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사법농단 비판'이 정치적으로 소비될 때 온전한 사법개혁은 가능할까?

[취재파일] '사법농단 비판'이 정치적으로 소비될 때 온전한 사법개혁은 가능할까?
"정치한다는 이야기 진짜 없어요?"

지난해 초, 이탄희 전 판사가 사직한 이후 현직 판사들에게 들었던 질문이다. 질문은 대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사태를 비판했던 판사들에게서 나왔다. 이탄희 전 판사가 방송에 출연해 "정치에는 뜻이 없다"고 말한 후 안도했던 이들은, '사법농단 고발자', '사법농단 비판자'로 이 전 판사가 소환될 때마다 동일한 질문을 했다.

이들이 출세가 보장된다는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직을 마다하고 사직을 통해 사법농단에 저항했던 이 전 판사의 순수성과 비정치성을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탄희 전 판사가 정치를 할지 말지에 관심을 쏟았던 것, 정치할 의사가 없다는 말에 안도했던 이유는 뭘까. 이탄희 전 판사가 정계에 진출할 경우, 순수했던 그의 과거, 그리고 그를 지지했던 수많은 판사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해석돼 비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상징 자본을 획득한 이탄희 전 판사 아니었던가.

●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레테르가 정치적으로 소비될 때

특정 영역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그 활동을 통해 획득한 상징 자본을 들고 정치권에 투신한 경우를 우리 사회는 많이 목격했다. 정계 진출의 지렛대가 바로 그 '상징 자본' 이었기에, '상징 자본'은 해당 정치인의 활동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소비됐다. 그리고 해당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그 정치인의 판돈이랄 수 있는 '상징자본'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고, 많은 경우 '상징 자본' 형성기의 정치성 논란으로 번지고는 했다. 과거 행위 당시의 순수성, 정계 투신 당시의 진정성과 별개인 정치적 현실이다.

이탄희 전 판사가 정계에 진출할 경우, 그에게 따라붙는 레테르는 '사법농단 비판자'가 될 수밖에 없다. 판사 퇴직 후 여러 활동을 했지만, '사법농단 비판자', '사법농단 비판의 대표 인물'이라는 브랜드가 없다면 정치권이 굳이 그를 영입할 가능성을 얼마나 될까. 때문에 그가 정치를 한다면, 정치 활동 기간 내내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레테르는 반복적으로 소환돼 소비될 수밖에 없다. 특정 정당에 몸담게 된다면, 그의 정계 활동과 과거 행적까지 특정 정당에 대한 평가와 맞물려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치 현실이기에, 그 역시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제안을 거부한 사람을 거의 없었기에, 사법농단을 비판해 왔던 현직 판사들이 '진짜'라는 수식어를 동원해 묻고 또 물었던 건 아닐까.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수진 전 부장판사 (사진=연합뉴스)
● '사법농단 비판'의 순수성과 별개인 정치적 현실

지난 19일 이탄희 전 판사에 이어 27일 이수진 전 부장판사가 더불어민주당의 인재로 영입됐다. 예상했듯이 민주당과 2명의 전직 판사가 스스로에게 붙인 레테르는 '사법농단 비판자'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사법농단 비판' 당시 이들의 행위가 '정치적'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사법농단'은 반헌법적 행위였고, 그것에 대한 비판은 지극히 정당한 용기 있는 행동이었기에 이런 비판은 온당치 않다. 특히, 이들의 비판 당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기소 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지금을 기준으로 과거 행적을 '정치적'이었다고 비판하는 건, 결과에 끼워 맞춘 '정치적인' 비판일 뿐이다.

