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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한국 화장품 붐'을 통해 본 한일 관계

이홍천 | 일본 도쿄도시대학 사회미디어학과 준교수

[인-잇] '한국 화장품 붐'을 통해 본 한일 관계
한일관계는 정말 최악인가? 최근 들어 이런 질문을 자주 해 본다.

근래 징용공 문제나 위안부 문제로 한국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이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일본의 고노 타로 외무대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현안 문제를 책임지라며 외교적 결례를 서슴지 않은 것이나 주간지(주간 문예춘추)에 '국교 단절 시나리오'라는 제목이 뽑혀져 나오는 걸 봐도 그렇다. 이러다 보니 페이스북에는 한일관계를 걱정하는 지일파 전직 외교관과 한국 특파원 경험이 있는 지한파 일본 기자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 언론 보도나 지인들의 걱정은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체험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부정적인 시각은 양국 시민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교류의 깊이와 정도를 외면하고 정치가나 관료의 시각에서만 사안을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사회 문화적인 경험의 공유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것이 한일 양국이고, 젊은 층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한국은 부정적인 이미지나 국교를 단절해야 되는 반일 국가로 인식되기보다는 문화나 유행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내가 일본의 한 여대에서 담당하고 있는 수업에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다. '화장품'을 통해 한일관계를 바라본 것이다.

여대생들이 즐겨 보는 패션 잡지의 표지에는 한국 화장품에 대한 동경이 넘쳐난다. '한국의 베스트 화장품', '한국 여성들은 얼굴 만들기 천재', '한국스러움 2018', '한국스러운 게 예쁘다', '블랙핑크처럼 되고 싶다', '태리짱이 너무 예쁘다', '태리짱의 눈 화장 이야기' 등등.

태리짱은 2013년 데뷔한 걸그룹 트렌디의 리드 보컬 강태리를 말한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40만 명, 유튜브 채널을 구독한 사람은 10만 명에 달한다. 일본 여대생들 사이에서 닮고 싶은 이상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2019 KCON재팬 (사진=2019 KCON재팬 홈페이지 캡처)
트위터에서는 '한국 좋아', '한국 좋아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 '한국인이 되고 싶다' 같은 해시태그도 등장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한국스러움'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어로 정착되고 있고, '한국 좋아하는 사람과 연결되고 싶다'는 해시태그에는 3백만 건 이상의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얼짱'이나 '몸짱' 같은 단어가 한글 발음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일본 젊은 여성들의 화장이 한국의 것을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 여대생들은 이미 내가 들어 본 적도 없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을 줄줄 꿰고 있었다.

겨울연가를 비롯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제1의 한류 붐을 형성했다고 하면 K-POP의 인기는 제2의 한류 붐을 이끌었다. 내가 보기엔 최근 화장품, 패션, 미용 등의 분야에서 한국 상품 혹은 한국적인 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은 제3의 한류 붐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세계적인 화장품 브랜드가 넘쳐나는 일본 시장에서 한국의 로드숍(가두매장) 브랜드들만은 잇따라 성공을 거뒀다.

한일관계가 최악이라는 요즘에도 K뷰티 붐은 쉽게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적어도 일본의 젊은 세대가 한국 화장품을 선택하고 한국적인 미에 동경을 느끼는 정서에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한국에 대한 편견이 없거나 훨씬 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한일관계가 과거에 비해 꾸준히 나아진 것처럼, 미래에도 한층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사진=2019 KCON재팬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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