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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협동조합 유치원으로 '반값 원비' 실현될까

[취재파일] 협동조합 유치원으로 '반값 원비' 실현될까
지난 9일 저녁 7시 경기도 화성시 동탄2동 주민센터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유치원'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사립유치원 비리에 대항해 학부모들이 직접 유치원을 운영해 보겠다고 두 팔 걷어붙였던 장성훈 동탄비리유치원비대위 대표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두 달여간 발품 팔며 협동조합 유치원 설립을 추진했던 경과를 관심 있는 학부모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어림잡아 80명 남짓한 학부모들이 모였습니다. 아이들까지 데려오다 보니 설명회가 열렸던 주민센터 회의실은 금세 가득 찼습니다.

참석한 학부모들은 다양했습니다. 동탄 지역 사립유치원과 다투며 마음고생을 했던 분도 있고, 아직 자녀가 유치원에 갈 나이는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방문했던 분도 있었습니다.
이날 설명회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들이 찾아와서 비대위 관계자들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비대위는 설명회를 열기까지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학부모가 설립 주체가 되는 '협동조합형 유치원'의 실제 사례가 아직 전무하고, 법과 제도도 미비한 상황에서 추진하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았던 거죠.

특히 유치원 공간을 구하는 문제가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10월 협동조합이 공공기관 건물을 임대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된 이후 지자체 도움을 얻어 동탄 목동초교 내 이음터 건물에 둥지를 트는 쪽으로 일단락된 상황입니다. 소방 관련 법이 애를 태운 적도 있습니다. 유치원 시설 기준을 만족하려면 굉장히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기 위한 공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비대위는 이러한 숱한 난관과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명회를 성사시켰습니다. 이날 열린 설명회는 우리 사회에 몇 가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먼저 협동조합 유치원이란 새로운 모델의 현실 가능성에 첫 디딤돌을 놓았습니다.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에 실망했어도 마땅히 대안이 없었던 상황에서 현실화를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고 공동 육아를 꿈꾸는 학부모들에게 용기를 준 겁니다.

또 하나는 '반값 원비'를 통해 교육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비대위는 협동조합 유치원이 설립되면 학부모가 매달 내는 원비는 15~20만 원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통학 차량 등 선택 비용까지 포함한 겁니다.

일반 사립유치원비가 아무리 못해도 기본 25만 원에, 통학 차량과 각종 체험활동 등 선택 경비가 이것저것 붙으면 30~60만 원까지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반값에 불과한 겁니다. 만약 이러한 반값 원비가 정말 현실이 된다면 앞으로 기존 사립유치원들을 대상으로 '교육비 거품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현재 협동조합 유치원이 입주하기로 계획된 학교의 전경.
■ "반값 원비, 이익을 남길 필요가 없기 때문"

먼저 협동조합 유치원 설립 계획과 관련해 장 대표와 인터뷰했던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 예상하는 원비는 어떻게 되나요?

"원비가 15만 원에서 많아 봐야 20만 원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기존 사립유치원 원비가 30~60만 원 선인 것과 비교하면 반값 수준에 불과한 거죠. 물론 사립유치원보다 '획기적으로 싸다'라곤 못 느끼실 테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싸구나'라고 느낄 정도는 될 겁니다."

-- 일부러 싸게 책정하려고 하신 건가요?

"예산안을 짜면서 정말 많이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했어요. 물론 현재 학부모들이 사립유치원에 내는 돈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다만, 저희가 협동조합을 설립하면서 메리트, 이득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던 게 바로 원비였죠. 일차적으로 낮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예산을 짰던 거고요."

-- 왜 원비가 싸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희는 이익을 안 남기니까요. 그게 제일 큽니다. 저희는 이익을 남기지 않는 비영리단체고, 당연히 학부모들이 하니까 온전히 아이들한테 쓰일 돈만 생각을 하니까, 일부러 비쌀 필요가 전혀 없죠. 게다가 학부모들이 직접 유치원 회계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다 보니 부풀려질 우려도 없는 거고요."
협동조합 유치원 대표를 맡고 있는 장성훈 씨는 이날 설명회 날에도 직장 일을 마치고 달려온 평범한 아이 아빠였습니다.
-- 일각에선 사립유치원의 경우 설립자가 떠안은 매몰 비용 같은 게 원비에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만?

