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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아름다운 늑대와 11년을 동거하고 나면…-철학자와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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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아름다운 늑대와 11년을 동거하고 나면…-<철학자와 늑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나는 내가 왜 그토록 브레닌을 사랑했는지, 또 녀석이 떠난 지금 이 순간 왜 그토록 그리움에 몸부림치는지를 깨달았다. 브레닌은 나에게 정규 교육이 가르쳐 주지 못한 것, 즉 내 고대의 영혼 속에 살아 있던 늑대를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가끔 수다쟁이 영장류 대신 내 안의 과묵한 늑대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으로 늑대를 대변하고자 하는 나의 노력이다."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뭔가 관념적 사유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겠거니,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아닙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인간 철학교수가 20대 후반에 만난 한 마리 늑대와 11년간 함께 살았던 이야깁니다.

"이 책은 '브레닌'이라는 늑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브레닌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10년 넘게 나와 동고동락했다. 정처 없이 표류하는 지식인이었던 나와 함께 살면서 브레닌은 자연스럽게 미국,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까지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게다가 녀석은 무상교육의 특혜까지 받은 늑대이기도 하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고, 혼자 두고 나가면 집과 살림살이들이 즉시 초토화되기 때문에 사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철학교수였던 나는 할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강의를 다녀야 했다. 브레닌은 강의실 한쪽 구석에 누워 학생들과 함께 졸다가, 좀 지루하다 싶으면 벌떡 일어나 길게 울었다. 대리 만족이라도 느끼는지, 녀석은 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미국 남부 지역에서 대학 교수로 일찍 취직한 27살 청년 롤랜즈는 지역 광고에서 '96% 새끼 늑대 판매' 문구를 보고 광고를 낸 사람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늑대라기보다는 마치 "새끼 곰"처럼 생겼던 생후 6주의 '100% 새끼 늑대' 브레닌을 만납니다. 알래스카에서 기르던 늑대 한 쌍을 데리고 이주해 왔다는 주인은 개와 피가 섞이지 않은 100% 야생 늑대를 사고파는 게 불법이라서 법적 허용치의 최대인 '96% 새끼 늑대'라는 광고를 냈다고 말합니다. "일단 구경하고 천천히 고민해보려고" 찾아갔던 롤랜즈 교수는 앞뒤 잴 겨를도 없이 새끼 늑대를 자신의 삶에 맞아들이고 '브레닌'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그리고 이후 11년간 그가 브레닌과 맺은 관계는 그의 삶과 철학자로서의 사유, 인간에 대한 고찰을 다른 차원의 수준으로 데려갑니다.

"이 책에 대한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사실은 내 것이 아니다. 물론 니체, 하이데거, 카뮈, 쿤데라, 리처드 테일러와 같은 사상가의 생각은 분명히 구분되겠지만, 이는 내가 다른 누군가의 생각을 빌려 왔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한번 비유의 힘을 빌리자면, 오직 인간과 늑대 사이의 공간에서만 나타날 수 있는 생각들이었다.

브레닌과 나는 앨라배마 주 북동쪽 끝에 있는 리틀리버 캐니언으로 가서, 사실은 그러면 불법이지만 어쨌든 텐트를 치고 주말을 보내며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달을 향해 울부짖곤 했다. 좁고 깊은 협곡의 음울하고 어두운 참나무와 자작나무 숲 사이로 햇빛은 거의 들지 않았다. 해가 협곡의 서쪽 가장자리를 지나고 나면 그림자는 짙은 덩어리처럼 응고되었다. 뵈지도 않는 어두운 길을 따라 한 시간여를 천천히 걷다 보면 숲 속의 빈터가 나타났다. 시간을 제대로 쟀다면 아마도

태양이 협곡을 넘어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였을 텐데, 황금빛 오후 햇살이 빈터 가득히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응고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나무들도 그곳에서는 세월을 견딘 거대한 자태를 드러냈다. 빈터는 나무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생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태어났으며 그곳 없이 나 혼자서는 결코 다시 할 수 없는 생각들이다.

늑대가 없는 지금, 더 이상 그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쓴 글이 너무 낯설어 나는 흠칫 놀란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해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특이한 발상이다. 내 글 속 생각은 내가 믿고 진실로서 지키기는 하지만 다시 생각해 낼 수는 없기 때문에 내 생각이 아니다. 이것은 빈터에서 탄생한 생각이다. 이것은 늑대와 인간 사이의 공간에만 존재하는 생각이다."


