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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쌈짓돈 3종 세트'의 모든 것

알기 쉬운 '깜깜이 예산' 보고서

[취재파일] '쌈짓돈 3종 세트'의 모든 것
예산 너무 어려워요. 저도 예전에 국회를 3년 가까이 출입했지만, 예산을 제대로 취재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여당이랑 야당이랑 예산 가지고 피 터지게 싸우는 건 열심히 취재했는데, 정작 예산이 어떻게 편성되는지 구체적으로 잘 몰랐거든요. 여당 야당이 좀 싸워야 말이죠. 그거 취재하다 시간 다 가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번에 인사 발령이 나서 이슈취재팀에 오게 됐어요. 예산을 알고 싶어서 최근 통과된 '2019년도 예산안'을 다운 받았어요. 국회 홈페이지에 있어요.
국회 시한 넘긴 예산안 처리
숨 고르며 예산안을 비교적 꼼꼼히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특수활동비 예산이 궁금해졌어요. 특정업무경비랑 업무추진비도 알아보고 싶었어요. 예전부터 말이 많았었죠. 사용 내역 알 수 없는 깜깜이 예산들이라고요. 이 세 가지 예산을 일컬어 '쌈짓돈 3종 세트'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밥 먹고 술 먹고 쌈짓돈처럼 쓰인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래요.

예산안에서 이 '쌈짓돈 3종 세트'가 얼마나 늘고 줄었는지 찾아봤어요. 그런데 봐도 모르겠는 거예요. 예산안에 특수활동비라고 써 있는 건 감사원이랑 법무부 소속 예산밖에 없었어요. 특정업무경비랑 업무추진비 이름으로 돼 있는 예산도 별로 없었어요. 좀 이상했어요. 그래서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연락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예산안에 있는 건 그냥 '사업 이름'에 불과하다고 말하더라고요.

같은 예산이라도 이름이 다 다르게 돼 있다는 거예요. 가령, 국무조정실은 특수활동비 이름을 '기본 경비'라고 부르더라고요. 특수활동비 증감 내역을 알려면 '세목'을 알아야 한다고 하네요. 특수활동비 세목은 '230목', 특정업무경비는 '250-03목', 업무추진비는 '240목' 이래요. 사업 이름이 아니라 세목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어요. 앞으로 예산 짤 때는 특수활동비나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는 이름을 통일해서 적었으면 좋겠어요. 예산이 이렇게 복잡해요.

세목대로 편성된 예산안을 달라고 해봤어요. 그랬더니 이걸 따로 정리하는 건 시간이 꽤 걸린대요. 예산을 잘 모르니 믿을 수밖에요. 결국,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는 이 자료를 받을 수 없어서 한 의원실에 자료를 부탁했어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자료를 구하게 됐어요.

이제부터 나와 있는 자료의 출처는 기획재정부예요. 표가 워낙 많아서 출처는 생략할게요. 분석한 결과마다 하나하나 제목을 달아봤어요.

● 특활비는 308억 원 줄었어요!

먼저 '쌈짓돈 3종 세트' 가운데 특수활동비 내역부터 보여드릴게요. 단위는 보시기 좋으라고 '억 원'으로 통일했어요. 반올림을 좀 많이 해서 합계가 딱 떨어지지는 않을 거예요. 미세한 차이가 있더라도 양해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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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르니 개념부터 정리하고 갈게요. 특수활동비는 정보, 사건 수사 같은 국정 활동을 하는 데 소요되는 경비를 뜻해요. '특활비'로 불려요. 저도 특활비로 쓸게요. 증빙자료가 필요 없고, 사용내역이 공개되지도 않아서 '깜깜이 예산'의 대명사예요. 과거 국정원이 특활비를 떼어다가 청와대에 상납했다고 해서 논란이 있었잖아요. 나랏돈 이렇게 썼는데 지금껏 아무도 몰랐다고 해서 시끄러웠죠. 아, 참고로 국정원 예산은 원래 전체가 특활비였는데, 최근 '안보비'로 이름을 바꿨어요. 그래서 여기 표에는 없어요. 예전에 '특활비 예산 1조 원'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국정원 예산이 특활비였기 때문이었어요. 국정원 안보비는 올해 5609억 원이래요. 안보비로 왜 바꿨나 싶기도 해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특활비 많이 줄었어요. 2018년도 예산은 3168억 원이었는데, 내년은 2860억 원으로 308억 원이 깎였어요. 국방부 114억 원, 경찰청 99억 원, 국회 53억 원 순으로 삭감됐어요. 과기부랑 통일부만 조금 늘어났어요. 대법원이랑 공정위, 권익위, 민주평통위, 방사청, 이렇게 5개 기관은 특활비 예산이 아예 폐지돼 버렸어요. 이제 특활비를 쓸 수 없게 된 거예요. 이것만 보면 뭔가 달라지는 것 같아요.

