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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라돈 생리대'는 위험할까?

[취재파일] '라돈 생리대'는 위험할까?
지난 5월, 국내 한 유명 침대에서 방사성 물질인 '라돈'이 검출된다는 소식을 처음 보도했다. 이후 반년이 지났지만 파장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요즘도 관련 뉴스가 계속 나온다. 침대, 라텍스, 베개에 이어 얼마 전에는 한 방송사가 보도한 '라돈 생리대'가 문제가 됐다.

침대만큼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개인적인 문의를 많이 받았다. 나도 그 생리대 썼는데 괜찮느냐, 병원 가 봐야 하냐 같은 물음들이다. 전문가도 아니고 곤란한 질문도 많았지만 성심껏 대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쨌든 이 '라돈 대란'이 벌어지는 데 얼마만큼은 책임이 있지 않은가 하는 염치 혹은 부채감 같은 것들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처음 시작한 보도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도 있다. 아예 기사를 쓰기로 한 이유다.
오늘습관 라돈 생리대
● 라돈 생리대 논란에…정부 "안전기준 적합"

그렇다면 정말, 라돈 생리대는 위험할까? 다행히 이에 대해선 정부가 이미 답을 내놓았다. 안전기준에 적합한 걸로 나타났다는 지난 2일 조사 결과다. 생리대의 특성을 고려해 측정한 결과 라돈과 토론은 아예 검출되지 않았고 방사선 피폭선량은 연간 0.016 mSv로 평가됐다. 법으로 정하는 기준치는 연간 1 mSv다.

대충 안전하다는 얘긴데 소비자 입장에선 찝찝하다. 그렇다면 왜 위험하다고 보도됐나? 모나자이트가 들어갔다면서 라돈은 왜 안 나오나? 궁금할 수 있다. 더구나 정부 조사 결과는 예전에 한 번 번복이 된 적 있다. 라돈 침대 1차 조사 때 매트리스 전체가 아닌 매트리스를 감싸는 일부 커버의 라돈 수치만 측정했다가 2차 조사 때 오류를 인정하고 번복한 일이다.

다만 이번에는 조사 결과가 번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려와 불신은 정부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지만 이번에는 정부 조사 과정에 큰 결함이 없어 보인다는 뜻이다. 지난번에는 발표를 서두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번 조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절차대로 다 했다.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선, 이번 기회에 라돈에 대한 오해를 자세히 풀고 갈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라돈 포비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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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돈이 무서운 건 '폐암' 때문…호흡기 들어가면 문제

라돈(Rn)은 기체 형태로 존재하는, 무색무취의 방사성 원소다. 최근 라돈 이슈가 불거지면서 마치 닿거나 마시기만 해도 큰일 나는 독극물처럼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사실 라돈 자체는 암석이나 토양에서 발생하는 자연 상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물질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화강암 지대라 라돈 농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라돈이 문제가 되는 건 실내 중에 쌓여 있다가 인체 호흡기로 들어갈 경우에 거의 한정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라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건 지난 1980년대, 미국 광부들의 폐암 발생률이 매우 높았고 그 원인물질이 라돈으로 지목되면서다. 라돈이 호흡을 통해 폐나 기관지 등 호흡기에 들어가면 강한 방사선을 뿜으며 붕괴하는데, 이 방사선이 폐나 기관지 세포의 DNA를 손상 또는 변이 시켜 폐암 또는 각종 질환을 일으킨다는 게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라돈의 암 발생 기전이다.

다시 말해 라돈이 무서운 건 사실상 폐암 때문이다. 미국 환경보호청은 지난 2003년 미국에서 1년 동안 발생하는 폐암 사망자 가운데 10% 이상이 라돈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 숫자가 무려 2만여 명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많았다.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도 전체 폐암 환자 가운데 라돈 노출로 인한 경우를 12% 정도로 추산한 바 있다.

이번 조사에서 생리대와 호흡기와의 거리를 50cm로 상정해 라돈 농도와 피폭선량을 계산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라돈이 호흡기로 들어갈 가능성을 고려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침대와 베개의 경우는 호흡기와의 거리가 5~10cm였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 더구나 이번에 나온 토론 계열 라돈의 경우 51.5초가 지나면 반으로 줄어들고 대기 중에 쉽게 분산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생리대의 위치적 특성을 고려하면 라돈이 인체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라돈 측정기(사진=연합뉴스)
● 피폭선량, 여러 요소 복합적으로 고려…'유해성과 위해성' 구분해야

