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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中 사법 부패호랑이 잡았지만…살인 사건은 봉인?

정성엽 기자 jsy@sbs.co.kr

작성 2018.11.14 09:48 수정 2018.11.14 10:1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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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출신 런 모 씨는 1996년 상하이 푸둥 지역에 대형 빌딩을 개발합니다. 그런데 몇 년도 안 가 사고가 터졌네요. 당시 회사 부회장이었던 션 모 씨가 서류를 위조해 불법대출을 받고 돈을 갚지 않은 겁니다. 이 때문에 빌딩은 법원에 압수됐고, 경매를 통해 1천300억 원짜리였던 빌딩은 불과 4분의 1 가격인 320억 원에 한 수상한 회사로 넘어갑니다. 이 회사의 수상한 점은 주주들이 법원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낙찰 대금도 전액을 은행에서 끌어왔습니다. 몇 년이 지난 뒤 이 수상한 회사는 빌딩을 다른 회사에 넘깁니다. 가격은 3천500억 원. 말 그대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3천억 원이 넘는 막대한 이득을 챙긴 셈입니다.

빌딩 개발자인 런 씨는 빌딩이 경매로 넘어가는 과정부터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빌딩권리증은 자신에게 있고, 션 씨가 불법을 저질렀는데 법원이 왜 자신의 빌딩을 압수하냐고 반발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묘하게 돌아갔습니다. 불법 대출로 무기징역이 예상됐던 션 씨는 어쩐 일인지 고작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런 씨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인 상하이 경찰이 빌딩을 런 씨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고 했지만, 법원은 이를 거절하고 곧바로 빌딩을 경매로 넘겨 버렸습니다. 결국 이런 상황을 수상하게 여긴 최고인민검찰원 반부패국이 조사에 착수했는데, 이번엔 의문의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2006년 반부패국 특별조사팀 조사를 받고 나온 법관 2명은 그날 저녁 나란히 개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빌딩 경매에 관여했던 상하이 지역 법관들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날 모임에 간 것도 참 공교로운 일인데, 놀랍게도 이튿날 두 사람 모두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이후 그들의 가족들도 상하이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당시 이들이 독살을 당했을 거라는 의심이 파다했지만, 끝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한 달 뒤 또다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상하이 시내 한 별장에서 부부가 살해됐습니다. 숨진 남편은 빌딩 경매 절차를 담당했던 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별장에 있던 현금과 통장이 그대로 있는 걸로 비춰보면 단순 강도의 범행이라고 보긴 힘든 정황이었습니다. 빌딩 경매와 관련 있는 사람들, 그것도 결정적인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잇따라 숨지는 바람에 반부패국의 조사는 추동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사실상 빌딩 되찾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런 씨는 모든 사건의 배후로 천 쉬라는 인물을 지목했습니다. 천 쉬는 상하이 검찰원장이었습니다. 천 쉬가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해 이 모든 일을 배후 조종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런 씨는 최후의 카드를 던집니다. 자신의 동생에게 모든 관련 증거서류를 챙겨서 당시 당 중앙기율위원장이었던 왕치산 현 국가부주석에게 갖다 줍니다. 부패 호랑이 척결에 눈을 부릅뜨고 있던 왕치산은 즉각 천 쉬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취재파일] 中 사법 부패호랑이 잡았지만…살인 사건은 봉인?
배후로 지목된 천 쉬는 상하이에선 '법 지배자'로 불렸습니다. 상하이 출신인 천 쉬는 1970년대부터 38년간 공직생활을 상하이 법원과 검찰에서만 근무했습니다. 법정 직원부터 검찰원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천 쉬의 측근들은 그를 두고 "인맥이 넓다, 일 처리를 확실하다"고 호평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천 쉬가 상하이 사법제도를 좌지우지 주물렀다는 사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중앙기율위 조사를 거쳐 재판에 넘겨진 천 쉬는 결국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상하이가 아닌 난닝시 법원은 지난달 25일 천 쉬 전 상하이 검찰원장에게 무기 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법원이 그에게 유죄로 인정한 죄목은 뇌물수수였습니다. 천 쉬가 2000년부터 15년 동안 1천억 원이 넘는 뇌물을 받아 챙겼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런 씨가 고발했던 의혹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남용해 빌딩을 강탈하고, 유력한 증인들을 살해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은 천 쉬가 저질렀다고 볼 만한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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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법 지배자' 천 쉬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면서 시진핑 주석이 때려잡겠다고 했던 부패 호랑이가 또 한 명 추가됐습니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의 관심은 천 쉬의 숙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4명이나 살해된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천 쉬가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것인지, 아님 무관한 사건인지 진상을 밝혀야 한다는 겁니다. 일부 매체들은 천 쉬 사건에 100명이 넘게 연루돼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천 쉬가 100명을 폭로했다는 국내 보도도 있지만, 이는 오역인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 쉬가 이미 뇌물 사건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이상 다른 의혹들은 이대로 봉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중국 스타일이 원래 그렇다는 겁니다. 현지의 한 매체는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인용해 "어떤 부패보다 사법부패 척결은 훨씬 어렵다"면서 "범죄 흔적을 지우는 게 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개인의 '법꾸라지' 능력도 있겠지만, 그들만의 카르텔도 확고하다는 의미도 포함된 평가로 풀이됩니다. 왠지 이 부분만큼은 우리 사법부와 법조계의 현실과 묘하게 겹쳐 보이는 건 저 혼자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