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출산, 공포의 기억"…덴마크는 어떻게 다를까?

에밀 라우센 | 한국인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15년째 한국서 살고 있는 덴마크 남자

SBS 뉴스

작성 2019.09.25 11:04 수정 2019.09.25 13:4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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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축복'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더욱 그랬다. 10대 때 암 투병을 하면서 스무 살이 되기 전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원에서 처음 초음파를 통해 딸 리나를 만난 날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지하철로 걸어가는 내내 울다가 웃다, 웃다가 울다를 반복했다.

출산을 기다리는 기쁨은 맹렬한 학구열로 이어졌다. 나는 책도 한 보따리 사서 읽고, 주변 사람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덴마크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출산의 감격과 행복감에 대해 흥분해 얘기해줬고, 덩달아 우리도 가슴이 설레고 신이 났다.

그런데 한국의 엄마들은 좀 달랐다. 출산 순간을 묘사할 땐 고통과 두려움을 먼저 얘기했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빠들은 자녀의 출산 자체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이 없어했다. 한국 부모들이 사랑이 부족해서는 아닐 텐데, 왜일까?

리나의 출산을 준비하고 출산할 병원을 알아보며,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한국의 산부인과에서는 여전히 의료진이 '주체'가 되고 아기와 산모는 '처치를 받아야 할 환자'처럼 다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부인과에서는 우선 남편의 역할이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산모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으며 진통을 참아내는 동안 남편은 초조하게 밖에서 기다리거나 옆에서 지켜봐 주는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게 전부였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덴마크도 1970년대에는 이런 모습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아기가 태어난 직후 부모와 아기가 마음껏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진통과 출산, 회복이 한 병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모자동실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한국의 일반적인 병원 시스템이었다. 나의 딸이 엄마 아빠 품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없고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신생아실의 소음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게 속상했다.

덴마크에서 출산은 일반적으로 조산사들에 의해 진행된다. 가정 출산을 할 수도 있고 병원 출산을 할 수도 있는데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병원에서조차 산파 즉, 조산사들이 산모와 뱃속의 아기의 속도에 맞춰서 출산을 돕고 의료진은 필요한 경우에만 개입을 한다.

덴마크 국립병원에서 산부인과 책임자로 일하시는 우리 아버지도 출산 시에는 대기를 하고 있다가 위험 상황에만 수술을 집도한다. 제왕절개 비율은 열 명중 한두 명으로 덴마크 병원 중에서도 낮은 편이고, 한국의 산부인과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회음부 절개도 하지 않는다. 산모가 미리 준비를 잘하면 회음부 절개는 일반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게 아버지의 설명이다. 제모와 관장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국에서 덴마크 식으로 출산할 수 있는 클리닉을 선택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리나를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아내는 출산의 모든 과정이 너무나 황홀하고 좋았다고 말한다. 나 또한 진통의 시작부터 출산까지 남편으로서 또 아빠로서 함께 이루어낸 경험은 큰 용기와 자부심이 되었다.

리나를 처음 품에 안은 순간 아내는 감격스러워서 엉엉 울었다. 탯줄을 단 채 엄마와 살을 맞대고 눈을 깜빡이며 우리를 바라보던 리나의 천진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급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그 감격을 여유롭게 함께 누렸다. 그리고 나는 리나의 탯줄을 잘라주었다. 몸을 씻기지 않은 채 아기 몸의 양수가 잘 스며들 수 있게 해 주고 따뜻하게 모자를 씌워주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니 조산사님들과 의사 선생님은 방을 나가고 우리 세 가족만 남게 되었다. 딸은 내 품에서 편안하게 나의 심장소리를 들었고, 나는 리나에게 뱃속에 있을 때 불러주던 노래와 기도를 해주었다.

아내는 수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바로 모유수유를 시작했고 덕분에 몸의 회복도 빨랐다. 한국 출산 문화의 독특한 시스템인 조리원에 갔다면 더 집중적인 회복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덜 체계적이라도 아이와 함께 지내는 '에밀 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하며 몸조리를 하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리나 생애의 첫 시간은 우리 세 식구가 서로를 깊게 알아갈 수 있는 시간들로 채워져 갔다. 리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니 울기 전에 아기의 필요를 먼저 잘 채워줄 수 있게 되었고 아기가 우는 일은 거의 없게 되었다.

보통 아기는 배가 고프면 30초에서 1분 30초 안으로 입을 움직이며 신호를 보내는데 그때 모유를 주지 않으면 울기 시작하고 10분 정도가 지나면 지쳐서 잠들어 버린다. 조리원에서 아기가 운다고 수유 콜을 받은 뒤 준비해서 내려가 보면 아기가 자고 있어서 못 하고 오는 경우들이 반복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출산 문화가 덴마크보다 더 효율적인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산모와 갓 태어난 아기의 정서적인 부분까지 더 신경 써줄 수는 없을까, 아빠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함께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의료 시스템만의 차이는 아닐지 모른다. 다행히 "애를 아내가 낳은 거지, 네가 낳은 거냐?" 하는 말을 상사에게 들으면서도 꿋꿋하게 고된 업무를 마치고 아기와 아내를 밤새 돌보는 남편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아빠의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더 많이, 더 빠르게 늘어나기를 바란다.

※ 이 원고는 인-잇 편집팀의 윤문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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