"그런 부분은 생각 안 해봤습니다."

-- 협동조합 유치원을 설립하면 교사나 원장은 누가 하나요?

"원장과 교사는 저희가 별도로 채용할 겁니다. 학부모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칠 순 없습니다. 유치원 법에 따르면 유치원 교원은 정규 교사 자격증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죠."

-- 개원은 언제쯤 될까요?

"현재 구상한 계획대로라면 준공과 착공 등을 거친 뒤 내년 3월 개원이 목표입니다."

■ 사립유치원비는 '거품'?…"매몰 비용 등 고려해야"

필자는 비대위가 원비를 사립유치원보다 쌀 것으로 예상하는 배경에 다른 요인은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먼저 교육 당국에 협동조합 유치원이 설립될 경우 사립유치원보다 지원금을 더 많이 받는지 여부를 문의했습니다.

그러자 경기도교육청은 협동조합 유치원은 국·공립이 아닌, 사립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에 준하는 지원을 공평하게 받을 거라고 답변했습니다. 즉, 누리과정 지원비와 교사처우개선비를 포함한 교육청 지원금 등 지원 항목이 사립유치원들과 동일하다는 겁니다.

다만, 유치원 건물 임대 계약과 관련해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는 건물과 토지를 온전히 소유해야 하나, 협동조합 유치원은 공공기관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협동조합 측은 공공기관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보증금 내지 월 임대료를 내야 합니다. 이때 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에 속하다 보니 공공건물 임대법에 따라 최대 50%까지 임대료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반면, 사립유치원의 경우 설립자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건물을 소유하는 데 따르는 이자 비용이라든지 재산세, 각종 개·보수 비용, 이번에 비대위 측이 애를 먹었던 각종 소방·안전 시설 공사 등을 고려하면 원비에 매몰 비용이 일정 부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들을 고려하면 사립유치원비에 100% 거품이 있다고 볼 순 없다는 게 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보이지 않는 비용'에 대한 부담은 협동조합을 꾸린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협동조합 정관에 따르면 건물 인테리어 비용과 교재, 교구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100명의 학부모가 500만 원씩 출자해야 합니다.
■ 진짜 장점은 '학부모들이 믿을 수 있다는 것'

장 대표는 협동조합 유치원의 근본적인 장점은 저렴한 원비보다도 '믿을 수 있는 유치원'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합니다. 애초 취지가 교육비 절감이 아니라,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에 대한 대안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라는 거죠.

장 대표는 "지난해 10월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가 터졌고, 그 당시 어떻게 하면 믿고 맡길 수 있는 교육기관을 만들 수 있을까, 어디가 과연 믿고 맡길 수 있는 교육기관일까 생각해서 시작했던 게 사회적 협동조합 유치원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협동조합 유치원이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협동조합 유치원 모델을 통해 학부모가 유치원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협동조합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들의 주인의식, 이른바 '당사자성'이 중요하며 이는 유치원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박 연구위원은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처음부터 있어야 가능하다"라며 "이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며 특히 자연 상태에서는 부모들에게서 주인 의식이 생기는 게 굉장히 어려운데, 동탄 어머니 모임은 당사자성이 두드러지는 특별한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돈을 내고,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식의 주인 의식이 강해지면 필연적으로 유치원의 민주적인 의사 결정과 분위기가 강화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협동조합 유치원은 '아이를 함께 키운다'라는 공동 육아, 공공성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이라는 의식이 강한 사립유치원의 맥락에서 사회적 협동조합 유치원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협동조합형 대안을 권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간을 구하는 문제와 출자 부담 등은 다수의 모델로 확산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문제를 정부나 지자체가 어디까지 정책적으로 지원할지, 그에 따른 특혜 논란은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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