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V] "한국 사람은 건드려도 탈이 없다"…필리핀 한국인 피살사건 '현장 르포'

정윤식 기자 jys@sbs.co.kr

작성 2018.10.02 15:24 수정 2018.10.02 19:1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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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교민들이 많이 사는 필리핀 앙헬레스.

사업가 지익주 씨는 지난 2016년 10월 자신의 집에서 괴한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그저 살아있기만을 바란 가족들. 그러나 3개월 만에 들려온 건 지 씨가 숨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지 씨가 필리핀 경찰청 건물 주차장에서 살해됐고 시신은 이미 화장돼 화장실에 버려져 있었다는 겁니다.

지 씨를 살해한 이들은 놀랍게도 필리핀 현직 경찰관들이었습니다.

■ "한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건 필리핀 현직 경찰관들이었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흐른 지난달 26일.

20대 한국인 남자가 또 살해됐다는 소식이 필리핀에서 들려왔습니다.

SBS 취재진이 찾아간 곳은 매년 90만 명의 한국인이 방문하는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 세부. 그러나 살인이 벌어진 곳은 널리 알려진 세부의 모습과는 느낌이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시내에서 차로 30분 이동해 도착한 허름한 모텔. 사건이 일어난 지난달 26일 총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경비원을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근처 건물 경비원 : (혹시 총소리 들으셨어요?) 네. 제가 여기 근무라. (총소리가 몇 번 울렸나요?) 다섯 번이요. 샷 건처럼 이렇게"]

살해당하기 직전 한국인 남자의 마지막 모습과 총을 겨눈 필리핀 남자의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근처 건물 경비원 : "한국인이 무릎 꿇고 빌었어요. 미안하다고. 자기 죽이지 말라고. 근데 그 총을 든 사람은 그냥 쏴 죽였어요. 총알이 연속으로 나갔어요."]

경찰은 숨진 한국인 이 모 씨에게 총을 쏜 남자가 이미 다른 살인사건으로 수배 중인 인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발생 17일 만에 체포된 범인은 카사도라는 이름의 35살 필리핀 남자. 그는 이 씨를 향해 권총을 무려 8발이나 쐈습니다.

숨진 이 씨가 자신의 여자친구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했지만 사건 현장에서 마약 영수증이 발견되는 등 마약범죄 정황도 있는 상황.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 "총알 다섯 발을 샷 것처럼 쐈다" 또 터진 필리핀 한국인 살해 사건

세부에서는 지난 2월에도 한국인이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한식당을 운영하는 40대 한국인이 승용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겁니다.

한 가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끔찍한 범죄.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어렵게 유가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피해자 유가족 : "퇴근하던 길에 집에 거의 다 와서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왜 변을 당하게 됐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저도 답답한 게 다른 거 다 필요 없으니까 왜 죽였는지 그것만. 그것만 알고 싶다고. 그러니까 정말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 왜 죽었는지."]

하지만 진척이 없는 수사. 유가족조차 범인이 잡힐 거란 기대를 접은 듯했습니다.

[한국인 피해자 유가족 : "영사관에서도 얘기를 했어요. '뭐 빨리 밝혀져야죠. 우리가 최대한 잡겠습니다.' 이런 소리를 했을 때 그랬어요. 사실은 안 믿는다고. 여기에서 그렇게 해서 잡힌 사람 별로 없어요. 필리핀 경찰도 못 잡을 거고."]

한국 경찰청 소속으로 필리핀에 파견된 한인 사건 담당 경찰관은 필리핀 현지의 수사 사정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심성원 코리안 데스크 / 한인 사건 담당 경찰관 : "일단 숨을 곳이 너무 많고요. 섬이 많다 보니까. 어디로 가 버리면 그걸 추적하기 힘들고. 누구를 추적해서 검거할 수 있는 수사의 인프라나 환경이 우리나라에 비해 확실히 구축이 많이 안 돼 있죠."]

필리핀에 사는 한국인 교민은 모두 9만 3천 명. 치안이 불안하다 보니 교민들 대부분은 보안이 좋은 일종의 타운하우스인 '빌리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12년 전 필리핀에 온 황인영 씨도 이민을 온 뒤 줄곧 이 빌리지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관문을 열어주는 것조차 조심해야 할 정도로 불안한 곳. 황 씨는 알고 지내던 교민이 몇 년 전 끔찍한 일을 당한 사건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황인영 / 현지 교민 : "그날도 보니까 마사지사를 부른 것 같은데 딱 넘어져 있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문 열어 주다가 그런 거 보니까 그런 부분이 안타까운 거죠. (그 사건을 한인 금품을 노린 강도 범죄를 보시는지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범인이 잡혔지만 처벌을 받았는지는 모른다는 황 씨. 유가족이 장례만 치르고 한국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 "관광지 세부조차도...." 유가족조차 범인 검거를 포기하는 나라

필리핀은 우리와 법체계가 달라 범인이 잡히더라도 피해자 측이 고소를 하고 소송에 참여해야 재판이 진행됩니다. 만약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최일영 / 필리핀 한인 변호사 : "피해자분들이 어떤 동의나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건은 기소됐다 하더라도 재판의 과정에서 기각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 사건과 연루돼 있던 피의자들은 다 석방이 되나요?) 네. 석방됩니다."]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필리핀에서 일어난 한인 피살사건은 42건. 이 가운데 살해범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는 단 4건뿐입니다.

