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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① 71% 배후에 가정폭력 있었다

[마부작침] '부부 살인' 리포트 ① 71% 배후에 가정폭력 있었다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절대적인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로 그 결과가 매우 중하고 피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는 중대한 범죄로 피고인에게 그에 상응하는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부부가 되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았던 남편이 아내를, 혹은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이유 없는 살인은 없었다. 길게는 35년 징역형부터 짧게는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까지 다양한 선고가 내려졌다. 생명을 앗아갔다는 중대 결과는 다르지 않지만, 판결문의 '그러나' 다음은 각 사건마다 차이가 있었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그러나' 이후에 주목했다. 결혼과 혼인신고를 거쳐 부부가 된 두 사람이 서로를 살해하는 비극, '부부 살인' 사건을 판결문을 통해 살펴봤다. 극단적인 결과가 빚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판결문에 나타난 차갑고 건조한 언어를 통해 이면을 들여다보고 비극을 피하고 또 줄이기 위한 방법은 있을지 고민했다.

① 71% 배후에 가정폭력 있었다
② 남편은 15.8년·아내는 7.6년…왜?
③ 58년 함께 살다 '황혼 살인'
④ 37년 시달리다 범행…정당방위 아닌 이유는


● 끔찍한 '부부 살인' 5년 치 100건 분석

"피고인은 당시 배우자였던 피해자를 때려 상해를 가한 사건으로 별거하다 이혼한 이후 피해자로 인해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 나머지 피해자를 원망하며... 거처를 알아내기 위해 가족들을 미행하는 등..."

2018년 10월 22일 새벽 5시쯤. 47살 이 모 씨가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당했다. 위장용 가발까지 소지한 채 2시간 반 전부터 숨어 있다가 이 씨가 집을 나선 걸 따라가 범행한 이는 전 남편인 48살 김 모 씨였다. 위의 글은 범행에 이르기까지 범죄 사실을 기술한 김 씨의 1심 판결문 중 한 대목이다. 김 씨는 1심 재판에서 살인과 특수협박, 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과 검사 모두 형이 무겁거나 가볍다며 항소했으나 항소심 결과 또한 원심과 같았다.

<마부작침>은 최근 5년 간 이처럼 부부 사이에 벌어진 살인과 사망 사건 1심 판결문을 모두 조사했다.(법률혼 기준, 사실혼·동거·내연 관계 제외) 대법원 판결문 열람서비스를 통해 확보한 '부부 살인' 1심 판결문은 선고일자 기준으로 2014년 1월 1일부터 2019년 7월 31일까지 정확히 100건이었다. (2014년 24, 2015년 14, 2016년 18, 2017년 24, 2018년 14, 2019년 6건) 확정 판결이 나지 않거나 대법원에서 비공개 결정한 판결문은 제외했다.

● 81%는 살인...상해치사·폭행치사 19%
[마부작침] 부부살인
크게 세 가지 죄- 살인, 상해치사, 폭행치사로 분류했다. 이를테면 위에 거론한 김 모 씨는 살인·특수협박·폭행·위치정보의보호및이용등에관한법률 위반, 이렇게 4가지 죄로 재판받았는데 살인으로 분류했다. 그렇게 나눠보니 살인 81건, 상해치사 14건, 폭행치사 5건이었다.

법률혼 부부에 한해, 확정 판결이 난 사건으로 한정했기에, 다른 통계와 다소 차이가 있다. 경찰이 집계한 사건 발생 기준 2018년 부부간 살인 사건은 31건이었다. 역시 경찰 통계인 2018년 살인 사건(기수) 322건과 비교하면 10분의 1 정도이다.

● '부부 살인' 피해자, 남편 34%·아내 66%
[마부작침] 부부살인
판결문 정보를 바탕으로 '부부 살인' 피해자 특성을 살펴봤다. 피해자는 남성이 34명, 여성이 66명. 즉 남편이 살해하거나 사망케 한 아내가, 아내가 살해하거나 사망케 한 남편에 비해 약 2배 많았다.

피해자 남편의 평균 연령은 58.7세, 피해자 아내는 49.8세였다. 2018년 결혼한 남성의 초혼 연령은 33.2세, 여성은 30.4세로 '부부 살인' 피해자와는 20년 혹은 그 이상의 차이가 있다. 나이로만 보면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이들보다는 중년을 넘어선 부부 사이에서 '부부 살인'이 주로 벌어졌다.

● 판결문 71%에서 '가정폭력' 언급... 부부폭력률 41.5%
[마부작침] 부부살인
"말다툼하다가 주먹 등으로 때려...", "경찰이 두 차례 출동했으며...", "칼로 찔리고 베이는 것 포함해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당해...". '부부 살인' 사건 판결문 곳곳에서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결혼 생활 동안 가정폭력이 있었고 사건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언급이다.

<마부작침> 분석 결과, 5년 치 '부부 살인' 판결문 100건 중에 범죄 사실이나 양형 이유 등에서 가정폭력을 언급한 건 71건, 71%였다. '부부 살인' 사건의 3분의 2 이상에는 가정폭력이 배후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성가족부가 3년 주기로 실시하는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부 사이에 벌어지는 신체적 폭력·정서적 폭력·경제적 폭력·성학대·방임 등을 가리키는 부부폭력률은 2004년 44.6%였는데 가장 최근인 2016년 조사에서도 41.5%를 기록하고 있다. 가정폭력 처벌법과 방지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한국 여성의 전화 최선혜 여성인권상담소장은 "피해자들이 가정폭력을 막거나 저지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발생해도 경찰은 쌍방폭력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수사기관에서 맥락을 간과하고 현상만 보고 판단하면 가정폭력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안혜민 기자·분석가 (hyeminan@sbs.co.kr)
김민아 디자이너
이유림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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