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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육군 1.7조 트럭 사업…사실로 드러나는 온갖 의혹들

[취재파일] 육군 1.7조 트럭 사업…사실로 드러나는 온갖 의혹들
▲ 차세대 군용 트럭들이 전시된 지난 10월 대형 방산전시회의 기아차 부스

1조 7천억 원을 들여 차세대 2½톤 군용 트럭과 5톤 방탄킷 트럭 1만 5천대를 개발 및 양산하는 육군의 전력지원체계사업을 둘러싼 의혹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기아자동차와 한화디펜스의 2파전으로 벌어졌고 40년 기득권의 기아자동차의 일방적 승리가 점쳐졌었는데 기아자동차는 박빙의 점수 차로 개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습니다.

하지만 기아자동차는 노골적인 반칙을 했습니다. 육군의 사업 제안서 평가위원회는 기아자동차가 어떤 짓을 하든 감점하지 않았고 한화디펜스의 소소한 실수는 모질게 감점했습니다. 두 업체에 대해 평가 기준을 다르게 들이댔으니 결과는 보나 마나였습니다.

육군은 이번 사업의 규모가 크다 보니 참모총장이 나서 여러 차례 공정을 강조했습니다. 서욱 참모총장은 "어떤 업체가 되든 좋으니 공정하게만 하라"고 참모들에게 여러 차례 지시했다고 하는데 실상은 '어떤 업체를 위한 불공정한 사업'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 도들새김 'ARMY Tiger'는 기아차 차세대 군용 트럭의 상징!

기아자동차는 제안서 평가에 앞서 육군 차세대 2½톤 군용 트럭과 5톤 방탄킷 트럭의 사진과 실물을 공개했습니다. 연구개발사업이어서 제안서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평가하는데 사진과 실물을 공개한 건 명백한 반칙입니다. 감점의 소지가 큰데 육군 제안서 평가위는 눈을 감았습니다.

기아자동차의 지난 9월 27일 보도자료 사진과 10월 15~20일 열린 서울 국제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즉 아덱스(ADEX) 2019에 전시된 실물 차량을 보면 차세대 군용 트럭 전면에 다이아몬드 모양 받침에 호랑이 머리와 'ARMY Tiger'가 도들새김돼있습니다. 기아자동차 군용 트럭의 상징입니다.
기아차 차세대 2½톤 트럭 전면에 'ARMY Tiger' 돋을새김이 선명하다
기아자동차가 육군에 제출한 사업 제안서에도 'ARMY Tiger' 도들새김이 선명한 2½톤과 5톤 트럭 사진이 첨부됐습니다. 제안서 평가위원들은 기아자동차의 보도자료를 통해 출고된 수십 건의 기사 중 하나를 읽었거나 아덱스 전시회에 다녀갔다면 제안서의 사진만으로도 어떤 제안서가 어떤 업체의 것인지 단박에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안서에 상호가 표기되지 않는 블라인드 평가의 취지가 무색해진 겁니다.

제안서 평가의 기준인 육군 전력지원체계사업단의 제안요청서 5.1.2항은 "모든 제안서 중에서 '제안업체를 인지할 수 있는 표시'가 한 건이라도 식별되는 경우에는 기술능력평가 점수에서 0.5점 감점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차량 전면의 'ARMY Tiger' 도들새김은 '제안업체를 인지할 수 있는 표시'입니다. 게다가 기아자동차는 보도자료와 전시에서 차량의 제원들도 여러 가지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육군 전력지원체계사업단은 "지난 4~6일 진행된 제안서 평가에서 이와 관련된 감점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ARMY Tiger'가 전면에 도들새김된 군용 트럭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아자동차 트럭이라고 말하는데 육군과 평가위는 "우리들은 못 알아보겠다"는 입장입니다. 육군은 한술 더 떠 "공정한 평가였다"고 강변합니다.

● 보고도 못 본 척, 알고도 모른 척, 공정한 척…

앞서 지적한 대로 기아자동차는 블라인드 평가의 취지를 훼손하는 홍보와 전시를 했습니다. 보도자료와 아덱스 전시를 통해 차량의 제원과 사진, 실물차량을 대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이런 행위 자체가 공정성 훼손이고 감점 요인입니다.

