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주광역시에서 벌어진 카드깡 사기 사건은 피해자가 600여 명에 달합니다. 피해규모는 한 명 당 수천만 원에서 수 억 원 대까지, 총피해액이 260억 원으로 추산됩니다.
수사기관이 파악한 일당의 수법은 이렇습니다. 신용카드를 빌려주면 매달 수수료를 떼어주는데 돈을 몇 십만 원 정도 벌 수 있다고 꾀입니다. 신용카드를 다른 사람의 지방세 납부 용도로 사용하는데, 지방세 대납은 불법이 아니니까 안심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피해자들은 카드를 빌려준 2019년 2월부터 몇 달 동안은 꼬박꼬박 수수료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카드로 지방세를 할부로 결제하고, 카드 결제대금 며칠 전에 카드값과 함께 2.8%의 수수료를 보내왔습니다. 하지만 2019년 9월 이 일당들은 카드 당 수천만 원의 지방세를 결제한 뒤 대금을 주지 않고 잠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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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 씨 등 조직 책임자들이 대구에서 똑같이 카드깡 사기를 저질렀다가 광주에 와서 같은 수법을 이어간 것으로 봤습니다. 총책 이 씨가 대구에서도 피해자들에게 변제해야 할 수십억 대 금액이 남아있던 만큼, 이 씨가 구속됐음에도 피해자들이 돈을 돌려받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 피해자 측 "카드회사도 방조한 책임 있어"
피해자 50여 명은 지난 8일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한 카드업체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카드가 발급된 뒤 하루에 몇 번씩 몇 달 동안 인적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의 지방세 대납으로만 쓰였는데 카드업체가 모를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카드사가 지방세, 국세 특별한도 증액을 할 때 어떤 이유로 대납을 하는지 확인 절차가 없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피해자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아는 조직이 인터넷으로 카드 당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까지 일시적으로 결제한도를 증액해도 걸러내는 절차가 없었다는 겁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은 "20대 대학생도 이번 사건에 피해자로 연루됐는데, 카드사는 대학생이 몇 천만 원으로 한도를 올리는데 검증 없이 방치했다"면서 "결국 해당 피해자는 사회생활도 하기 전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측은 카드업체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방조한 의혹이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제재조치를 요청했습니다. 피해자 측은 "광주 조직의 사무실에 카드업체 직원이 찾아와 위법하다는 고지를 해주기는 커녕 독려하는 것으로 인식될 만한 말들을 했다"며 "카드업체 본사에 찾아가 보니 지방세 대납 카드깡을 상당 부분 인지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한 카드업체 관계자는 "지방세 대납 카드깡의 경우 FDS 시스템을 통해 일부가 모니터링되긴 하지만 지방세 대납 자체가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 터지기 전에 미리 막기는 쉽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몇 차례 유사한 카드깡 사기가 적발되고 대책 발표가 잇따랐지만 여전히 대규모의 카드깡 사기는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기 피해와 유사수신 피해는 보통 피해자가 급한 돈이 필요해서, 좀 더 쉬운 방식으로 수익을 얻어보려고 발을 담갔다가 일어나므로 피해자가 비난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카드업체가 홍보한 것만큼 금융거래 시스템을 잘 갖추고 적극 나섰다면, 수백 명과 수백억 원의 피해가 양산되는 대규모 카드깡 사기는 미리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