전체 한인 피살사건의 10%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사업가 지익주 씨를 살해한 필리핀 경찰관들을 상대로 외로운 소송을 벌이고 있는 부인 최경진 씨.

최 씨는 여전히 앙헬레스의 집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최경진 / 故 지익주 씨 부인 : "이제 추모식 때 썼던 사진이에요 이게. 근면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되게 긍정적이고."]

18년 전 필리핀에 와서 인력회사를 운영하며 살던 최 씨 가족.

그녀는 아직도 자신의 가정에 닥친 비극을 믿을 수 없습니다.

[최경진 / 故 지익주 씨 부인 : "저희 딸은 그 사건 한 달 지나서 그냥 귀국시켰고 저만 남았어요. 저는  갈 수가 없더라고요. 아마 제가 갔으면 이 사건 그냥 묻혔을 거예요."]

남편이 납치된 뒤 하루하루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최경진 / 故 지익주 씨 부인 : "(동네 사람이) 저희 신랑이 납치되는 걸 봤다고 자기가 그걸 비디오로 찍은 거. 휴대전화로 찍은 게 있대요. 보니까 저희 신랑이 잡혀가는 게 있더라고요."]

필리핀 경찰에 CCTV 등 증거물을 모두 넘겼지만 수사에 진전은 없었고 오히려 남편을 납치한 필리핀 경찰이 협박을 하며 돈까지 요구했다고 합니다.

[최경진 / 故 지익주 씨 부인 : "(범인들이) '나는 네 차를 알고 집도 안다'라고 얘기를 했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그냥 호텔 아니면 아는 집사님의 집 이 렇게 돌아다니면서 자고 그랬어요."]

남편을 찾기 위해 사설탐정까지 고용했지만 막상 자신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 숨어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최경진 / 故 지익주 씨 부인 : (현지 대사관이나 그런 한인 경찰이 충분히 도움이 됐다고 보시는지요?) 아니요. 사건 처음에는 정말 누구한테 손을 내밀어야 되는지도 몰랐고요. 그리고 어디에다가 이걸 도움을 청해야 되는지도 몰랐어요. 대사관은 자국민을 보호해 주겠지 했는데 대사관 측에서도 자기네 업무 외에는 도와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 억울하게 살해된 남편..법의 처벌을 받게 하려면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필리핀에서 형사재판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를 일.

교민들은 최 씨가 재판에 참석하는 것이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신성호 / 필리핀 한인 총연합회 부회장 : "고소인으로 어떤 피해자의 가족이 여기서 남아서 재판진행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생명의 위협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조현묵 / 현지 교회 목사 : "경찰 간부였던 사람들이 최경진 씨를 계속 저렇게 버려두지는 않겠죠. 대사관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뭐 외교적인 노 력을 해줘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범인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아야 되 는 것이고요. 대사관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뭐 외교적인 노력을 해줘야 되는 것이고 그리고 범인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아야 되는 것이고요."]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필리핀에서 총기 등에 의해 숨진 한국인은 확인된 사례만 50명. 최근 5년 동안 해외에서 살해된 한국인의 29.3%가 필리핀에서 숨졌습니다.

한국인 수사관이 배치된 2012년 이후 피해자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 "한국 사람은 건드려도 돼"..한국에 오지 않고 버티는 단 하나의 이유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에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최경진 씨.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최경진 / 故 지익주 씨 부인 : "이 사람들이 벌을 받아야지 저의 신랑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아요. 이런 큰 죄를 지었는데도 아무도 벌을 받지 않는 다면 이런 사고가 또 계속 일어나겠죠. '한국 사람은 건드려도 돼..' 저희 신랑의 죽음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이 남편을 앗아간 필리핀 땅에서 자신에게 남겨진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억울하게 숨진 한국인들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건 비단 최 씨뿐만은 아닐 겁니다.

※ SBS 뉴스의 오디오 특화 콘텐츠 '보이스'가 '보이스 V'라는 이름의 비디오 콘텐츠로 새롭게 단장해 여러분들을 찾아갑니다. 당신이 원하는 뉴스, 당신을 위한 비디오 콘텐츠. SBS 보이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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