육군 전력지원체계사업단 제안요청서 7.8.1항은 "업체는 해당사업 제안서 평가 관련 평가위원 및 팀장 추천 대상자 또는 선정자에게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육군 법무실은 법률 검토를 통해 "제안서의 내용을 제안서 평가 전 언론에 보도하게 하는 행위는 제안서 평가위원 등에게 특정업체의 제안 내용을 알려주는 것으로 제안서 평가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무실은 이어 "(기아자동차에 대해) 감점을 결정하는 것은 제안요청서 해석권한 등에 비추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기아자동차의 홍보는 공정성 훼손, 감점 요인이 된다고 육군 법무실은 판단했지만 기아자동차는 감점되지 않았습니다.

육군 법무실의 법무 검토는 지난달 8일 완료됐습니다. 제안서 평가는 이달 4~6일이었습니다. 평가 전에 이미 기아자동차의 감점 요인이 확인된 겁니다. 그래서 육군은 빠져나갈 구멍이랍시고 제안서 평가위원 서약서에 다음과 같은 조항을 넣었습니다. "언론보도 내용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에 영향을 받지 않고…중략…공정하게 평가할 것!"

말하자면 평가위원들이 언론보도를 보고 기아자동차의 차세대 군용 트럭의 제원과 외형을 알게 됐더라도, 블라인드 평가니까 모르는 걸로 치고 공정하게 평가하라는 겁니다. 이미 본 걸, 이미 아는 걸 어떻게 못 본 척, 모르는 척하면서 공정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육군은 위 조항을 공정 평가의 근거로 외부에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육군은 공정을 논할 자격을 잃었습니다.

● 저쪽은 이 잡듯 뒤져라!

이처럼 기아자동차가 어떤 반칙을 해도 육군과 평가위는 한없이 너그러운 잣대를 적용했습니다. 반면 경쟁업체에게는 가혹했습니다. 평가위가 제안서를 펼치는 순간 A, B 제안서가 각각 어느 업체 것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에서 평가위는 한화디펜스의 제안서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이 잡듯 뒤졌습니다.

육군 평가위는 한화디펜스 제안서에서 한화디펜스 상호를 찾아내기 위해 원본 CD를 가져다가 확대해가며 검증했습니다. 제안서 평가는 제안서를 원래 크기대로 출력해 점수를 매기는 게 관행인데 환화디펜스 제안서는 몇 배 확대해서 평가한 겁니다. 그리고 평가위는 해냈습니다.

한화디페스 제안서에는 산학 공동연구 협약서들이 축소된 상태로 첨부됐습니다. 제안서를 원래 크기대로 출력해서 보면 협약서 속 상호는 2.0 시력으로도 식별이 안 됩니다. 하지만 400% 확대했더니 한화디펜스 상호 하나가 잡혔습니다. 일부 평가위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평가위는 다수결로 한화디펜스를 0.5점 감점했습니다.

기아자동차 제안서는 육안으로 훑어봐도 감점 요인이 널렸지만 그냥 넘어갔고, 한화디펜스 제안서는 확대하면서 까지 '감점 사냥'을 했습니다. 특히 '확대해서 트집 잡기'는 특정 업체를 찍어낼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으로 알려져 있어서 뒷맛이 씁쓸합니다.

육군은 자꾸 "평가는 독립된 평가위에서 했고 육군 책임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평가위원장은 육군 군수참모부 소속 준장이었고 최근 소장으로 진급해 모 부대 사단장으로 나갔습니다. 일반 평가위원 8명 중에 현역 군인들도 있습니다. 육군 책임이 맞습니다.

기아자동차 제안서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들이 속속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지면이 모자라 못쓴 의혹들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육군은 기아자동차의 이런 반칙 행위들을 사전에 충분히 알았습니다. 이번 사업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육군 군수참모부장도 "기아자동차가 강자로서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인정한 바입니다. 육군은 비리 냄새 자욱한 불공정을 조장했습니다. 그 이유를 밝혀 바로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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