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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프로 데뷔 9년, 31살 홍경기의 아름다운 도전

이름 바꾼 홍경기, '매 경기가 인생 경기'

[취재파일] 프로 데뷔 9년, 31살 홍경기의 아름다운 도전
2011년 1월 프로농구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고려대 4학년 홍세용 선수는 그토록 바라던 프로행 꿈을 이룹니다.

그리고 2019년 10월 그는 프로 무대에서 마침내 첫 3점 슛을 성공하고, 12월에는 사상 첫 한 경기 두 자릿수 득점도 기록합니다. 8년 여가 흐르며 나이는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고, 이름도 홍세용이 아닌 홍경기로 바뀌었지만 농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23살 신인 때와 다름없었습니다.
장갑차 조총수로 군에 입대한 홍경기2
● 데뷔 1년 만에 입대…돌아올 수 없던 프로 무대

홍경기는 2011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마지막 순위, 전체 20순위로 인삼공사에 뽑힌 뒤 곧바로 동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인삼공사가 동부에 2라운드 지명 선수를 넘겨주기로 두 팀 간에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 팀들이 2라운드까지만 지명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거의 마지막 순번으로 프로가 된 셈입니다. 막차를 타고 힘겹게 프로 무대를 밟았지만, 프로 생활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루키 시즌인 2011-12시즌 16경기에서 평균 2분 28초 동안만 코트에 나선 홍경기는 시즌을 마치자마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급하게 입대를 하게 됐습니다.

홍경기 :
"제가 동부하고 2년 계약을 했었는데요. (첫 시즌을 마친 뒤) 당시에 혼혈 선수 드래프트가 열리고 동부가 이승준 선수를 뽑으면서 (팀 내 샐러리캡을 맞추기 힘들어졌어요.) 그렇게 되면서 제가 군대를 가야 하는 상황이 돼서 (프로 데뷔) 1년 만에 군대를 가게 됐습니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기갑 여단에 입대해 장갑차 조총수로 군 생활을 하게 된 홍경기는 농구에 대한 꿈은 접지 않았습니다. 군 생활 도중에도 틈날 때마다 몸 관리를 하며 제대 후 다시 프로 무대 복귀를 꿈꿨습니다.

홍경기 :
"(농구를) 다시 할 수 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부대에 말씀을 드려서 농구공이랑 농구화를 다 가지고 부대에 들어갔었는데요. 아무래도 실내 (코트)가 없어서 야외 코트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까, 농구공을 만지면 (드리블 등에 대한 감각이) 오히려 저한테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농구공은 거의 안 만졌어요. 대신 휴가 나오면 동호회 농구나 이런 걸로 조금씩 감각을 잡으려고 했었고 부대 내에서는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팔굽혀펴기, 복근 운동 이런 거하고, 뛰는 걸로 많이 운동을 해서 몸 관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장갑차 조종수다 보니까 종종 정비도 하잖아요. 그럴 때 가끔 '아,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은 했었어요."

장갑차 조총수로 군에 입대한 홍경기
하지만, 제대 후 맞이한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홍경기 :
"전역하고 저는 당연히 동부로 다시 복귀를 할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구단에) 전화를 했는데, 구단 상황에서는 제가 전력 외로 평가가 됐다고 했어요. 그렇게 되면서 웨이버공시가 되고 아무 팀에서도 저한테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첫 번째로 은퇴를 하게 됐죠. 그 이후 한 1년 정도 농구 교실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다가 다시 KT에서 선수 생활해 볼 생각이 없는지 연락이 와서 테스트를 한 뒤 KT로 들어갔죠. 하지만, KT로 들어간 뒤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 시즌 만에 다시 은퇴를 하게 됐어요. 그때 KT에서 은퇴를 하면서 제가 조금 오기가 생겼어요. 제가 이제까지 해온 게 농구인데, 제 자신이 억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 실업팀-몽골팀 오가며 노린 재도약…간절함에 개명까지

오기로 버티며 재기를 노리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박성근 감독이 이끄는 실업팀 놀레벤트가 창단하면서 그 팀에 입단하게 된 겁니다. 비록 한 달에 100~150만 원 정도로 넉넉한 급여를 받지는 못했지만, 농구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홍경기 :
"생활이 사실 버거워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생각은 했었는데.. 조금 제가 힘들더라도 지금은 농구에만 집중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지만 농구만 했어요. 처음에는 (프로에서 못 뛰는 게) 조금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그런 생각이 무뎌졌고 뒤돌아보면 그 시절이 제 인생에 공부가 되는 시점이었고,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농구를 간절하게 생각하면서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2017년 몽골 시절 홍경기의 '경기 포스터'
그리고 홍경기의 도전은 2016년 전국체전에서 한차례 꽃을 피웠습니다. 전국체전 8강에서 연세대를 만난 홍경기는 양 팀 최다인 36점을 몰아쳤고, 홍경기의 활약 속에 놀레벤트는 대학 강호 연세대를 91대 84로 격파했습니다. (당시 허훈과 최준용, 안영준 등 정예 멤버로 무장한 연세대를 놀레벤트가 꺾은 일은 농구계에 커다란 화제가 됐고, 홍경기와 함께 승리를 이끌었던 김준성 선수는 이듬해 신인 드래프트에 일반인 참가자로 나서 SK에 지명되기도 했습니다.)

