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과시욕과 박탈감, SNS 탓만은 아닌 이유

서메리 | 작가 겸 번역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저자

SBS 뉴스

작성 2019.11.02 11:00 수정 2019.11.02 11:1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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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물질만능주의와 소비지상주의에 지쳐버린 한 남자가 있었다. 튼튼한 옷이나 멀쩡한 가구를 두고 유행을 좇아 새 물건을 사들이는 사람들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불필요한 소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하루 종일 노동에 매달리는 모습도 납득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평생 동안 발버둥 친 끝에 어느 정도 안정을 이뤄놓고도 여전히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욕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의 눈에는 어리석게만 보였다.

그는 물질적인 풍요나 타인의 시선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로 결심하고,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직접 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했다. 집을 짓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비는 육체노동으로 마련하고, 가재도구는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했다. 곡식과 채소는 직접 씨를 뿌려 길렀다.

생활은 극도로 소박해졌지만, 남는 시간도 그만큼 많아졌다. 숲으로 들어가면서 그가 했던 결심 중 하나는 '필요 이상의 노동하지 않기'였다. 농사를 비롯한 모든 노동은 의식주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읽고 자연을 감상했다.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호수의 빛깔을 자세히 관찰하기도 하고, 숲속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을 하나하나 분류해서 기록하기도 했다.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온 자연인의 모습일까?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70년 전인 1845년 미국의 작가 겸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직접 실행한 자급자족 생활을 묘사한 것이다.

그는 필요 이상의 소유를 과시하기 위해 죽도록 일하는 삶보다 최소한의 노동을 하며 마음의 여유를 즐기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2년 동안 스스로 자연인 생활을 하며 도시의 일상과 숲속의 일상을 대조했다. 이 기간 동안 그가 써 내려간 기록은 <월든>(Walden)이라는 이름의 에세이로 출간되어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메리 인잇_본문 이미지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독자들에게 <월든>은 미묘한 감상을 안겨준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물질만능주의, 과시적 소비 같은 현상들은 통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묵직한 위화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도 아니고, 한반도로 치면 헌종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에도 이미 인간 세상에는 타인의 시선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며 나만의 행복을 포기하는 문화가 당연하다는 듯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과시욕과 박탈감으로 얼룩진 사회 분위기의 원인이 텔레비전이나 SNS라고 쉽게 단정 짓지만, 실상 스마트폰은커녕 라디오조차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일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있든 없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비교와 과시와 박탈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나만 해도 이런 허무한 욕망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 울적해지다가도, 소로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묘사한 <월든>의 생생한 자연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마음이 조금 맑아진다. 하늘보다 더 짙은 하늘빛을 뽐내는 호수와 사시사철 다채로운 빛깔로 물드는 숲속 나무들. 하루 종일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구름의 신비로운 변화와 바쁘게 월동 준비를 하는 작은 동물들의 활기찬 생명력. 꽃을 감상하기 위해 꽃을 꺾을 필요가 없고, 새소리를 듣기 위해 새를 새장에 가둘 필요가 없는 조화로운 일상.

아직 내 안에, 그리고 <월든>을 사랑하는 수많은 독자들의 안에 자연을 사랑하고 소박한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적지 않은 위안과 희망이 된다. 우리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이런 삶을 누리기 위해 당장 직업과 가족을 버리고 숲속으로 달려가 나무집을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잠시 동안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자고 마음먹으면서, 오늘 저녁은 바쁘더라도 배달음식 대신 직접 지은 밥을 먹어보자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서 누렸던 일상의 조각을 우리의 하루 속으로 들여올 수 있다.

세상이 변할 수 있다면, 그 변화는 아마도 이렇게 작디작은 생각과 움직임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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