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도 예산안에 부족했던 네 가지
● 지키지 않은 원칙: ① '불법' 예산
창업인프라 지원사업-지식산업센터 건립. 2020년 신규 사업지 7곳에 대한 예산이 편성됐다. 각 사업지에 우선 초기 설계비 10억 원씩을 배정하지만 이후 4년에 걸쳐 센터 건립비의 최대 70%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뜨거웠다.
이렇게 정리된 줄 알았던 전북 전주, 최종 예산에서 다른 지역을 제치고 신규 사업지 7곳에 포함됐다. 현장에 가보니 완공을 앞둔 지식산업센터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이 새로 지을 센터 부지였다. 전주에만 이런 센터가 3곳, 앞으로 500억 원 가까운 국가균형 특별회계 예산이 투입된다. 지역구 의원은 민주평화당 정동영 의원이었다.
지자체 공무원은 "정 의원이 4+1 협의체 합의 국면에서 협상 카드로 해당 예산을 잘 관철시켜줬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균형 발전 예산의 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취재진이 수 차례 질의했지만 답하지 않았다.
정부가 곤란하다고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법에 따라 재해위험 개선지구로 지정돼 있어야 예산 지원이 가능한데 근거가 없다는 것. 구리시는 2005년 재해위험지구에서 해제됐다. 해당 지자체 담당자는 "절차를 이행해야 쓸 수 있는 예산이라 지구 지정 절차를 밟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예산부터 받아 놓고 사전 절차를 뒤늦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다. 이에 대해 윤 의원 측은 "예산 편성 과정에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2020년 국회발 신규사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2조 725억 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특별회계로 예산을 편성하려면 근거 법령이 먼저 의결돼야 하지만 국회는 예산부터 통과시켰다. 예산부수법안인 '소재부품장비예산 특별법'이 국회 본 회의를 통과한 건 이로부터 17일 뒤인 지난해 12월 27일, 그 동안은 불법 예산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예산 편성 원칙과 관련 법령을 어기면서 편성된 '불법 사업'은 79개 사업, 4조 7,635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 사업성 낮은데도 예산 편성... 왜? ② 불용 예산
[마부작침]이 2018년, 2019년 국회 예산심사에서 지적한 바 있는 '영일만 횡단대로' 사업은 2020년에도 설계비로 10억 원이 배정됐다. 2016년부터 5년 연속, 합계 70억 원이 배정됐으나 단 1원도 쓰지 못했다. 설계비를 집행하기 위한 전제인 본 사업을 기획재정부가 경제성이 떨어진다며 반대해 예산이 계속 묶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과 2011년 정부의 타당성 조사나 2017년 KDI의 사업성 재검토 결과 모두 경제성이 낮다고 나왔고 2019년 초 예비타당성 면제 대상 선정에서도 탈락했다. 그런데도 계속 예산을 편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구 의원은 자유한국당 박명재 의원이다. 박 의원은 "지역 발전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 예산에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마부작침]은 이처럼 사업성이 낮거나 예산을 줘도 사용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편성한 예산을 '불용 예산'으로 분류했다. 예산 편성이 근본적으로 국가 가계부를 꾸리는 작업인 만큼, 사업성 평가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불용 사업'은 15개, 약 500억 원 규모였다.
● 의원님 예산은 '뭉텅이 프리패스', ③ 불심사 예산
이처럼 국가하천 정비, 전통종교 문화유산보존 등 해마다 으레 편성하던 사업의 명분과 필요성만 심사하고 정작 그 예산을 받을 곳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설명이 빠진 뭉텅이 심사 예산, [마부작침]은 이를 '불심사 예산'으로 분류했다. 이런 '불심사 예산'은 지역구 의원들의 '민원 예산'이 되기 쉽다. 2020년 예산에서는 48개, 463억 5,800만 원 규모로 분석됐다. 절반 이상이 국토교통위원회 소관 사업이었다.
● 어디에도 흔적 없는 깜깜이 예산, ④ 불논의 예산
심사는 했다는 데 어디에도 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기록 전무 '깜깜이 예산', [마부작침]은 이를 '불논의 예산'이라고도 이름 붙였다. 각 상임위 예비심사, 예결위 본 심사에 이르기까지 회의록을 작성해 남기는 과정 어디에도 언급조차 없었다가 확정된 사업이다. 지역 민생을 위한 필수 예산인지, 정치적 거래 수단인지 가늠할 근거가 없는 이런 '불논의 예산'은 104개, 1,255억 원 규모로 분석됐다.
국회 예산 심사의 투명성을 위한 장치인 예산회의록에 적잖은 규모의 사업들이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다면 국민들은 심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불법', '불용', '불심사', '불논의'. 2020년 예산 심사에도 부족했던 이 네 가지, 4불은, 이런 국회에 나라 살림의 감독을 맡긴 국민들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취재: 심영구, 정혜경 데이터 분석: 안혜민 디자인: 안준석, 김민아 인턴: 이승우, 이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