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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왜 나만 뒤처질까?"

장재열 | 비영리단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 중인 상담가 겸 작가

[인-잇] "왜 나만 뒤처질까?"
올해로 상담을 한 지 7년 차가 됩니다. 문득 세어보니 3만 명 이상의 친구들을 만났더군요. 지금은 그래도 다양한 곳들이 생겨났지만, 2013년 즈음 처음 시작했던 그 시기에는 참 우리 세대가 무언가를 마음 편히 토로할 공간이 없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되고,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공간인 '언니들'을 찾았던 것이겠지요.

어느 날은 지금의 나 같아서, 어느 친구는 예전의 나 같아서 어느 것 하나 지나칠 수 없었기에 정성스레 글로 이야기를 나누는 세월이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겨울, 3만여 명이 돌파한 어느 시점 저는 '현타'가 왔습니다. 이름과 나이, 직업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이 왔는데 어째서 자꾸만 전에 봤던 사연 같은 기시감이 드는 걸까. 실제로 자꾸만 '왔던 친군가?'라며 게시판을 뒤져보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10여 명의 동료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한번 통계를 내볼래?" 왜 이토록 다르게 태어난 존재들이, 그토록 같은 고민을 하는지 말이죠.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유효표본 21,492명 중 12,300여 명이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고 토로했던 것이죠. 56%를 상회하는 인원입니다.

이게 얼마나 많은 인원인지 감이 오지 않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다 모으면 어디에 수용할 수 있을까?" 그해 트와이스 단독 콘서트 2일 매진과 엇비슷한 인원이더군요. 이토록 많은 청년이 나'만' 뒤처진다고 생각하는 아이러니 앞에서 생각했습니다. "어... 근데 나도 그런데?" 상담가인 저조차도 말이죠.

통계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소득수준이나 직업, 생애주기와는 크게 관계가 없었다고. 뒤처짐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면 쉽게 떠올릴 만한 취준생, 비정규직은 물론이고, 구독자 10만이 훌쩍 넘어 소득이 대기업 평균을 훌쩍 상회하는 인플루언서도, 전문직 고소득, 연예계 종사자마저 뒤처짐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고 있었던 것이죠. 소득수준과는 별개의 '정서적 불안'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그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청년의 불안'이라는 키워드에서 논의되던 핵심대상은 25~32 세가량의 사회진입 초기 연령이었습니다. 그 이상의 나이는 그래도 좀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그 이하의 나이대는 아직 학생이거나 진로 탐색기여도 괜찮지 않으냐는 시선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대략 39세로 넓어지고, 10대에게도 투표권을 주자는 사회상을 반영이나 하듯 점점 위로도 아래로도 뒤처짐의 정서를 느끼는 연령대가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36세의 대기업 종사자는 40대 이후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만 뒤처짐을 느끼고, 이제 막 20세가 된 재수생 친구는 '이 나이에 아직도' 정확히 하고 싶은 것을 못 찾은 것에 대해 너무 늦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통계를 낸 뒤, 무언가 실마리를 얻을 줄 알았던 저는 도리어 한계를 느꼈습니다. 상담가로서 '당신은 그렇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한 걸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쉽사리 상담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점점 더 궁금증이 생겼지요. 대체 우리 세대는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이 두려움은 사실일까. 도대체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것은 단순히 심리 정서의 문제가 아닌 또 다른 사회현상은 아닐까. 2000년대와 2010년대의 세대 규정 담론들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확하게 알진 못했던 우리를 부르는 이름. '00세대'의 담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는 통찰이 있었고, 경제에 대한 시선이, 교육과 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무언가 알듯 모를 듯 미묘하게 불편함이 느껴졌습니다. "왜 결론이 이렇게 나지?"라는 기분이었달까요.

강력한 사회현상을 일으켰던 88만 원 세대의 공저 우석훈 교수. 그는 2012년 3월 26일 이 책의 절판을 선언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 책을 통해 사회적 관심과 메시지가 전해졌음에도, 그 대상인 청년층의 행동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결정적이었지요.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상담하다 종종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나아지게 하고자 나름대로 기성세대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숱한 강연을 듣기도 했던 청년들이 마지막 대나무 숲으로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조언을 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줬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자신을 자책하면서 말이지요. 곰곰이 들어보면 그 조언들은 대체로 맞는 말입니다. 다 일리가 있는 방법들입니다. 애정도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맹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조언을 듣고 있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조언자 자신이 살아온 시대상을 반영한 조언일 때가 많습니다.

책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그 속에는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청년들이 부디 바뀌기를. 부디 변화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그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는 대체 왜 세상의 중심에서 '변화'를 외치지 못한 걸까요?

- 다음 편에 계속 -  

#인-잇 #인잇 #장재열 #러닝머신세대
인잇 사람과 생각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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