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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아픈 허리와 비만, 그리고 그 순서

[취재파일] 아픈 허리와 비만, 그리고 그 순서
바둑에서 돌을 놓는 순서, 수순은 매우 중요하다. 이기는 수였더라도 순서가 뒤바뀌면 지는 수가 된다. 바둑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좋은 의도로 성실히 진행했던 정부 정책도 순서가 잘못되면 그것이 돕고자 했던 대상자들을 오히려 곤란하게 만든다.

똑같은 치료를 받았을 때에도 어떤 순서로 받느냐에 따라 삶과 죽음의 표지판이 바뀔 수 있다. 폐에서 발견된 주먹만 한 종양에 대해서 수술로 덩어리를 제거한 후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로 나머지 미세한 암세포를 없애는 게 더 좋은 환자가 있는 반면, 항암제와 방사선으로 암덩어리의 크기를 줄인 이후 수술로 제거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환자도 있다. 이 순서는 환자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데 순서가 바뀌면 치료받는 환자는 자신에게 딱 한 번 있는 회복 기회를 놓치게 된다.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치료들이 자칫 어긋난 순서로 선택되면 오히려 건강 악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바둑의 정석처럼 치료에도 표준화된 순서가 마련돼있다.

하지만, 바둑판의 모든 수를 정석으로 둘 수 없듯 개인의 직감이나 경험에 의지해 치료 순서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비만과 허리 척추 병이다. 비만은 허리 척추가 부담해야하는 무게를 늘려 척추 상태를 악화시킨다. 척추 질환은 허리 통증과 다리 저림 증세를 일으켜 살을 빼기 위한 몸의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든다. 비만과 허리 척추병은 악순환의 고리에서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우선 순위는 늘 비만이 차지해왔다. 비만을 치료한 후 가벼운 몸으로 척추를 교정받는 게 회복이 빠를 것이고, 반대로 척추를 먼저 수술 받는다면 교정된 척추가 무거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다시 고장날 수 있다는 논리적인 예상이 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만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수술 부위 감염 위험이 높은데, 수술 부위 감염은 모든 외과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합병증이다. 환자는 물론 의사도 허리병보다는 비만을 먼저라고 생각했고 이 순서는 정석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미국 뉴욕 브롱스에 위치한 알버트 아인슈타인 병원, 정형외과 조우진 교수는 고난이도 척추 수술을 표준화된 방법으로 집도한다. 교과서대로 수술 대상이 되는 환자만을 선택해 교정이 필요한 부분만 원칙대로 수술한다. 현재 알버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척추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헐리웃 영화 배우들과 메이저리그, NBA 스타들이 치료받는 병원으로 잘 알려진 미국 최고 외과전문병원( HSS, Hospital for Special Surgery) 100주년 기념식에 초청 강연자로 선정될만큼 척추분야 선두 의사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도 수술 환자의 감염은 피해 갈 수 없었다. 교과서 그리고 학회 지침에 따라 감염 예방을 위한 원칙들은 철저히 지키고 있지만, 낮은 확률로 감염이 발생한다.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감염에 대해 비난이나 비판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감염률은 미국 평균보다 낮아서 감염 예방 점검 때마다 늘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수술 부위 감염으로 뜻한 것보다 더 고생하면서도 미소를 건네는 환자를 대할 때면 마음이 무겁다. 치료 과정에 잘못이 없는, 불가항력인 감염은 불운이며, 불운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덮어 두는 게 일반적으로 맞다. 하지만, 현재의 불운이 덮여 있으면 미래에도 불운으로 남게 된다. 의학의 발전을 위해서 누군가는 불운을 덮고 있는 불확실성의 베일을 걷어내기 위한 시도를 해야 한다. '그래도 고맙다'며 반갑게 인사하던 어떤 환자의 병실을 나오는 순간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무엇이 원인인지 찾아내리라'며, 당시 수술방의 전 과정을 되뇌였다. 몇 번을 반복하며 미세한 부분까지 점검했지만 실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뜻밖에 그날의 특이했던 촉감이 떠올랐다.

