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선박 사건 은폐 안 했다"는 靑…곳곳의 은폐 증거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oneway@sbs.co.kr

작성 2019.06.24 09: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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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소형 선박이 삼척항에 접안하고 시민이 신고할 때까지 해군, 육군, 해양경찰, 그리고 해양수산청의 감시망은 무력했습니다. 의문의 여지없는 경계 실패입니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인정했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논란의 핵심은 경계 실패가 아닙니다. 경계 실패를 은폐했느냐입니다. 특히 청와대가 은폐에 개입했느냐가 관건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작전 실패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 실패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데, 사실 경계 실패도 솔직히 털어놓으면 혼은 나겠지만 이따금씩 용서가 되기도 합니다. 용서할 수 없는 건 경계 실패 사실을 축소하고 은폐한 겁니다.

정경두 장관은 은폐가 있었음을 사실상 시인했는데, 청와대 윤도한 국민소통수석과 고민정 대변인은 "은폐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은폐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사건 당일인 지난 15일 동해 해경이 강원도 영동 지역 소수의 기자들에게 보낸 짧은 휴대전화 문자 공지입니다.

그 문자 공지는 청와대 주장처럼 "국민들에게 알렸다"라고 하기엔 대단히 부실합니다. 반면, 은폐의 증거와 정황들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청와대와 군이 은폐했는지, 사실대로 알렸는지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 15일 문자 공지…"삼척항으로 옴"

동해 해경은 지난 15일 오후 2시 10분 등록된 출입기자 16명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북한어선 관련 참고사항 알림-
○ 북한어선(톤수미상, 승조원4명)이 조업중 기관고장으로 표류하다가 자체수리하여 삼척항으로 옴으로써 6.15(토) 06:50경 발견되어 관계기관에서 조사중임.
○[통일부]에 문의바람


문자 메시지에 '삼척항으로 옴'이라는 문구가 있으니 사실을 투명하게 공개했다는 게 청와대 주장입니다. 하지만 '삼척항으로 옴'이란 표현을 보고 북한 선박이 삼척항에 정박했으며 북한 주민들이 방파제에 올라 활보했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건 이틀 뒤인 17일 군이 사용한 '삼척항 인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표현입니다.

동해 해경 관계자는 "이런 보안 사항은 매뉴얼 상 청와대와 논의하도록 돼있고 이번에도 매뉴얼대로 했다"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와 논의해서 팩트 위주로 알렸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청와대의 윤도한 수석은 이번 사건을 "중대한 상황으로 인식했고 은폐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윤 수석 말대로 중대한 상황으로 인식했다면 토요일 오후 지역 기자 16명에게 문자 메시지 한통씩 발송하고 그만 둘 일이 아니었습니다.

'삼척항으로 옴' 6글자가 불분명하니 추가적으로 취재하고 싶다면 문자 공지의 안내처럼 통일부와 접촉해야 합니다. 하지만 15일 당일부터 정부 합동조사가 시작됐으니 통일부로부터 어떤 답변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귀순 작전 상황은 통일부보다는 군이 전문입니다. 북한 선박 귀순 정보를 실시간으로 상세하게 접수한 군은 주말이었던 15~16일 문의하는 기자들에게 "북한 선박이 상륙했다"는 정보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군은 전모를 알고 있었지만 숨겼으며, 이런 상황을 일컬어 '은폐'라고 부릅니다.

정경두 장관도 지난 20일 대국민 사과에서 은폐 행위 엄단을 약속함으로써 은폐가 있었음을 자인했습니다. 군이 단독 판단으로 은폐했는지, 청와대와 협의해서 은폐했는지만 밝히면 됩니다.

● '은폐 주역'은?…靑 행정관은 브리핑에 왜 왔을까?

가장 극적인 은폐와 축소는 지난 17일 오전 10시 40분쯤 국방부 기자실에서 시작된 군 당국의 백브리핑(back-briefing)에서 이뤄졌습니다. 국방부의 백브리핑은 관련된 군 당국자들, 등록 출입기자들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현역 군인들도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소수만 참관이 허용됩니다. 백브리핑에서 언급되는 내용들 중 일부는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것들이어서 보안이 중요한 자리입니다.

