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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00세 연탄, 영광의 '국민 연료'에서 '공해산업'으로

남북 관계 개선으로 북한 연탄 지원 확대에 한 가닥 희망

연탄불 아궁이 스틸컷
중·장년층에게는 희로애락을 품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젊은 층에겐 한겨울 소외계층에 대한 물품 기부의 소재로만 인식되는 연탄. 그 연탄이 국내 정착 100년을 맞았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국내에 들어와 한때는 전체 난방 연료의 80%를 차지하던 국민 연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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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이면 부엌 한편에 가득 쌓여있는 연탄을 바라만 봐도 부자가 된 듯 마음이 푸근해지던 느낌을 중장년층들은 기억한다. 새벽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나 가족들 춥지 않게 연탄을 갈아 넣으시던 어머니의 사랑도 연탄 속에 깃들어 있다. 아침이 되면 그 연탄불이 피워 내던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하루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했다. 명절 때 먹다 남은 굳은 가래떡도 연탄불 위에선 먹기 좋은 간식으로 구워져, 요즘처럼 따로 꿀을 찍지 않아도 구수하니 맛있었다.
교실 연탄난로, 도시락 스틸컷
좋은 추억 저편에선 연탄의 잔혹한 특성 때문에 흘린 눈물도 많다. 연탄가스에 중독돼 한 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앓았다. 김칫국이 연탄가스 중독에 특효약이라며 신문에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방안에 혹시 연탄가스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 가뜩이나 심한 외풍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문풍지에 구멍을 내기도 했다. 자취생들이면 아침에 매캐한 냄새와 함께 띵한 머리로 깨어나 서둘러 방문을 열고 환기시키던 경험도 한 번쯤 있을 법하다.

연탄이 국민 연료의 자리를 내놓게 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가 공해를 줄이려고 정책적으로 연탄사용을 억제해 기름보일러가 늘어나고,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 도시가스가 주 연료로 쓰이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때문에 90년대 들어 국내 유수의 연탄공장들이 속속 사업 정리에 나섰다. 1960년대 전국적으로 4백여 곳에 달하던 연탄공장은 그 이후 급속히 줄어들어 지금은 45곳 정도만 남아있다.

국민 연료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연탄은 지금은 14만 소외계층의 아궁이나 연탄구이 식당, 화훼 단지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연탄의 몰락을 더 재촉하는 일이 생겼다.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에 관한 국제 협약 때문에 연탄업체에 주던 정부 보조금이 폐지되면서, 2015년 이전 7년간 동결됐던 연탄 가격이 2016년부터 해마다 20% 가까이 오르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2015년 한 장에 373원이던 연탄값은 지난해 639원까지 뛰었으며 배달료를 합하면 800~900원에 이른다.

연탄 주 소비층이 형편이 어려운 14만 가구의 소외계층임을 감안할 때 이는 적은 부담이 아니다. 겨울나기에 한 가구당 천 장이 넘는 연탄이 들어가는데 가구당 수 십만 원이 넘는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정부가 연탄쿠폰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겨울나기에 필요한 연탄 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값이 오르면서 당연히 수요가 줄었다. 서울에 두 군데 있는 연탄공장 가운데 하나인 금천구의 고명산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20만 장까지 찍어냈지만, 올해는 겨우 10만 장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한 곳도 마찬가지다. 한때 서울의 하루 생산량이 천만 장을 넘었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고철종 취재파일
이렇듯 쇠락에 쇠락을 거듭하고 있는 연탄, 그 연탄 위에서 50년 인생을 바친 연탄공장 임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90년대 중반 문을 닫으려던 공장을 종업원들이 인수해 지금까지 운영 중인 고명산업 박병구 사장은 "예전 한창때는 겨울이 다가오면 각계 고위층들로부터 누구 집에 연탄 몇 장을 넣어달라는 민원이 급증했고,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공장을 돌려도 수요에 다 대지 못해 판매점에 배급제로 연탄을 할당할 때도 있었다."라고 옛날을 추억했다.

한주우 부사장은 연탄의 몰락이 가속되던 90년대 후반에 닥친 IMF는 오히려 연탄산업엔 '반짝 회복기'였다며, "모든 국민은 어려웠지만 고유가 때문에 기름을 못 쓰게 된 사람들이 연탄을 다시 찾으면서 잠시 동안이지만 중흥기를 맞았었다."라고 회상했다. 한 부사장은 또 "연탄산업이 어차피 사양화된 경로를 벗어나지는 못하겠지만, 남북 관계가 더 개선돼 북한에 대한 연탄지원이 확대되는 것에 작은 기대를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철종 취재파일
영광의 국민 연료에서 공해산업 사양산업으로 추락했지만, 아직도 연탄은 14만 저소득가구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훼 단지, 추억을 요리하는 연탄구이 집의 따뜻한 친구이다. 안도현 시인의 시를 통해 온기가 식어가는 연탄이 인간사에 보내는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안도현 시인 '너에게 묻는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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