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2019 우아하게, 호쾌하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작성 2019.01.13 07:5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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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북적 172] 2019 우아하게, 호쾌하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새해 첫 방송이 제 몫인 줄 알고 골랐던 책, 2019년 북적북적을 어떤 책으로 열어야 하나 궁리하다 골라든 '축구하는 여자들' 이야기입니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의 여성 버전은 아닙니다. 더 재미있습니다.

제목에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당장 떠오르는 분도 있겠죠.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그 책 역시 야구를 매개로 문학과 인생을 논하던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제목을 빌려온, 이 책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또한 축구를 말하지만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었다.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라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고 몸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가 달라졌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 축구 팬이 있다. 축구 팬임을 밝히는 여자와 숨기는 여자. 축구 팬인 게 뭐라고 굳이 숨기려 드나 싶겠지만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축구 팬이라는 정체성이 노출되는 순간부터 좋지 못한 상황에 휘말려 드는 경우가 제법 있기 때문이다. 대개 둘 중 하나다. 귀찮아지거나 불쾌해지거나."

"그녀는 다시 몸을 틀어 공을 몰고 남자 2호 앞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페이크를 써서 또 한 번 그를 휙 제쳤다. 아까보다 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와, 세상에. 설마 했는데 굳이 다시 가서 그걸 또 하다니,.. 도끼로이마까 깐데또까 같은 여자... 다른 수비수가 재빨리 주장에게 따라붙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그마저도 가볍게 따돌리고 골대 앞까지 간 후 직접 슈팅을 날렸다. 완벽한 슛이었다. 그것도 로빙슛(lobbing shoot), 완벽한 로빙슛이었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경기가 시작되는 순가, 축구가 아닌 건 없다는 것을. 시늉이든 시뮬레이션 액션이든, 시늉레이션 액션이든 뭐든, 피치 위에 올라서면 그 모든 게 다 진짜 축구였다.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 그날의 정강이 상태, 나의 사소한 기분 같은 것들도 고스란히 축구의 한 부분이 되었다."

"스토피지 타임. 멈춰 있는 시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춰 있지만 피치 위로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시간이. 앞으로 나의 축구도 그럴 것이다...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추가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하지만 축구와 함께 어디서든 즐거울 것이다. 무엇보다 김혼비는 추가 시간에 강하니까."


저는 땀 흘리는 것도, 운동하는 것도 썩 즐기지 않습니다만, 돌아보면 어려서는 곧잘 방과 후에 축구나 야구, 피구 같은 걸 하면서 어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 몸을 쓰는 일과 거리를 두고 있을까요. 몸을 움직여 잘 안 쓰던 근육을 써가면서 뭔가를 하면 머릿속으로, 혹은 말로만 떠들 때와는 꽤 다른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는 건 경험한 적도 있고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요. 이 책에서 김혼비 작가가 축구에 관심을 갖고 실제 축구를 하면서 하나하나 기술을 익혀가고 시합에 출전하면서 경험하는 많은 것들을, 다는 모르더라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건 저도 인생의 경험이 조금 쌓여 있어서 같습니다.

책에서 전하는 자못 놀라운 사실들, 선수가 아닌 일반 여성들이 만든 축구팀이 제법 많다는 것, 전국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정기적으로,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다는 것, 그들의 공식 대회도 있다는 것, 축구하는 여성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40, 50대라는 것 등. 여성과 축구에 대한 편견들이 여전히 가득하고 이에 맞서야 할 때도 잦을 겁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하자, 자기 인생을 살자는 이야기로 저는 이 책을 읽었습니다.

'우아'와 '호쾌', 서로 대비되는 느낌이 있는 두 낱말과, '여자'와 '축구', 아주 잘 어울리진 않는 듯한 단어 두 개가 함께 어우러지니 입에 착 붙습니다. 빌려온 일본 소설 이름보다 낫습니다.

올해의 첫 책으로 읽으면서 제가 당장 어디 조기축구회에 기웃거린다든지, 사회인 야구 같은 데 참가하겠다고 다짐한 건 아닙니다. 다만, 올해는 내가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좀 더 몸을 쓰는 데에 시간을 내자, 더 즐겁게 살기 위해... 그런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해에도 북적북적하세요.

*출판사 민음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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