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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그리울 땐 술 대신 기부로…'고향세'

이홍천|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인-잇] 그리울 땐 술 대신 기부로…'고향세'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 리,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1954년 도미도 레코드에서 발표한 곡 '꿈에 본 내 고향'이다. 전쟁 직후는 물론 80~90년대까지도 큰 인기를 얻었던 곡이다. 하지만, 아마도 지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런 노래로 달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과 같이 교통이 발달한 시대에 떠나온 고향을 찾기는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면 일본도 한국에 뒤지지 않는다. 일본은 덴노(일왕)를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다이묘(지역의 군벌)들이 중심인 지방 분권의 역사가 길다.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고향에 돌아간다는 것을 '쿠니(國 나라)에 돌아간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이런 문화는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어, 일본의 행정 구역은 메이지 이전까지 군벌들이 지배하던 지역을 도도부현으로 바꾼 것뿐이다.

지역 간 이동도 쉽지 않았다.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검문하는 '세키쇼'라는 시설이 교통의 요지마다 설치돼 있었다. 서쪽에서 에도(현재의 도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세워진 세키쇼로 유명한 것이 하코네 세키쇼이다. 하코네는 도쿄 근교의 온천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과거엔 세키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지방 분권의 역사가 긴 일본은 각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일본의 어느 지역을 가도 도쿄와는 다른 문화나 전통이 여전히 잘 보전되고 있는 것은 지방 분권의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에도 불구하고 일본도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현상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일극집중(一極集中)이라는 표현이 사용될 정도로 대도시로 사람과 재화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지역에서는 셔터 거리(가게의 폐업으로 셔터가 내려진 퇴색한 상점가)도 늘어나고 있다.

2040년까지 전국의 1799개 자치체 중 896개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전 이와데현 지사가 좌장을 맡은 일본의 성장과 인구감소 문제 검토분과회는 '소멸가능 도시 896곳'의 리스트를 발표했다. 소멸가능 지역이 실명으로 실린 이 리스트는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구 감소와 지역(고향)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런 충격이 고향세 납부를 자극해 2015년부터 '고향세' 납부액도 빠르게 증가했다. 2014년 141.9억 엔(약 1420억 원) 이던 고향세는 2015년 341.1억 엔으로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2016년에는 1471억 엔이, 2017년에는 2566억 엔이, 그리고 2018년에는 3481억 엔이 납부됐다. 4년 만에 20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3조 5000억 원에 해당하는 돈이 지방자치단체에 납부된 것이다.

지역 소멸이라는 충격이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였고 이런 관심이 고향세의 납부 증가로 이어졌다. 고향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술로 달래지 말고 그 돈으로 지역에 공헌하라고 만들어진 제도이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후루사토 노제(ふるさと納税), '고향납세'라는 뜻이다.

이 고향세가 한국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금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납세자들의 상당수가 지역 출신이다. 지역은 이들에게 의료, 교육, 주민 서비스를 제공(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은 대도시가 전부 누리고 있다. 재주는 지역이 부리고 돈은 대도시가 가져가는 꼴이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지역 출신들이 자신을 키워준 지역에 대한 보답으로 자발적으로 기부하자는 것이 고향세의 취지이다.

고향세는 세금이라고 표현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기부금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우리의 광역단체에 해당되는 도도부현에서 기초 지자체인 시군구에 이르기까지 자치체에 기부를 하면 기부금액 중 2000엔(한국 돈 2만 원 정도) 이상의 금액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소득세나 주민세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물론 소득에 따른 상한선은 있다.

주민세 공제는 도쿄, 요코하마, 오사카, 아이치현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대도시에 납부되어야 할 주민세의 일부가 지역으로 착실하게 이전되는 재분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고향세가 지역 예산보다 많은 곳도 있다. 고향세는 지역 소멸 속도를 얼마나 늦출 수 있을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올해도 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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