"겉보기엔 보통 체격이었는데, 막상 수술 방에서 장갑을 낀 손으로 직접 만져보니 근육연부조직의 탄력도가 떨어져 있고 푸석푸석한 느낌이었습다. 푸석푸석한 느낌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이 물음표가 출발점이었습니다."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대 정형외과 교수 조우진
'푸석푸석한 느낌'만으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현재 없다. 그야말로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었지만, 그는 그것의 끝자락을 붙잡고 감염 원인의 미로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안갯속에서 기한을 알 수 없고 결과를 기약할 수 없는 걸음을 이어가고 있을 때 한 줄기 빛과 같은 팩트 하나가 찾아왔다.

환자가 수술 받을 당시에는 정상체중이었지만, 원래 고도비만이었고, 척추수술을 받기 6개월 이전에 고도비만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혹시 고도 비만 수술로 인한 급작스러운 체중 감량이 감염 원인은 아닐까? 한국에서 늘고 있는 젊은이들의 결핵에 대해 급격한 다이어트가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는데, 같은 메카니즘이 그 환자에게도 일어난 것은 아닐까? 미로의 한가운데서 찾아낸 물음표를 좇아, 국가 수집 병원 자료의 10년 기록을 모두 추적했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척추수술을 받은 39,742명의 데이터를 검토한 후, 그중에서 척추수술을 받기 6개월 이전에 고도비만수술을 받은 환자 129명(3.2%)을 추려냈다. 이들을 잘 분석한다면 감염원인 중 하나를 불운의 카테고리에서 끄집어 낼 수 있다.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이들과 성별, 나이, 비만도, 흡연 경력등 수술 부위 감염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은 비슷하면서 오로지 고도비만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척추수술을 받았다는 점만 다른 환자들을 찾아내 대조군으로 설정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올해(2018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된 25회 국제 척추학회에서 발표되면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고도비만수술을 받고 척추수술을 받은 그룹에서는 평균 입원기간이 9.7일이었는데, 대조군에서는 4일 뿐이었다. 수술 중 출혈이 많아 수혈이 필요했던 경우와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심각한 술 후 합병증도 고도비만 수술 그룹에서 더 많았다. 가장 무게를 두었던 수술 부위 감염률에서도 차이가 발생했다. 고도비만 수술을 받은 직후 척추수술을 받을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수술 부위 감염 위험도에서도 무려 두 배 넘는 차이가 발생했다. 고도비만 수술군에서는 8건의 수술부위 감염이 있었지만, 대조군에서는 3건에 불과했다. 원인 미상의 감염 원인을 찾기 위해 동원했던 특유의 감각이 빛을 발하면서 불운으로 치부됐던 새로운 감염 위험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무조건 비만을 먼저 교정하고 허리를 치료받는 게 좋다는 오래된 믿음을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비만보다 척추를 먼저 교정하거나 비만수술을 먼저 받을 계획이라면 적어도 6개월 이상 몸을 회복시킨 후 허리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25회 국제 척추학회(왼쪽, 조우진 교수)
고도비만 수술을 받고 난 후 6개월 이내에 체중의 10%가 줄어드는 사람들에게서는 공통적으로 여러 영양소들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데, 소금, 단백질, 철, 아연 그리고 비타민 A, D, B6, B12가 대표적이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새살이 돋는 게 지연되고 면역세포가 병균과 싸우는 힘도 떨어진다. 철이 부족하면 혈액세포의 산소 운반능력이 줄어들어 회복해야 할 세포가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술 후 가만히 누워있는 동안 정맥에서 쉽게 혈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정맥 혈전이 뇌동맥이나 심장 혈관을 막으면 초 위기 상태에 빠지게 된다. 비만 수술 후 지방 흡수가 줄어드는데 그 덕분에 살은 빠지지만 그 대신 지방에만 녹는 지용성 비타민이 부족해진다. 실제로 고도비만 수술 환자의 60-89%에서 비타민 A, D 결핍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결국 급격한 체중 감량은 몸을 영양실조 상태로 만들고, 그것이 수술 부위 감염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 것이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영양 부족 현상은 비만 수술을 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식이조절로 급격히 살을 뺀 사람에게도 흔히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비만과 척추의 고정된 순서를 흔들어 놓았다. 급격히 살을 뺀 사람이 비만 환자보다 수술 합병증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비만 교정과 척추 교정을 모두 시급하게 해야 할 상황이라면 척추 교정이 먼저다. 다만 이럴 경우 비만도에 따라 상승하는 수술 감염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비만 교정을 먼저하려거든 6개월 이상 회복시간을 갖고, 여러 영양 성분이 충분해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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