군 당국은 바로 이 17일 백브리핑에서 "북한 선박이 엔진 없이 물길 따라 흘러 다니다가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백브리핑 전, 카메라로 촬영되는 공개 정례 브리핑에서는 "해안과 해상 경계작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백브리핑에서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군 당국은 북한 선박의 삼척항 접안, 북한 주민들의 상륙과 활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사실을 은폐하고 축소한 브리핑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청와대 안보실 1차장실 산하 국방개혁비서관실의 김 모 행정관이 몰래 들어와 있었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청와대는 "17일 브리핑은 군과 조율을 했다"며 "김 행정관은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갔다"고 해명했습니다.

정리하면, 청와대와 군은 사전 조율해서 17일 국방부 기자실에서 백브리핑을 했고 사건의 내용은 은폐, 축소됐습니다. 김 행정관은 은폐·축소 브리핑을 몰래 현장에서 목격했고, 전 과정을 상부에 보고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와대가 단정적으로 "은폐는 없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 함구 또 함구…"함구령은 은폐의 증거"

이번 사건의 전모는 지난 화요일인 18일, 그러니까 은폐 백브리핑 이튿날부터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자는 삼척항 주민들과 두루 전화통화를 했고 "15일 아침 북한 선박이 발견됐을 당시 북한 주민 4명 중 1명은 배 안에, 3명은 방파제 위에 있었다"는 증언을 여러 명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전날 군 당국의 설명에는 없던 충격적인 사실이었습니다.

군 당국자들에게 주민들의 말이 맞는지 물었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은폐행위가 벌어진 겁니다. 한 주민으로부터 북한 선박이 발견됐을 때 사진을 제공받은 뒤, 군에 해당 사진을 제시하자 그제서야 군은 이실직고했습니다. 배는 삼척항에 접안했고 북한 주민들은 상륙했다고…

군은 사실을 은폐했습니다. 주요 직위자들에게는 16일부터 "기자들에게 내용을 말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졌습니다. 북한과 관련된 보안 사항은 군이든 해경이든 청와대와 협의해서 공개 수준을 결정하도록 규정됐기 때문에 군의 함구령도 청와대와 조율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청와대는 군과 언론 브리핑 내용을 조율했고 기자실 백브리핑 현장에 행정관을 잠입시키기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군의 함구령은 어떻게 내려졌을까요? 답은 ①군 단독 ②청와대와 군 조율, 둘 중 하나입니다. 몇 번일까요?

● 책임 회피가 능사 아니다

안보 관련 당국자가 지난 21일 오전 기자에게 "행정관 백브리핑 기사의 제보자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 기자는 "제보자가 아니라 행정관한테 염탐 지시한 자를 잡아야 한다"라고 답했더니 그 관료는 "지시한 사람은 다 알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네, 압니다. 누가 행정관을 기자실 백브리핑에 보냈는지 알 만한 사람은 압니다.

청와대 안보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핵심 조사 내용은 은폐의 기획과 지시 여부입니다. 그런데 청와대 윤도한 수석과 고민정 대변인은 "청와대는 은폐하지 않았다"라고 단정했습니다. 청와대의 두 입이 안보실 조사의 가이드라인과 결과를 미리 확고하게 제시했습니다. 안보실에 대한 조사 결과는 뻔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청와대 누군가 자백을 한들 조사 결과는 "청와대의 은폐는 없었다"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부는 왜 이렇게 서두르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할까요? 의문은 더욱 커집니다. 초주검이 되고도 남았을 힘든 항해를 했는데도 말끔한 북한 귀순 주민들은 민간인이 맞는지, 북한 배 안에 중국제 GPS와 통신기, 어망 외에 다른 물건은 없었는지… 이번 사건이 경계 실패, 사실 은폐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