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자꾸만 할 일을 미루는 나도 혹시…천재? 〈미루기의 천재들〉

권애리 기자 ailee17@sbs.co.kr

작성 2019.03.17 07: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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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81 : 자꾸만 할 일을 미루는 나도 혹시…천재? <미루기의 천재들>

"오늘날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헬리콥터나 잠수함, 심지어 로봇의 도안을 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그 시절 레오나르도를 고용한 이들이 궁금해했던 건 단 하나였다. 과연 이 자가 약속한 날에 약속한 일을 마칠 것인가?"

기상시간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자마자 번쩍 일어나지 못해, 늘 계획보다 하루를 5~10분 늦게 시작하진 않으시나요. 내일까지 끝마쳐야 할 중요한 일을 앞두고 마음은 오로지 그 일 생각뿐인데도, 도대체 손은 왜 그러는지 자꾸만 휴대폰을 열어 평소엔 잘 들어가지도 않았던 '웃긴 얘기 모음' 사이트 같은 걸 하릴없이 돌아다니고 있나요. 올 초 새해 다짐으로, 2019년엔 꼭 중국어를 (기타를, 재즈댄스를, 그림을 ) 배워보리라! 다짐해 놓고, 3월이 되도록 학원 한 번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고요….

'이거 전부 내 얘기잖아' 하고 계신 여러분들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유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찰스 다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같은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분들입니다. 우리는 그냥, '미루기쟁이'들일 뿐이에요.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앤드루 산텔라가 쓴 <미루기의 천재들>은 한 마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출판사 어크로스의 소개)"를 다룬 책입니다.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어조로 역사 속 천재들부터 오늘날 우리에 이르기까지,

자꾸만 할 일을 미루는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미루기쟁이들의 진정한 정신승리를 위해, 오히려 그 뿌리부터 파보았다 할까요.

"세상을 바꾸고 종교적 믿음을 산산조각 낼 발견이었다. 하지만 이 발견이 세상에 알려진 건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뒤였다. 다윈이 지성사상 가장 위대한 진전 중 하나를 이뤄놓고 이상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 문제에서 손을 뗐다. 자신의 발상을 출간할 방법을 전혀 알아보지 않았다. 과학 학술지에 논문을 보내지도, 대중매체에 글을 싣지도, 책 집필에 착수하지도, 심지어 출판사를 찾아보지도 않았다. 어쨌든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다윈은 꼬박 몇 년을 따개비에 바쳤다. 그리고 따개비 광신도가 되었다. 누군가는 다윈이 위험할 정도로 따개비 강박에 빠지기 직전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다윈은 하루 종일 알코올에 담가둔 따개비 표본에 둘러싸여 주문 제작한 따개비용 현미경 위로 등을 굽힌 채 따개비 왕국의 방대한 종류와 미스터리를 이해하고자 애썼다. 따개비들을 "내 사랑 따개비"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한 친구는 다윈이 "온통 따개비 생각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윈이 따개비 연구에 시간을 얼마나 쏟았는지, 다윈의 자녀들은 원래 아빠들이라면 다 이러고 산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 아이는 어렸을 때 친구 집에 놀러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너희 아빠 따개비는 어디 있어?"

다윈은 따개비를 비롯한 이런저런 다른 일로 너무 바쁘게 지낸 탓에 1859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종의 기원>을 출판했다. 20년 전 노트에 처음 그려두었던 이론을 상세히 풀어놓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책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고 이름을 널리 알린 뒤, 다윈은 처음 생각을 떠올리고 그 생각을 책의 형태로 발표할 때까지 그렇게 오랫동안 꾸물거린 것이 스스로도 당혹스럽다고 고백했다. 어떤 이들은 그 기간을 긴 기다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책은 다윈을 비롯해 결국 뭔가를 해낸 '미루기쟁이'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할 일을 미루는 게 얼마나 문제가 많은 습관인가 지적하고 주장하는 이런저런 전문가들의 분석도 여럿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엔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른바 '뼈때리는' 구절들도 많이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불안으로부터의 회피, 지나친 완벽주의에서 오는 부담감, 어쩌면 자기통제 능력 결여, 또는 그냥 '귀차니즘'....네, '미루기' 뒤에는 이런 심리 또는 결점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균형있는 '미루기 생활'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 이런 비판이나 공격도 잘 소화해 두는 게 좋겠죠.) 또한 이 책은 자꾸만 뭔가를 미루는 삶에서 놓치게 되는 기회나 성과를 모르는 척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왠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위인들의 인간적인 면모, 미루는 습관을 이것저것 소개하면서 저자가 넌지시 주장, 또는 저자 본인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중요한 일을 미루는 것은 그 일에 대해 우리가 그만큼 커다랗게 가지고 있는 애정과 경외감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란, 그렇게 뭔가를 미루면서 사소하고 다양하게 시간을 보낼 다른 일을 찾아냄으로써, 또다른 새로운 길들, 예상 못했던 틈새들을 발견해 나가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더 거창하게 합리화하자면, 그러니까 사람이다…. 라고요.

"마감이 눈앞에 닥쳐 있을 때 내 아파트는 언제나 최고로 깨끗하고, 내 파일은 가장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고, 냉장고는 썩어가는 음식 없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나는 바로 그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용감무쌍하게 해내겠다고 결심한다.

