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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유튜버에 자리 내준 과학자…하지만 여전히 '과학'을 꿈꾸는 아이들

'성층권 탐사를 위한 우주풍선' 띄운 화산중 학생들 취재 후기

얼마 전 교육부가 이런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초등학생 2만 7천265명에게 장래희망을 물었는데 '유튜버(유튜브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5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입니다. 초등생 장래희망 직업에 유튜버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유튜버가 치고 들어오면서 지난해(2017년) 10위에 턱걸이하고 있던 '과학자'는 12위로 밀려났습니다. 수백만 조회 수를 자랑하는 키즈 유튜버들이 적지 않은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조금 씁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입니다.
 

● 하늘과 우주가 궁금했던 아이들…풍선을 쏘아 올리다

이런 시대 흐름 속에, 최근 참 특이한(?) 중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전북 완주에 위치한 자율중학교 화산중학교 학생들입니다. 이들은 지난 10월 성층권 탐사를 위한 우주 풍선을 하늘로 쏘아 올렸습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하늘, 그리고 우주와 좀 더 가깝게 맞닿아있는 곳, 성층권이 어떤 곳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이 우주 풍선은 18km 상공까지 비행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상으로부터 10~12km까지는 비행기가 다니는 대류권, 12km 이상부터 50km까지는 성층권입니다. 이 우주 풍선에 매달려있던 스티로폼 상자에는 성층권의 모습을 생생하게 촬영할 고프로 카메라와 고도에 따른 기압과 온도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소형 장치(코딩 프로그램 '아두이노', 온도계 등)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상자는 낙하산과 풍선, 이중으로 연결돼 있었는데, 풍선이 성층권에서 터졌지만 낙하산 덕분에 낙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었고, 결국 처음 출발한 학교 운동장에서 130km 떨어진 경남의 한 마을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무사히 착륙은 했지만 관건은 상자에 연결한 고프로 카메라가 성층권의 모습을 잘 촬영했는지, 그 영상이 잘 남아 있을지였다고 합니다. 

"처음에 풍선을 날릴 때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을 할지, 또 상자를 회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됐어요. 상자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옆에 버스정류장에 앉아서 친구들과 함께 영상을 확인했어요. 우리가 원하는 영상이 제대로 촬영된 걸 봤던 순간이 가장 기뻤습니다." (박현규, 화산중2) 

성층권 탐사를 위해 풍선을 띄우는 학생들이 물론 이 친구들 뿐만은 아닙니다. 블로그나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면 이런 시도를 해본 학생들의 후기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날씨도 도와줘야 하고, 또 풍선이 너무 빨리 분리되지 않아야 하고, 탐사 장비가 망가지지 않아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 별이 잘 보이는 산자락에 위치한 학교, 그곳에서 '과학을 즐기는' 아이들

우주 풍선을 띄운 아이들의 후기가 듣고 싶어서 전북 완주 화산중을 직접 찾아갔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 학교 천문학 동아리와 코딩 동아리 소속 학생들입니다. 이 학교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가 끝난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동아리 활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화산중은 기숙사 학교입니다) 하루 종일 수업받고 좀 놀고 싶은 시간일 텐데, 왜 그 시간마저 '과학'을 택했을까요? 궁금했습니다.

"이 동네가 불빛이 적어요. 산 동네라서요. 그래서 별이 좀 더 잘 보여요. 별을 관찰하기 딱 좋은 환경이더라고요. 그래서 천문학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윤홍준, 화산중2)

"저는 과학이 우리 생활에 가장 밀접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굉장히 신비하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 도움될 수 있는 부분이 참 많거든요.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고, 제가 연구하고 싶은 걸 연구하고 실험해보는 게 재밌기도 해요" (한진희, 화산중2)

요즘 이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은 '우주'입니다. 성층권 탐사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것도 우주를 향한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우주는 왜 또 관심인지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우주는 뒤질 게 많은 집 같아요" "우주는 저의 상상력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운동장이에요" "우주는 백지여서 제가 배워가고 알아가는 지식들을 하나씩 채워 넣을 수 있는 것 같아요"

● "입시 때문이라고요? 제 꿈은 그렇게 작지 않아요"

속세에 찌든 어른이라서인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해 생활기록부에 채워 넣을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입시제도에 맞춰가기 위해, 생활기록부나 자기소개서에 넣기 위해 하는 것치고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프로젝트였습니다. 1년이란 시간이 걸렸어요. 이 프로젝트를 성공할 때까지. 그 시간을 우리가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쓴 걸까요? 절대 아니에요. 우린 우리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만약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입시를 위해 다 하는 활동이었다면 모두 다 성공을 하는 그저 그런 실험이었겠죠." (박수홍, 화산중2)

학생들은 성층권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VR로 제작해, 지난 11월 동아리 축제 때 체험 이벤트를 진행했고 이 행사를 통해 10여만 원의 수익을 벌었습니다. 이 수익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썼다고 합니다. 지난해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본 이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했고, 큰돈은 아니지만 동아리 축제 수익금을 나눔의 집에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신의 꿈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보며, 학생들의 활동을 입시 대비를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했던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자신들의 프로젝트 성과를 이야기하는 학생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행복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한 4~5시간 동안 느낀 건, 사람은 본인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과학이든 유튜브든 무엇이든 말이죠. 더 많은 청소년들이 그 행복을 찾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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