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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日 여성 폭행 사건', 일본인들 어떻게 바라볼까?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인-잇] '日 여성 폭행 사건', 일본인들 어떻게 바라볼까?
지난 23일 한 지인이 페이스북에 일본 여성이 한국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트위터에서 급속하게 번지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내용이 트위터는 물론이고 블로그,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서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다며, 일본 내의 혐한 분위기에 기름을 붓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다.

동영상과 사진에는 한국인 남성이 일본 여성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었다. '왜 하필 이런 때에 이런 일이…'라는 걱정과 함께 일본 미디어들이 이 사건으로 반한 감정을 더욱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이런 사건은 일본 미디어들이 다루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영상과 사진같이 확실한 증거가 있고, 법을 어기고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한국과 피해자 일본이라는 프레임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초 걱정과는 달리 이번 사건으로 반한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 같지는 않다. 이번 사건이 '한국 때리기'로 확대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이번 사건을 다룬 언론사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내가 찾아본 바로는 지면에서 이번 사건을 다룬 곳은 도쿄신문과 산케이신문(오사카판) 두 곳뿐이었다. 도쿄신문은 1단 기사, 산케이는 3단으로 다뤘지만, 사실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한국 언론 보도를 인용해 한일 관계와 무관한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방송 보도도 마찬가지다. 징용공 판결이나 최근의 지소미아 관련 보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톤다운 되어 있는 편이다.

물론 한국에 비판적인 내용으로 시청률을 올리곤 했던 오후의 정보 프로그램들까지 그냥 지나칠 리는 없다. 전국의 주요 방송사들이 월요일 특집으로 이번 사건을 다뤘다. 그런데 패널들의 감정적이고 자극적인 발언에도 불구하고, 방송 후 시청자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다. 덩달아 흥분하거나 격앙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 정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성 연예인이 '재일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게 되면 무슨 일을 당할 것 같아서 겁난다'라는 발언을 하자 '차별 발언', '관계없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인다'는 등의 비판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정보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가 일본 미디어가 비난하고 있는 것은 한국인이 아니고 한국 정부라면서 일본에 오는 한국 관광객이나 재일 한국인에게 이번 일과 같은 사건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시청자들에게 주의를 환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본 대중의 반응이 침착한 건, 이번 사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이 상당히 비판적이라는 사실이 일본 언론에도 소개된 덕분이다. 일본 언론들은 폭행을 가한 한국인 남성에 대해 한국 내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다는 사실을 함께 소개했다.

방송에서는 한국 네티즌들의 댓글을 직접 화면에 비추며 한국인들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지 설명해줬다. 화면 속에는 '창피하다', '법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반응부터 '이런 일들이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우려와 '이런 때에 한국에 와 주었는데 미안하다' 같은 따뜻한 사과의 말까지 담겨 있었다.

아사히TV가 운영하는 아베마TV도 한국인 관광객의 인터뷰를 통해 반응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치와 이번 사건을 연결 짓지 말라', '개인적인 문제다. 일본인이라서 폭력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의견을 달리하기는 하지만 평범한 일본 사람에 대해서 나쁜 감정을 가지는 젊은 층은 많지 않다' 같은 내용이 실렸다. '이번 사건은 개인적인 문제로, 한일간의 문제로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는 임상심리 전문가의 의견도 소개됐다.

여기에 피해자에 대한 자기책임론을 부각하는 일본 내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양국 간 갈등이 고조된 이런 시기에 한국으로 여행을 간 피해자들도 문제라는 주장이다. 사건 피해자에게 이런 식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분위기는 일본 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난다. 2016년 이라크에서 납치되었다가 2018년 풀려난 프리랜서 기자에 대해서도 '자기 책임'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이보다 앞서 2004년 이라크에서 3명의 일본인이 납치되었을 때도 고이케 환경대신(현 도쿄도지사)은 위험한 지역에 가서 납치 당한 것은 자기 책임이 크다고 비난한 바 있다.

물론 이런 시각은 당장은 가해 남성이 속한 한국에 대한 비판 수위를 낮출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이 '여행하기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을 일본 대중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 우려되는 면이 없지 않다. 한국으로 향하는 여행 수요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을 싫어한다', '한국은 일본인에게 위험한 나라다' 같은 불필요한 두려움이나 반감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 여성을 공격한 남성이 입건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이 내용은 속보로 일본에도 빠르게 전달되었다. 일본에 거주 중인 한국인으로서 양국 간 이슈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이 애초 없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 사건이 개인적인 일과 국가 간의 갈등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본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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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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