● 특경비와 업추비는 432억 원 늘었어요!

이번에는 '쌈짓돈 3종 세트' 중에 특정업무경비와 업무추진비 내용을 살펴볼게요. 역시 단위는 '억 원'으로 통일해서, 합계에는 조금씩 오차가 있어요. 먼저 특정업무경비부터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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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개념부터 정리할게요. 특정업무경비는 '특경비'로 불려요. 수사나 감사, 예산 기관 직원들한테 주는 돈이에요. 현금으로 줄 수도 있어요. 영수증 처리가 원칙이지만 일정 금액 내에서는 영수증 처리를 안 해도 돼요. 그래서 제2의 특활비로 불리기도 해요. 5년 전에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가 특경비를 사적으로 썼다는 의혹이 나와서 도중에 낙마하기도 했었어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요.

이번에는 업무추진비 내역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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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추진비는 정책 추진과 같이 공무를 처리하는 데 사용하는 돈이에요. 업추비로 불려요. 영수증을 처리해야 해요. '클린카드'라는 법인카드로만 결제할 수 있어요. 휴일이나 심야 시간에는 쓸 수 없고, 유흥업소나 사우나 같이 유흥, 레저, 사행업종에는 결제 자체가 안 돼요. 특활비나 특경비에 비해 막 쓰는 돈은 아니에요. 하지만, 50만 원 안에서만 쓰면 누구랑 밥 먹고 술 먹었는지 제출하지 않아도 돼요.

뉴스에서도 전해드렸는데, 저희 이슈취재팀이 정부기관 업추비 공개 내역을 모두 조사해 봤거든요. '총 몇 건', '총 얼마' 이런 식으로 뭉뚱그려 공개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업무추진비로 써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좀 답답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특활비와 특경비, 업추비는 쓴 내역을 어떻게 '증명'하는가의 차이지 예산의 성격 자체는 별로 다를 게 없긴 하네요. 술 먹고 밥 먹은 돈 영수증 안 내도 되면 특활비, 낼 수도 있고 안 낼 수도 있으면 특경비, 50만 원 넘지 않게 써서 누구랑 먹었는지 제출 안 해도 되면 업추비네요. 이래서 쌈짓돈이라고 불리나 봐요.

표를 보시면 알겠지만, 특경비는 지난해 7천840억 원이었는데 8천195억 원으로 355억 원 늘었어요. 업추비는 77억 원 늘어난 1천957억 원이었고요. 얼마나 늘어났는지 둘을 합쳐보니 432억 원이에요. 아까 특활비가 308억 원 늘었다고 했잖아요. 특활비 줄어든 만큼 특경비, 업추비가 늘어나도 꼼수라고 비판이 나올 수 있는데, 훨씬 더 늘린 거나 마찬가지네요.

● 특활비 줄인 곳이 심했어요!

아, 그런데 이렇게 기계적으로 비교해선 안 될 것 같아요. 지난해를 기준으로 보면, 특활비를 받았던 기관은 19곳, 특경비와 업추비는 54곳이었거든요. 19곳과 54곳을 단순 비교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기준을 달리해 봤어요. 특활비를 받았던 기관 19곳만 따져보기로 했어요. 이들 기관의 특경비와 업추비만 따로 떼어서 그 증감폭을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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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19개 기관의 특경비와 업추비의 합계는 전년 대비 총 375억 원이 늘었어요. 아까 지난해 대비 총 늘어난 특경비와 업추비가 432억 원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들 19개 기관이 차지하는 액수가 375억 원인 거예요. 역시 특경비와 업추비를 크게 늘린 기관은 특활비 받았던 곳이었네요.

물론 19개 기관이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국방부는 특활비 114억 원을 깎고 특경비와 업추비는 8억 원만 늘렸어요. 감사원, 국무조정실, 권익위, 방사청도 조금씩 희생했네요. 그래 봤자 1억 원 안팎이지만요.

결국, 정부 전체로 보면 특활비를 줄이면서, 뒤로는 특경비와 업추비를 더 늘려버린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깜깜이 돈' 줄이는 대신 '깜깜이 돈' 늘린 거네요. 눈 가리고 아웅 같아요.

● '쌈짓돈 3종 세트' 예산은 더 늘어났어요!

