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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유기견 보호? '동물학대' 아닌지 따져 봐야

이학범 | 수의사. 수의학 전문 신문 『데일리벳』 창간

[인-잇] 유기견 보호? '동물학대' 아닌지 따져 봐야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유기동물은 12만 1,077마리였다. 2014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로, 매일 평균 330마리 동물이 버려지는 셈이다.

그런데 실제 유기동물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왜냐하면 '12만'이라는 숫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에 입소된 개체만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되지 못하고 야생에서 살아가거나 동물단체가 구조한 경우, 그리고 사설보호소로 입소된 개체는 통계에서 제외됐다.

흔히 유기동물을 보호하는 곳을 '유기견 보호소'라고 부르는데, 크게 보면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와 사설보호소로 나눌 수 있다. 지자체 동물보호센터는 현재 전국에 298개소가 있고, 지난해의 경우 1년 동안 200억 4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동물들을 보호 관리했다. 매년 입소되는 유기동물의 숫자와 종류, 그리고 보호형태(입양, 주인반환, 자연사, 안락사, 보호)도 파악된다.

하지만 사설보호소의 사정은 좀 복잡하다. 사설보호소는 개인이 버려진 동물을 한두 마리 데려다 키우다가 그 규모가 점차 커진 곳들이 많은데, 현재 전국에 몇 곳이 있는지, 모두 몇 마리의 유기동물이 관리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지난해 농식품부가 용역을 통해 전국에 82개 사설보호소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으나, 실은 어디까지를 사설보호소라고 불러야 하는지 기준조차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를 파악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유기견 30마리를 데려다 자기 땅에서 키운다고 해서 이를 사설보호소로 부르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이렇게 관리가 안 되다 보니 일부 문제 많은 사설보호소들도 방치된다. 그런 곳에서 후원금을 착복하거나 남의 땅에 동물을 보호하거나 질병 예방이나 방역을 잘못해서 전염병이 쉽게 퍼지기도 한다. 말이 '보호소'이지 사실상 동물학대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애니멀호딩(동물 대량사육)' 성격의 보호소들이다. 애니멀호딩은 일종의 동물학대인데,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과도한 동물을 사육하며 '집착'하는 경우다. 애니멀호더들은 자신만이 이 동물을 돌볼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동물의 고통을 외면하기 일쑤다.

농식품부의 '사설동물보호소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용역을 수행한 이혜원 박사에 따르면, 애니멀호더의 경우 △보호 동물 개체수 증가 △개체수 증가를 문제로 여기지 않음 △중성화수술 미시행 △중성화되지 않은 암수 동물 한 공간 사육 △폐쇄적 성향으로 외부인 방문 꺼림 △자원봉사자나 입양희망자 방문 차단 △보호 중인 동물을 '가족'으로 표현하며 입양에 소극적이라는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국내 최대 규모 사설 유기견 보호소인 '애린원'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 2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애린원은 한때 보호 동물이 3천 마리 가까이 늘어났을 정도로 개체 관리가 되지 않았다.

수의대생 시절 매달 유기견 보호소로 봉사를 다녔는데, 그때 가장 많이 찾아갔던 곳도 바로 애린원이었다. 보호 동물 수가 워낙 많다 보니 문제도 많았고 그만큼 도움의 손길도 절실했기 때문이다. 질병에 시달리는 동물이 많았고, 심지어 사체가 보호소 내에 방치되는 경우도 흔히 봤다.

그래서 가장 많이 했던 활동이 예방접종과 중성화 수술이었다. 특히 중성화 수술은 개체 수 증가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의료봉사를 다니는 몇 년 동안 꾸준히 늘어나는 동물들을 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많은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애린원을 우려 깊은 시선으로 보아온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그 애린원이 조만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법원이 토지를 불법점유 중인 애린원에 대해 강제철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강제철거 전에 보호소 동물들에 대한 구조가 먼저 이뤄졌는데, 사전에 신분확인을 받은 수의사와 훈련사만 들어갈 수 있는 이 구조작업에 나도 기꺼이 동참했다.

25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이어진 구조 결과 우리는 1,041마리를 구조해 임시 거처로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200~300마리가 애린원에 남아 있다. 조만간 2차 구조작업이 이뤄지면 이후에는 바로 시설물에 대한 강제철거가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기동물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제2, 제3의 애린원이 또 나올지도 모른다. 보호소란 이름 아래 사실상 동물을 방치하는 곳들이 없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사설보호소 후원을 고려하는 분들이시라면, 애니멀호더가 운영하는 곳은 아닌지 꼭 확인해 보시길 조언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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