하지만,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상징 자본이 이들의 정치 자본으로 동원될 때, 이들이 소속된 정당이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가치를 반복적으로 소비할 때, 과거 이들의 행동이 정치적이었다고 '해석'돼 비판받을 수 있다는 건 엄연한 정치 현실이다. 이탄희 전 판사와 이수진 전 판사가 정치 입문의 동기로 설명한 '사법개혁'이라는 가치도, 이들의 과거 행적이 특정 정당을 위해 소비되는 순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사법개혁의 목표는 뭘까. 입법부나 행정부의 사법부에 대한 관여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일 테다. 3권 분립 원칙에 부합하게 정치적으로 독립된 사법부를 만드는 것이다. 외관으로나마 사법부의 정치성을 계속해서 걷어내는 것, 이것이 '사법농단 사태'가 남긴 교훈 아닐까. 그런데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레테르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며 '사법 개혁'이 논의될 때, 특정 정당에 몸담은 '전직 판사들'이 현재 법원 내 판사들의 지지를 과시하며 사법 개혁을 해나가려 할 때, 그 '사법 개혁'은 사법부를 더욱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 특정 정당에 모이는 '사법농단 비판자들'

물론,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할 수 있다. '사법 개혁', 좁게는 '법원 개혁'이 국회의 문턱을 못 넘고 표류하는 상황 때문에 국회로 들어가 개혁을 이뤄내겠다는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순수한 의도를 몰라준다며 불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소속 정치인이 되는 순간, 이들이 말하는 사법 개혁은 특정 정당의 가치와 이익이 투영돼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비정치적이었던 '사법농단 비판'은 정치적으로 해석돼 소비될 수밖에 없다.

특히, '사법농단 비판자'라는 레테르를 가진 '전직 판사'들이 특정 정당으로 모이고 있는 현실은 이런 가능성을 가속화 시킬 수 있다. '사법 개혁'을 정치 입문의 동기로 설명하지만 해당 정당 역시 사법 개혁에는 그동안 별 관심이 없었던 현실, '사법농단 연루 판사 탄핵'을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치적 과제로 제시하지만 해당 정당 역시 20대 국회에서 손 놓고 있었던 현실, '사법농단 비판'을 정치 자본으로 삼았지만 해당 정당 소속 정치인이 양승태 사법부에 재판을 청탁한 '사법농단 동조자'였던 현실을 감안하면 그들의 말하는 '사법 개혁'은 무엇인지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사법농단 현직 볍관 6명 배제
● '전 판사'로 호칭되며 '판사'로서의 정체성이 먼저 호출되는 정치인

개개인이 헌법 기관으로 불리는 판사들이 얼마만큼의 냉각기를 가져야 피선거권을 획득할 수 있을까. 쾌도난마 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판사 출신 변호사' 등이 아닌 '전 판사'로 호칭되며 '판사'로서의 정체성이 먼저 소환될 때가 그 시기는 아닐 것이다. 당사자 역시 ' 전 판사'라는 호칭을 거부하지 않고 판사 때의 행적을 상징 자본으로 소비할 때, 현직 판사들의 지지를 정치 자본화할 때가 그 시기가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다. 특히, '외관의 공정성 훼손'을 비판하며, '대내외적인 사법부 독립'을 요구했던 사법농단 비판자들이라면, 사법농단 비판의 비정치성이 정치적으로 왜곡돼 해석되기 용이한 시점은 피해야 하지 않았을까.

사법농단을 비판했던 판사들이 ' 법복을 들고 다니는 정치인의 모습, 법복을 들고 다니며 정치를 하려고 하는 모습은 법원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송두리째 흔든다'며, ' 정치인은 법복을 손에서 내려놓으시기를 바란다(이연진 판사)'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법복을 벗자 드러난 몸이 정치인인 이상 그 직전까지 정치인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믿어줄 사람은 없다'며, '사법개혁을 바라는 입장이지만 법복 정치인의 손을 빌려 이루어질 개혁을 달갑지 않다(정욱도 부장판사)'고 말한 이유는 뭘까. 재판을 하다 말고 정치권으로 곧장 달려간 사람들이 가장 귀 기울여야 할 말이지만, '전 판사'로 호칭되는 정치인들 모두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