물론 라돈 자체가 아닌, 모나자이트와 같은 방사능 원인물질에 의한 피폭 영향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기준치를 넘든 넘지 않든, 불필요한 피폭은 가능한 한 피하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확인된 해당 생리대의 방사선 방출량과 사용시간을 고려하면 부인과 질환은 물론 피부암 등과 연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여러 환경의학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방송에서는 휴대용 계측기를 통한 피폭선량 수치를 제시했지만, 이 수치는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간이 수치에 불과하다. 실제 물체에 의한 방사선 피폭선량을 계산하는 방식은 훨씬 복잡하다. 예를 들어 침대의 연간 피폭선량을 계산한다고 치자. 우선 침대에서 방사선이 얼마나 방출되는지 측정한다. 이때도 그냥 단순한 측정기로 재고 마는 게 아니다. 시료를 불에 태워서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이어 침대와 호흡기와의 거리, 침대 사용자의 신체조건과 건강 상태, 침대가 놓인 방의 환경, 하루에 얼마나 자는지 사용 시간 등을 고려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피폭선량을 계산한다. 이 시나리오를 만드는 건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된 위원회다. 의도나 주관이 개입되기 오히려 힘든 구조다. 이번 조사로 밝혀진 생리대의 피폭선량 0.016mSv도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수치다.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안전 기준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유해성'과 '위해성'이란 개념이 있다. 쉽게 말하면 유해성은 물질 자체가 갖는 독성이고 위해성은 사용 조건과 환경 등 맥락을 대입했을 때 나오는 독성이다. 1리터짜리 농약 한 병이 있다고 치자. 이 농약 자체의 유해성은 매우 높다. 사람이 마시면 즉사한다. 그러나 이 농약을 태평양 한가운데 뿌렸다고 해서, 동해 바다에서 바닷물을 마신 사람이 즉사한다거나 바닷물 전체를 농약 덩어리라고 할 수는 없다. 굳이 위해성을 판단하더라도 농약을 뿌린 위치, 얼마나 희석되는지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라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사례가 여럿 있었다. 라돈 침대가 이슈가 된 이후 각종 보도와 제보가 잇따랐다. 측정기로 이곳저곳 재보니 라돈 수치가 많이 나왔던 것이다. 일부 고양이 흙이나 화분 배양토에서도 라돈이 나왔다. 음이온 기능을 내세운 목걸이, 팔찌도 마찬가지다. 큰 이슈가 안 된 건 위와 같은 이유에서다.

결론적으로 해당 생리대를 이미 사용했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물론 계속 쓸 이유도 없다. 위험해서라기보다, 바꿔준다는데 굳이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해당 생리대가 안전 기준에 적합하지만 신고하지 않은 패치를 사용해 약사법을 위반했단 이유로 회수 조치를 명령했다.) 기자 역시 개인적인 질문에는 이렇게 답한다. "다른 제품도 많으니까 가급적 다른 거 쓰세요. 하지만 이미 썼거나 쓰고 있다고 해서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이다.

생리대에 모나자이트가 쓰이는 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는 것과 인체에 위험하다고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사람 몸에 위험하다면 대책을 세우고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 '라돈 포비아' 극복하려면

최근에는 '라돈 포비아'라는 말도 나왔다. 산업화 이후 화학물질의 광범위한 사용과 인체 노출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화학물질 공포증, 케모포비아(Chemophobia)에서 따온 말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근거 없는 불안을 확산시키는 현상으로 보기도 한다. '라돈 포비아'의 경우에는 마치 라돈을 닿기만 해도 인체에 위해한 독가스처럼 여기는 현상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요즘처럼 누구나 인터넷으로 전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는 이런 '포비아' 현상이 무지(無知)의 소산이라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라는 게 최근 학자들의 시각이다. 올바른 정보가 대중에게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는 이야기다. 위험을 축소해서는 안 되지만, 과장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과학적 사실을 보도함에 있어서 언론은 더욱 신중해야 하고 치밀해야 한다. 대중은 이런 기사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해당 기업에는 생사가 걸린 문제다.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안전 기준은 어기지 않았다지만, 결국 해당 생리대가 법을 어겨 회수되어야 하는 제품으로 밝혀진 건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 '라돈 포비아'가 확산하는 건 어느 한 주체의 역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정부와 전문가 집단은 물론이고 NGO 등 시민 사회에도 책임이 있다. 정부 부처는 관료적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하기보다 수요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 전문가 집단 역시 오만과 아집을 경계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NGO를 비롯한 시민 사회 또한 문제제기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모두가 잘못이 있다는 전비론(全非論)이 아닌, 실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지적이다.

'라돈 포비아'를 경계해야 하는 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행정에는 부담을 지우며 기업에는 피해를 끼친다. 분명히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각 사회 구성원의 명확한 인식과 책임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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