이 책의 표지 뒤에는 롤랜즈 교수와 브레닌이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습니다. 롤랜즈 교수가 마치 친한 친구나 형제에게 하듯이 활짝 웃으며 브레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어요. 브레닌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름다운 얼굴에 지극히 편안한 표정으로 롤랜즈 교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얼굴 크기가 정말이지 인간 롤랜즈의 7배쯤 돼 보입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진짜 늑대, 거대한 늑댑니다.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겁니다. 저 역시 처음에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가졌던 첫 번째 생각은 '늑대를 집에서 어떻게 키웠을까?' 하는 거였습니다. 4%의 불법적 취득^^은 그렇다 치고, '가둔 걸까? 늑대가 집에 가둬지나? 늑대가 물지 않나?' 같은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죠.

그런데, 이 책의 맨 앞에 나오는 것처럼, 롤랜즈 교수는 그냥 늑대랑 함께 다녔습니다. 늑대는 학생들과,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공존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롤랜즈 교수는 늑대가 사람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늑대를 훈련시켰습니다. 종속시킨 게 아닙니다. 자신의 늑대는 사람과 함께 살도록 인생... 아니 늑대생, '늑생'의 조건이 결정지어졌으므로, 종과 종의 공존이 가능하게 훈련을 시켰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가 늑대를 자신과 언제든 나란히 걷도록 훈련시키는 데는 단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이 책을 통해서 직접 확인해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여기서부터,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한 다양한 선입견들이 깨져나가거든요.

롤랜즈 교수는 물론 동물학대를 당연히 단호히 반대하는 쪽이지만, 반대로, 그렇다고 사람에게 어리광을 부리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응석을 받아주거나, 이른바 호강을 시키거나, 뽐내며 전시하지 않습니다. 그런 데 관심이 있다거나 찬성하는 걸로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둘은 단지 서로 사랑하고, 공존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최선의 방법을 찾을 뿐입니다. 서로의 필요를 생각해서 필요한 훈련을 하면, 늑대가 어딜 가든 자기 옆에 나란히 서서 걷게 하는 데 단 10분이 필요할 뿐이며, 늑대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공존을 통해, 문명 속의 인간 롤랜즈 교수는 야생의 늑대가 발하는 "빛" 아래에 드러난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그림자"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늑대는 말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이해하기도 쉽다. 늑대들이 못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래서 늑대는 문명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다. 늑대도 개도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한 어조 외에도 기술이 있었다. 늑대들은 새끼의 목덜미를 물어 옮긴다. 이렇게 하면 저항을 멈추고 시키는 대로 따른다. 녀석의 목덜미를 움켜쥐는 것은 내가 너의 아빠이니 저항을 멈추라는 뜻이다. 브레닌도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제시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나리오였고 원래 하려던 것이 무엇이든 간에 관두라는 신호였다. 사실 이것은 브레닌이 몸을 구부려 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키가 나만큼 큰 녀석을 땅에서 들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마치 마술사의 모자에서 토끼를 들어 올리듯 브레닌이 뒷발을 말아서 몸에 붙여 줬기 때문이었다."

[철학자와 늑대]를 읽다 보면 '세나개'- 즉,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동물과의 제대로 된 공존법을 잘 모르는 인간의 잘못된 훈련 방식이나 아예 고의적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인간의 악의가 나쁜 상황을 만들 뿐, 이라는 EBS TV 프로그램의 기본 신념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사실 롤랜즈 교수는 바로 그 신념,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자주 들을 수 있게 된 '동물권'의 철학적 논지를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지식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오히려 늑대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정말 늑대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늑대를 통해서 본 인간이란 종은 우월하기는커녕, 그 종의 일원이라는 게 그다지 자랑스럽지도 않습니다. 특히 롤랜즈 교수는 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현대적, 계몽적 철학의 어떤 점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그가 늑대와의 빈터에서 인간들을 바라봤을 때 깨닫게 된, 인간의 자유의지를 오히려 과소평가하게 된 그 철학의 어떤 구질구질한 변질을요.

