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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응급실에 실려 가도, 아이가 아파도 연차 못 쓰는 회사

KTis 소속 SH공사 콜센터 상담사들, 노동청에 회사 고발

5월 8일 서울동부노동청 앞. 낮 12시 45분에 KTis 콜센터 상담사들이 모였습니다.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서인데요, 참 애매한 시간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자리에 온 기자는 단 두 명뿐이었습니다.
김혜민 취파용
"기자회견 때문에 연차를 쓴다고 했지만 오늘도 회사는 연차 사용을 거부했습니다. 부득이하게 점심시간을 이용해 기자회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이해가 됩니다. 상담사들은 짧은 기자회견을 끝내고 다시 회사로 뛰어갔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KTis소속으로 SH공사 콜센터 상담사들이 이번처럼 정당한 연차 사용을 거부당하는 일은 비일비재했습니다.

회사는 업무가 몰리는 특정 날짜에 연차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고, 그 날짜가 언제인지는 바로 며칠 전에 공지되기도 했습니다. 연차 사용이 금지되는 날,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쓰면 고가 점수 감점을 받는데, 이 점수는 월급 삭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연차를 쓸 수 없어 퇴사를 하거나 육아휴직을 한 상담사들도 태반입니다.

#.1 "전세보증금 연장 대출 건으로 연차 제외일에 어쩔 수 없이 연차를 신청했습니다. 잔여 연차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차를 신청할 수가 없었고, 결국은 당일 퇴사를 해야 했습니다."

#.2 "종합병원 소아정형외과에 자녀 검사 예약이 돼 있어 연차 신청을 했습니다. 이때 검사를 받지 않으면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해 꼭 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OOO 팀장은 "왜 그 교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진료확인서 등 서류를 제출하면 연차 사용을 고려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합병원 진료확인서는 병원에 가야 발급이 가능한데 그러려면 또 연차를 써야 해서 사정을 말했더니 연차 사용 승인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바로 육아휴직을 신청했습니다."

#.3 "스트레스성 피부질환으로 대학병원 예약을 잡았습니다. 며칠 뒤 연차 사용 불가하다는 통보를 전달받았습니다. 그 뒤 가려움 증상으로 호흡이 불가해 새벽에 응급실을 다녀오면서 회사를 결근하게 됐습니다. 병원 진단서를 제출하고 연차 신청을 했는데도 이틀 동안 회사를 못나갔다며 -4점, -8점 감점을 받았습니다."

#.4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귀가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먹먹하고 소리가 울려, 어지럽고 구토 증상까지 나타나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영구적인 청력손실이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 난청 전문병원을 가기 위해 반차를 요청했습니다. 승인은 됐으나 당일 반차 사용으로 근태 감점 1점을 받았습니다."
김혜민 취파용
근로자가 신청한 연차, 이렇게 회사 마음대로 허락하지 않거나 불이익을 줘도 될까요?

근로자의 연차 신청 대한 일정 조정은 회사가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만 근로자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막대한 지장은' 회사가 입증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근로기준법상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회사의 부당한 요구는 휴게시간에도 있었습니다. 4시간마다 30분씩, 8시간마다 1시간씩 휴게시간을 줘야 하는데, 이 1시간은 보통 점심시간으로 쓰이죠. 바쁠 땐 점심시간을 40분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김혜민 취파용
부당한 지시인데도 직원들은 거부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콜센터 직원들은 그동안의 사례를 모아 서울동부고용노동지청에 진정서를 냈습니다.

SBS는 사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답변을 듣진 못했지만 잠시 뒤 홍보팀을 통해 공식 답변이 왔습니다. "부당한 요구라고 인정한다. 상담사가 연차 사용을 요구하면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일 1시간 이상 휴게시간 이용을 보장하겠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취재 내용이 뉴스를 타진 못했지만, 이날 이후 회사는 저와 상담사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한 상담사가 보낸 문자 메시지입니다.
김혜민 취파용2
해결해줘서 고맙다는 말보다 해결하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말에 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최근 OECD는 "한국 노동생산성은 OECD 상위 50% 국가 노동생산성의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2017년엔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OECD 36개 회원국 중 29위이라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회사, 아이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근로 의욕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인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때, 오히려 노동생산성은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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