이제 '쌈짓돈 3종 세트'의 총합을 따져볼게요. 2018년도 예산은 1조 2천888억 원이었는데 내년도 예산은 1조 3천12억 원으로 증액됐어요. 그런데 2017년도 예산은 1조 3천438억 원이었어요. 표 보시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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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예산을 만들 때도 깜깜이 예산들 두고 말이 좀 있었어요. 그게 지난해였어요. 그래서 특활비를 839억 원, 업추비를 211억 원 줄이고, 특경비를 500억 원 늘렸어요. 2017년도 예산과 비교하면 '쌈짓돈 3종 세트'의 총예산은 550억 원 줄어든 거였어요. 그런데 올해 다시 은근슬쩍 늘려버린 거나 마찬가지예요. 올해 초부터 워낙 특활비에 관심이 집중되니까, 정부는 내년 예산에서 이걸 300억 원 넘게 줄였다고 했어요. 하지만 '쌈짓돈 3종 세트' 총액은 되레 늘어나 버렸네요. 깜깜이 예산 조금씩 줄여가겠다는 기조가 무색해 보여요. 국민들이 더 냉철하게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것 같아요. 어렵다고 무관심하면 안 될 것 같아요.

● 국회는 34억 원 줄었어요!

국회만 따로 떼어내서 볼게요. 월급을 자신들이 결정하는 노동자는 우리나라에 국회밖에 없을 거예요. '쌈짓돈 3종 세트'도 쉽게 말해 일종의 수당이죠. 의원 스스로가 결정하는 수당인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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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특활비는 2018년도에는 63억 원이었는데, 내년도 예산안은 10억 원으로 53억 원 넘게 줄었어요. 특정업무경비도 6억 원 깎았네요. 대신 업무추진비는 25억 원 늘렸어요. '쌈짓돈 3종 세트'만 따져보면 2018년도 예산은 353억 원이었고, 내년도는 319억 원으로 총 34억 원이 줄었어요. 그래도 부족해 보이지만, 최근 여론이 사나워지니까 이렇게 안 할 수 없었던 모양이에요. 여론의 힘인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에 국회 특정업무경비 영수증이 공개됐잖아요.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어렵게 받아낸 거래요. 2016년 6월부터 1년 치, 28억 원 정도였는데 영수증을 제출한 게 2천만 원에 불과했어요. 딱 1%만 영수증을 냈대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여요. 국회 사무처는 영수증을 내는 게 원칙이라도 예외 조항이 있어서 괜찮다고 말했대요. 이런, 99%가 예외에 해당되는 셈이네요. 누가 믿겠어요. 감시의 끈을 놔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다만, 너무 국회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정부 전체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국회가 밉상 찍힌 건 국회의 책임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림을 크게 봐야 할 것 같아요. 내년 '쌈짓돈 3종 세트' 전체 예산 1조 3천12억 원 가운데, 국회 몫은 319억 원, 2.5%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국회 예산안
● 전체 예산에서 0.28%예요!

내년도 전체 예산 규모는 469조 5천751억 7천700만 원이에요. 이 가운데 '쌈짓돈 3종 세트'는 1조 3천12억 원으로 비율로 따지면 0.28%예요. 소수점 이하라 작게 보이지만, 이게 주로 밥값, 술값이니까 만만히 보시면 안 될 것 같아요.

● 공무원 1명이 210만 원씩 썼어요!

통계청에서 관리하는 e-나라지표 홈페이지를 보니까 우리나라 국가 공무원 수는 2017년도를 기준으로 63만 9천 명이에요. 일반직이 16만 1천 명, 경찰이 12만 6천 명, 교원이 35만 2천 명 정도래요. 2018년도는 국가 공무원 집계는 연말을 기준으로 잡아서 내년에 공개된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2017년도를 기준으로 잡아야 할 것 같아요.

2017년 '쌈짓돈 3종 세트' 예산은 1조 3438억 원이었어요. 이걸 국가 공무원 수인 63만 9천 명으로 나누면 210만 원 정도가 나와요. 국가 공무원 한 명이 1년에 210만 원, 한 달에 18만 원 정도씩 썼네요.

하지만, '쌈짓돈 3종 세트'는 수사 기관이 아닌 이상 주로 고위직들이 많이 써요. 연차가 낮거나 낮은 직급 공무원들은 높으신 분들이 밥 사고 술 사줄 때 말고는 '쌈짓돈 3종 세트' 구경도 못 하거든요. 공무원 모두가 깜깜이 돈 팍팍 쓴다고 생각하시면 안되요.

● 국민 1명당 25,200원씩 부담했어요!

통계청 통계를 보니 올해 우리나라 인구가 5164만 명 정도래요. 내년도 '쌈짓돈 3종 세트' 예산이 1조 3012억 원이니까, 국민 1인당 2만 5200원씩 부담하셨어요. 4인 가구라면 1년에 10만 원 넘게 내신 거네요. 서민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죠. 정부, 국회, 법원 모두 정신 바짝 차리고 이 돈 정말 의미 있게 썼으면 좋겠네요. 낭비하지 말고요. 우리도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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