전국체전에서 자신감을 얻은 홍경기는 그해 12월 부모님의 권유로 개명을 합니다.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새롭게 출발을 하자는 뜻을 담아 '빛날 경(炅), 터 기(基)'를 써서 '홍경기'라는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후 박성근 감독의 주선으로 3개월가량 몽골리그에 진출해 경험을 쌓은 그는 마침내 전자랜드의 러브콜을 받습니다. 그는 이름을 바꾼 뒤 좋은 일이 이어졌다며, 새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개명의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홍경기 :
"이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죠. '홍경기가 경기 뛴다.' '홈경기에서 홍경기가 잘해라'
뭐 이런 농담도 많이 들었는데요. 처음에는 솔직히 싫었지만 지금은 뭐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 열정과 노력으로 다시 잡은 기회

홍경기는 힘겹게 잡은 기회를 다시는 놓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습니다. 2017-2018시즌에는 단 2경기에 나서 평균 2분 7초만 뛰었고, 2018-2019 시즌에도 10경기에서 평균 2분 54초를 뛴 게 전부였지만, 오히려 더 많은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홍경기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본 유도훈 감독과 동료들은 그를 인정했고, 팀은 매년 계약을 연장했습니다.

홍경기 :
"여름에도 새벽에 나와서 드리블 연습도 하고 슈팅 연습도 하고요. 뭐 겨울에 평일 게임 때도 경기를 많이 못 뛰면 체육관에 남아서 밤 10시, 11시까지 저 혼자 훈련하기도 했어요. 제가 그런 식으로라도 준비를 하고 있어야 저에게 기회가 온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 전자랜드의 유도훈 감독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 :
"본인의 의지와 열정이 좋았기 때문에 한 번 더, 1년 더 기회를 주자고 했었습니다. 그런 얘기 있지 않습니까? 누군가 열심히 한다면 세상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지켜보고 있다고.. 홍경기 선수는 저희가 관리하는 차원에서도 지켜보면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고 힘들 때도 스트레스를 농구로 푸는 그런 성격인 것 같았습니다. 농구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 전자랜드의 정영삼 주장
정영삼 (전자랜드 주장) :
"개인적으로는 우여곡절이 많았던 선수지만 굉장히 성실한 선수예요. 처음에는 이 선수가 잠깐 열심히 하다가 말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뭐 새벽, 오전, 오후, 야간 가리지 않고 꾸준히 개인 훈련이든 팀 훈련이든 엄청나게 열심히 해요. 정말 옆에서 보고 있으면 기회가 안 와서 너무 안쓰러울 만큼 굉장히 열심히 했습니다."


유도훈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은 홍경기는 올 시즌 초반 평균 출전 시간이 10분 정도로 늘어나며 10월 6일 삼성전에서는 프로 무대를 밟은 지 8년여 만에 첫 3점 슛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팀이 초반 상승세를 타고 연승 행진을 달리면서 홍경기의 자리가 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1군에서 4경기 동안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한 홍경기는 2군 무대 D리그로 내려갔습니다. 홍경기는 아쉬워하기보다는 이를 재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홍경기 :
"감독님께서 D리그에서 다시 준비하자고 말씀하셨고, 저도 다시 준비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D리그를 뛰면서 경기 감각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감을 얻은 게 오히려 부담감을 안 갖고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항상 간절하게 하고 있고 또 끝나는 날까지 간절하게 할 거지만, 부담을 갖고 하다 보면 그 간절함이 플레이에 안 나오거든요."


● '매 경기가 인생 경기'…"이제부터 시작"!!

D리그에 내려간 홍경기는 11월 26일 D리그 SK전에서 39득점을 몰아치는 등 출전한 7경기에서 모두 두 자릿수 득점으로 펄펄 날았습니다. 그렇게 경기 감각과 자신감을 찾은 홍경기는 이달 초 다시 1군에 돌아왔고, 이번에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12월 1일 인삼공사를 상대로 10점을 뽑아내 1군 무대 첫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고, 다음 경기인 12월 4일 DB전에서 11득점, 그다음 경기인 12월 7일 SK전에서 13득점으로 연일 개인 최다 득점을 경신했습니다. 최근 매 경기 인생 경기를 펼쳤지만, 아직은 반짝 활약일 뿐이라고 자평한 홍경기는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며, 결코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홍경기 :
"요즘에 팬 분들께서 저한테 해주시는 말이 있어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존버(오래 버틴다는 뜻의 속어)'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시거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이제는 버티는 것보다는 굳히기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 좌우명이 초심을 잃지 말자거든요. 항상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또 감독님께서도 하시는 말씀이 '자신감을 갖되 자만하지 말라'고 하시거든요. 그 말도 항상 가슴속에 새기고 있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홍경기의 말대로 현재까지는 반짝 활약일 뿐이고, 아직 팀 내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후회 없는 도전을 이어가겠다는 초심만 잃지 않으면 홍경기의 인생 경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치를 농구 인생 후반전은 굴곡이 많았던 전반전보다 한결 마음 편한 '홈경기'가 될 전망입니다.

홍경기 :
너무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떻게 보면 아직 제가 농구할 수 있는 기회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커리어를 조금조금씩 쌓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영삼 (전자랜드 주장) :
경기야, 좋은 기회가 지금 찾아온 것 같아. 근데 형 욕심에는 지금보다 조금 더 잘해서 기회를 아주 꽉 잡았으면 좋겠고 그리고 부상당하지 않게 몸 관리 잘했으면 좋겠다. 경기야, 힘내라 파이팅!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 :
홍경기! 나이를 떠나서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또 이후에 실패가 오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지속적인 홍경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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