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대물림' 만든 체육계 카르텔…성폭력 '수면 아래'

이경원 기자 leekw@sbs.co.kr

작성 2019.01.08 20:39 수정 2019.01.08 22: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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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심석희 선수는 지난달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힘들었던 기억을 털어놨고 더 이상 피해자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 또 한 번 용기를 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참기 힘든 고통을 겪으면서도 도움을 청하기조차 어려운 게 스포츠 강국이라는 대한민국 체육계의 현실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이경원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폭행으로 영구제명 됐던 조재범 전 코치의 중국 대표팀 합류설이 전해진 것은 지난 5월이었습니다.

심석희 선수는 당시의 절망감을 변호인에게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국제 대회에 나가면 계속 마주칠 텐데 정말 불안했다, 이건 구조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조 전 코치가 구속되면서 중국행은 취소됐지만, 심 선수의 고민은 체육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최근 5년간 징계받은 체육계 인물 가운데 징계 직후 체육계로 돌아와 재취업한 사례는 38%.

성폭력으로 제명됐다가 다시 코치로, 심지어 임원으로 승진해 재취업한 사례도 있습니다.

조 전 코치 외에 심 선수를 가르쳤던 다른 코치도 성 비위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빙상계에 복귀했습니다.

[정용철/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 : 상위 연맹에다 이것(피해 사실)을 얘기할 텐데 그들이 서로 다 아는 사이잖아요. 가해자 쪽에 언질을 주고 준비를 좀 하고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침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도자가 선수의 진로에 전권을 휘두르는 현실, 즉 갑과 을이 명확한 권력 구조에서 피해자들이 입을 연다는 건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임상혁/심석희 변호인 : (심석희 선수가) 앞으로 이런 사건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책임감도 느끼고 있고, 엄중한 처벌을 통해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심 선수의 폭로는 침묵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는 게 체육계,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과제임을 보여줬습니다.

(영상편집 : 박정삼, VJ : 정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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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 문제 취재한 이슈취재팀의 이경원 기자 나와 있습니다.

Q. 체육계 성폭력, 계속되는 이유는?

[이경원/이슈취재팀 기자 : 성폭력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가 어떻게 처리됐는지를 참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불란 만들지 말아라, 너만 손해야, 너 이러다가 이 바닥 영영 떠날 수 있어" 이렇습니다. 체육계는 이런 경향이 유독 심하다는 거죠.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람이니까요. 감독과 코치는 선수 진로를 나아가서 인생을 결정하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한테 찍히면 정말 끝이라는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요. 주변은 침묵을 강요하고, 그렇게 피해자는 침묵하고 또 그렇게 처벌은 솜방망이고 또, 또 그렇게 피해가 생기는 악순환입니다.]

Q. 2018년 체육계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는?

[이경원 기자 : 대한체육회가 2년마다 하는 성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오늘 발표했는데 핵심은 이겁니다. 좀 줄었다. 그래프를 보시면 2010년에는 26.6%였는데 해를 지나면서 줄다가 2018년도에는 2.7%까지 내려갔습니다. 정말 많이 줄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조사했는지 취재해봤습니다. 주로 선수들을 찾아가서 성폭력 피해 사실이 있느냐, 이런 식으로 직접 물어보면서 일대일 대면 조사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조사원이 선수가 누군지 알고 답하는 겁니다. 대한체육회는 이번에 돈 많이 들여서 조사를 한 만큼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하고 있는데 글쎄요, 처음 보는 조사원한테 피해 사실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특히 국가대표라면 얼굴이 알려졌을 텐데요. 실태조사에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앵커>

저희는 이번 일을 전해드리면서 운동선수들이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무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결코 성적 향상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희는 오늘 전해드린 지도자의 성폭력을 비롯해 끊이지 않는 우리 체육계의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해 보도를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제보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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