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산 심사 기간 자체를 늘려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예산안 제출 뒤 두 달이 지나 심사를 시작하고 한 달여 만에 끝내야 하는 구조에서는 졸속 심사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정감사를 6월에 하거나 상시 국감으로 전환하고 9월부터 예산 심의에 들어가는 등 예산 심사 기간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소소위나 간사협의체처럼 주요 예산에 대한 모든 논의는 최소한 기록이라도 해야 한다"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부작침]은 21대 국회의 첫 번째 예산 심사, 2021년 예산 심사는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갖겠다.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한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

취재: 심영구, 정혜경 데이터 분석: 안혜민 디자인: 안준석, 김민아 인턴: 이승우, 이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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