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늦은 밤, 당신의 귀갓길은 안전합니까? ①

김민정 기자 compass@sbs.co.kr

작성 2019.09.14 19:13 수정 2019.09.15 17:3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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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과 회식, 혹은 즐거웠던 저녁 모임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어두컴컴한 길.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밀집한 주택가에 살아 본 여성이라면 한번쯤 112가 눌러진 휴대폰을 손에 움켜쥐고 걸었던 적이 있을 겁니다. 뒤따라오는 발소리에 걸음을 재촉한 적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주위를 둘러 본 적도 있을 겁니다.

얼마 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길에서부터 뒤를 밟아 집 안까지 따라 들어오려 했던 한 남성의 모습이 CCTV에 고스란히 담겨 큰 논란이 됐었죠. '신림동 강간미수'로 불린 이 사건은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 봤을 막연한 귀갓길 공포가 눈에 보이는 실체로 드러났다는 점이 분노에 불을 댕겼습니다.

SBS 이슈취재팀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훨씬 더 많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직·간접적으로 축적된 경험칙에서 비롯된 여성들의 귀갓길 공포. 실제 귀갓길에 일어난 사건들을 실증적으로 들여다본다면, 이들의 공통점과 여러 특징을 통해 귀갓길 공포의 정책적 해결책을 모색해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전체 41건 더 있었다…그 중 21건이 신림동 사건 '판박이'
신림동 강간 미수이슈취재팀은 주거침입 성범죄 혐의로 최근 1심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을 통해 여성들 귀갓길 안전이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위협을 받고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주거 환경의 유사도가 높은 서울과 경기권에서 주거침입 성범죄 피해를 입은 20, 30대를 취재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1년 반 동안 1심 선고가 나온 사건을 취합했습니다.

취재 결과 지난 1년 반 동안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주거침입 성범죄 사건은 모두 41건. 가장 안전해야 할 자신의 집에서 낯선 사람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입은 사람, 그 가운데 가해자에게 응당한 형사적 책임을 묻는 데 성공한 사람이 41명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이슈취재팀이 가장 먼저 주목한 건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과 범행 수법이 정확히 일치하는 21건입니다.

21건에서는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키워드가 언급됐습니다.
20·30대 여성 대상 주거침입 성범죄 판결문 분석 (2018~2019. 7)"밤 늦게", "새벽 시간대", "혼자 길을 가는 여성", "택시·버스에서 내리는 여성", "성폭력하기로 마음먹고", "강제추행하기로 마음먹고", "몰래 뒤를 밟아", "문이 열리는 순간"

늦은 밤 혼자 걸어가는 여성을 목격한 뒤 성폭력하기로 마음 먹고 몰래 뒤따라가는 식의 '묻지마 범행'이 전체 주거침입 성범죄 사건의 절반 이상이었던 겁니다. 주택가에서 택시에서 내리는 여성을 목격하고 따라 가거나, 본인이 차를 타고 가다가 혼자 걸어가는 여성을 보고 차로 뒤따라가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는 여성을 목격하고 집까지 따라간 경우, 혼자 귀가하는 여성에게 다가가 "누군가 당신을 따라온다. 집까지 동행해주겠다"고 말한 뒤 본인이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들을 다룬 복수의 재판부에서는 양형을 판단하며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린 범행으로 죄질이 나쁘다"고 공통적으로 언급했습니다.

● 부실한 현관문 노린 범행도 ↑…보안에 취약한 주거 형태가 영향 미쳐
20 · 30대 여성 대상 주거침입 성범죄 유형주거 환경이 범행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부실한 현관문으로 침입해 저지른 범행이 12건으로 많았습니다. 이 때도 범행 대상은 역시 무작위로 물색했는데 주로 저층이나 반지하에 사는 여성을 창문으로 목격한 뒤 새벽 시간대 잠금장치가 부실한 베란다나 현관문으로 들어와 범죄를 저지른 경우였습니다. 창문을 통해 피해자를 오랜 시간 관찰해 생활 패턴을 파악한 뒤 계획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여러 건 있었습니다.

음식 배달을 왔던 집에 새벽 시간에 되돌아 와 방범창을 뜯고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3건 있었습니다. 택배기사나 경비원을 가장해 문을 두드린 뒤 문을 여는 순간 집으로 침입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고, 온라인에서 알게 된 여성을 스토킹하다가 피해 여성의 SNS를 통해 주거 지역을 특정한 뒤 인근 우편함 등을 뒤져 집으로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밖에도 고시원처럼 보안이 극도로 취약한 형태의 주거지에서 같은 건물에 사는 낯선 사람이 방에 침입해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3건 있었습니다.

범행이 발생한 주거 형태를 종합하면, 골목길에 밀집한 다세대 주택이나 빌라 형태의 원룸에서 발생한 비율이 72%로 아파트에 비해 두드러지게 많았습니다. 보안에 취약한 주거 환경이 범행 대상으로 특정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는데, 경제력이 떨어져 주거지 선택에 제약이 있고 혼자 사는 비율이 높은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일수록 범죄에 더 쉽게 노출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 무작위 '사냥형 범죄' 막을 방법 없나?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이 결정적 순간에 문이 닫혀 미수에 그쳤다면, 판결문에 확인된 사건들은 모두 실제 범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식으로 저지르는 범죄를 '사냥형 범죄'라고 설명합니다. 길에서 무작위로 사냥하듯 대상을 특정해 저지르는 범행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이를 스스로 미연에 예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사회 공동체가 범죄 예방을 위해 함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자체와 경찰에서는 이미 안심귀갓길서비스, 귀갓길동행서비스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공약으로 '여성안심주택' 공급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슈취재팀이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해 이런 대책들이 실효성이 있는지, 범죄 예방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그 내용은 취재파일 ②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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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는 앞으로도 시청자와 함께 1인 여성 가구의 주거 안전을 위한 해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귀갓길이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링크를 통해 제보해주세요. 기자가 직접 현장을 점검하고 관계 기관에 환경 개선을 요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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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 박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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