다윈은 명석하고 성실하며 지칠 줄 몰랐기에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다. 하지만 다윈을 친근하고 인간적인 인물로 만들어주는 건 해야 할 일을 미룬 그의 행동이다. 인간 동기가 지닌 복잡한 마디마디를 되새기게 해주는 사람 아닌가. 우리는 저마다 해야 할 일, 반드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찾아낸다. 이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다윈과 동급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따개비가 있다."

"페라리를 만났을 때 나는 경영관리 언어로 명령하는 대중 자기 계발 산업의 등장에 회의를 갖는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다. 무릇 독립적으로 사고하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더 빠르고 훌륭하고 본보기가 될 만한 드론이 되라는 끊임없는 훈계에 저항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네, 그게 바로 우리가 반항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페라리는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이걸 하라고 하면 나는 정확히 정반대로 하겠어' 같은 거죠."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거였어요. " 내 말에 페라리는 살짝 놀란 것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내 말은, 본인이 직접 선택을 내려야 된다는 거예요. 일을 연기하거나 거절하거나 미루는 게 적극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요."

페라리의 생각은 달랐다.

"이봐요, 일을 미루면 실질적인 피해가 생긴다고요. 물론 경제적 피해가 생기죠. 하지만 개인적 피해도 엄청나요. 관계에서도, 자아 존중감에서도요. 인생은 짧아요. 당신, 세상에 변화를 일으켜 본 적 있습니까?"

내가 보편적 선에 기여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주장이 힘을 잃는 상황에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그런 적은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하지만 뒤늦게나마 대답이 떠오르긴 했다. 일을 미루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 때때로 우리가 하는 가장 훌륭한 일은 오로지 다른 일을 미루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이 책이 '(미루기에도) 천재'들이 즐겼던 생활습관으로 자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산책'입니다. 산책이라는, 일견 무의미하고 목적없는 느긋한 행위 안에는 늘 우리가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풍경들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조금씩 나타나죠. 그 산책의 처음과 끝에 아무 것도 달라져 있지 않을 수 있지만, 산들바람을 좀 맞으면서 늘 똑같은 것 같으면서도 나날이 다른 풍경들을 바라보며 걷고 나면 최소한 기분은 좋아져 있습니다. 산책은 그런 거니까요. 그리고 그 반복 속에 때때로, 새로운 것들이 이것저것 움터서, 처음 걷기 시작할 때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탄생해 있기도 합니다. 처음 의도한 것은 완성되지 않을지 몰라도, 다른 어떤 것들이 고개를 듭니다.

"'리히텐베르크 소사이어티'는 한편으로는 회원들의 창의적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미루기를 장려하기 위해 존재한다. 처음에는 언뜻 이 두 가지가 서로 어긋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모종의 논리가 있다. 예를 들어, 데일의 멋들어진 미로는 데일이 오페라를 써야 했던 시기에 오페라를 쓰는 대신 만든 것이다. 이후 낸시 윌러드의 동화 <윌리엄 블레이크의 여인숙 방문하기>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곡을 써야 했을 때 데일은 곡을 쓰는 대신 전부터 미뤄온 오페라를 썼다.

오페라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독일에서 열린 콩쿠르에 오페라를 제출했지만 수상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페라를 썼던 경험 덕분에 마침내 <윌리엄 블레이크의 여인숙 방문하기>를 위한 곡 쓰기에 돌입했을 때 오케스트라 작곡가로서 더욱 자신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매일 뭔가 미루기를 반복하는 저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마음 먹은 것을 제때제때 하지 못할까' 생각하면, 미뤄서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일만 생각해도 화가 나는데 스스로가 자꾸 초라해지고 우울해지는 기분까지 반복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미루기'에 철학과 의의까지 부여하면서 나 대신 합리화에 애써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뭔가 힘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저도 조금 뻔뻔하게, 그 합리화에 한 마디를 더 보태볼까 합니다.

'미루기쟁이들은 그냥 조금 더 낭만적인 사람들일 뿐이다.'라고요.

출발점부터 계획했던 종점까지 최단 시간에 가닿는 직선코스를 택하기보다, 삐뚤빼뚤 구부러진 길을 빙글빙글 돌아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 다다르곤 하는 미루기쟁이들... 우리들은 이런저런 풍경을 느긋하게 둘러보면서 적당한 걷기의 속도로 삶을 통과하는 로맨틱한 사람들인 겁니다...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는데도 자꾸만 일어나길 미루는 내가 계획했던 시간에 벌떡 일어나는 사람보다 더 훌륭한 사람은 분명히 아닐 겁니다. 그러나 기상을 미루며 미적거린 그 5분 사이에는 웬만하면 다른 것과 바꾸고 싶지 않은, 나만이 알고 있는 따스한 침대 시트의 감촉과 달콤한 비몽사몽이 있죠.

오늘은 뭘 또 미루고 싶으십니까. 너무 소중해서 바로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자꾸 미루면서 대신 착수할 만한 소일거리로, 훌륭한 정신승리를 도와줄 이 책 <미루기의 천재들>을 열어보시는 것을 조심스럽게 추천해 봅니다.

(* 출판사 '어크로스'의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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