"악이 의학적 질환이나 사회적 병폐의 결과라고 보는 생각은 결국은 우리가 주도면밀하게 구축한 타인의 무력함을 우리 자신에게도 조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 더 이상 도덕적 평가의 타당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선악은 무언가 도덕이 아닌 다른 어떤 것, 즉 불가항력으로 설명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이다. 도덕적 상태를 정당화하고 악의 조작에 공모한 것을 변명하며 부족한 도덕성을 얼버무리는 것은 결국 악의 조작이 궁극적으로 발현된 것으로서, 우리가 우리의 영혼 속에 열심히 구축해 온 약함을 가장 명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이 약하다는 이유로 부족한 도덕성을 변명하고 있다는 명징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인간은 더 이상 변명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신념을 지켜 낼 수도 없을 만큼 약해졌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도 잠깐 인용되지만, 한때 아동 필독도서로 시튼의 <동물기>가 있었죠. 요즘엔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그렇다면 참 아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렸을 때 시튼의 <동물기>를 너덜너덜해지도록 열광적으로 읽었습니다. 제일 좋아했던 얘기는 그중에서도 늑대 로보의 이야기였습니다. 롤랜즈 교수가 바로 그 얘기를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합니다.

원래 늑대 사냥꾼이었던 시튼은, 자기가 살던 지역에서 누구도 잡지 못한 전설의 늑대! 어마어마한 알파 수컷 로보를 잡는 데 성공한 이야기를 씁니다. 어떤 수를 써도 로보로 알려진 악명 높은 늑대 무리 대장을 잡을 수 없자, 시튼은 로보가 사랑하는 짝, 암컷 늑대 블랑카를 잡아서 그 시체를 덫 주변에 문질러 냄새를 퍼뜨립니다. 블랑카를 잃고 '늑생'의 의지를 상실했던 로보는 블랑카의 냄새를 쫓아와, 저항하지 않고, 그냥 시튼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제가 살면서 읽어본 가장 슬픈 러브스토리 중 하나였고, 그 이야기 때문에 저는 어려서부터 늑대에 좀 환상이 있었습니다^^ 사실 로보를 죽인 시튼도, 종 대 종, 인간 대 늑대로 로보를 존경하고 경외했다는 것이 그 옛날 책의 행간에 물씬 묻어나죠. 로보에 대해 서술할 때마다 시튼이 숨길 수도 없었고 숨기려고 하지도 않은 그의 감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책, [철학자와 늑대]를 통해, 그런데 진짜 늑대가 내 삶에 있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달릴 때면 브레닌은 개와는 전혀 다른 우아하고 효율적인 동작으로 땅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개들의 경우 아무리 세련되고 효율적이라 해도, 빠르게 걸을 때는 발이 수직 방향으로도 움직인다. 개를 키운다면 한번 자세히 관찰해 보라. 발이 앞으로 나아갈 때 미세하게나마 위아래로도 움직인다. 그리고 이런 발의 움직임은 어깨와 등에도 전달된다. 자세히 보면 개가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어깨가 들썩이는 것이 보일 것이다. 견종에 따라 이런 움직임은 뚜렷하거나 미세하게, 정도 차이는 있더라도 자세히 관찰하면 공통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브레닌은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늑대는 앞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발목과 두툼한 발에서 얻는다. 그 결과 다리의 움직임이 훨씬 적으며, 다리는 곧게 뻗은 채로 앞뒤로만 움직이지 아래위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빨리 걸을 때에도 어깨와 등은 움직임 없이 꼿꼿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공중에 약 2~5cm 정도 떠 있는 것 같았다. 특별히 기분이 좋거나 자신이 한 행동이 만족스러울 때는 펄쩍펄쩍 뛰며 기쁨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인 동작은 활주였다. 브레닌은 이제 없지만 녀석을 생각할 때마다 섬세하고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그 분질적 이미지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른 아침 앨라배마의 안개 속을 헤치며 땅 위를 가볍고 조용하며 우아한 모습으로 유연하게 미끄러지듯 달리던 늑대의 환영 말이다.
그 옆에서 시끄럽게 헐떡대며 털썩털썩 달리는 영장류의 모습은 더없이 볼썽사납고 불만스러웠다. 나도 브레닌처럼 성큼성큼 달리고 싶었다. 나도 공중에 2~5cm쯤 떠서 활주 하고 싶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롤랜즈는 철학 잡니다. 이 책은 본격 철학 이론서는 아니지만, 사실 늑대와의 동거를 통해 사람을 고찰한 철학적 사유가 주를 이룹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꾸며댄 곳이 하나도 없어 가감할 것 없이 아름다운 브레닌의 표지 뒤 얼굴을 마음속으로 곱씹으면서, 늑대와의 삶으로 롤랜즈 교수가 도달한 여러 가지 사유들에 상당 부분 공감하게 됩니다. (사실 이 책에는 브레닌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인기 만점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게 젊은 교수였던 본인이 한때 여자들을 꼬시는 데 얼마나 유리하게 작용했는지도 조금 들어있어요^^)

브레닌이 롤랜즈 교수에게 와서 함께 전성기를 보내고, 말라뮤트-셰퍼드 혼혈 개 한 마리가 새 식구로 들어오고, 또 롤랜즈 교수가 아주 잠깐 방심한 사이 브레닌에게 개와의 혼혈 새끼들이 생기고^^, 그중 암컷 한 마리를 데려와 늑대개 식구가 또 하나 추가되고, 아빠 늑대 브레닌이 이들을 보살피고, 브레닌이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은 이야기까지.... 이 책을 집어 들면 모두 만나실 수 있습니다. 롤랜즈 교수가 브레닌을 잃고 통곡할 때, 비슷한 일을 겪어본 사람들, 반려동물을 떠나보내 본 사람들은 마음이 아파서 책장을 더 넘기기 두려워질 거라는 건 미리 말씀드려야겠네요. 하지만 그 죽음까지도... 늑대의 죽음은 인간에게 다시 한번 남다른 것들을 가르칩니다.

"브레닌이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평소처럼 럭비 연습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당시는 녀석이 러거를 괴롭히는 데 관심이 있을 때였고, 러거는 브레닌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러거는 화를 못 참고 브레닌의 목을 물어 땅에 메다꽂았다. 힘이 대단한 러거가 한 순간에 벌인 일이었다. 당시 러거는 브레닌의 가녀린 목 정도는 나뭇가지처럼 쉽게 부러뜨릴 수도 있었다. 불독이 쿤데라의 시험을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껏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은 당시 브레닌의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놀라고 겁을 먹어 비명을 지를 것이다. 그러나 브레닌은 신음 소리만을 냈다. 강아지가 내는 소리라기보다는 어린 나이에 맞지 않게 침착하며 깊게 울리는 신음 소리였다. 그것은 힘이었다. 바로 내가 항상 원했고 앞으로도 원할 힘이었다. 영장류인 내게 늘 부족하지만 결코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할 도덕적 의무를 일깨우는 힘이었다. 내가 두 달 된 새끼 늑대만큼만 힘이 있다면 나는 도덕적 악이 결코 자라나지 못할 토양이 될 것이다.
영장류는 어둠의 복수를 계획하기 위해 황급히 달아날 것이고, 자신보다 강하고 자신을 모욕한 자들을 약화시킬 방안을 모색할 것이다. 그 작업이 끝나면 악은 실행될 수 있다. 나는 우연히 태어난 영장류다. 그러나 나는 자기를 땅바닥에 메다꽂은 불독에게 저항하며 낮은 신음 소리를 내는 새끼 늑대에게서 최고의 나를 발견한다. 신음은 고통이 다가옴을 예견하는 것이며, 고통은 삶의 본질이다. 그것은 내가 새끼 늑대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고 삶이라는 불독이 언제든지 나뭇가지처럼 나를 부러뜨릴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러나 동시에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신념이 강하다는 면에서 보통과는 다른 독특한 철학자 동료가 있었다. 그는 항상 학생들에게 '오물이 튀어봐야 믿는다'고 말하곤 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사고가 터져 봐야 사람들은 신을 찾는다. 사고가 터질 때 나는 작은 새끼 늑대를 생각한다."


살면서 읽은 철학도서 중 제게는 일단, 가장 재미있었던 책입니다. 롤랜즈 교수가 서두에 얘기한 것처럼, 인간 혼자 쓴 게 아니라 늑대와 인간이 함께 쓴 거나 마찬가지라서 그런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책은 이른바 '동물권'에 대해 참으로 대단히 설득을 잘 해내는 책이고, 동물과 함께 하려는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책임감이 중요한지도 넌지시, 엄중히 말해줍니다. 그리고, 단지 동물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랑에 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최고의 방식은, 그저 공존.... 그리고 그 안의 교감이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줘요. 늑대를 통해 인간을 사유할 뿐 아니라, 나아가 모든 관계의 본질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듭니다.

번역자 강수희 님의 번역이 인상에 남을 만큼 뛰어난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합니다. 관념적인 사유들을 많이 담은 외국어 도서를 매끄럽게 읽히도록 번역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데다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 책은 영어만큼 우리말에 대한 이해를 가진 사람이 번역했고 번역이 감상과 사유를 방해하는 곳이 없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아한 늑대와 진짜 11년을 함께 살 순 없더라도, 잠시 그 늑대를 내 삶에 초대하는 기쁨을 누려보고 싶지 않으세요?^^

여기 [철학자와 늑대]가 있습니다.

*출판사 '추수밭'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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