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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시계(時計)는 다르게 간다(?)

손석민 기자 hermes@sbs.co.kr

작성 2018.09.29 09:58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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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월드리포트] 트럼프와 폼페이오의 시계(時計)는 다르게 간다(?)
한반도 관련 시계(時計)가 어느 때보다도 빨리 흘러간 한 주였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필두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 그리고 북미 외교수장 회담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핵 관련 회의까지, 최고의 외교무대에서 펼쳐진 주인공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개인적으로 주목해봤던 것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말이었습니다. '대담하고도 새로운 평화'(트럼프), '북핵 외교의 새시대'(폼페이오) 등등 함께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체제 전환)를 말하면서도, 두 사람의 시계(時計)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 차이
트럼프 대통령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이하 미국시간) 오전 뉴욕 유엔 총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에게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좋아지고 있고 많은 것이 준비돼 있다"며 "곧(quite soon)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아름다운 편지를 써서 두 번째 회담을 요구했다"며 "우리는 만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반나절 뒤 오후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선 "머지않아(in the not too distant future) 김 위원장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6일에는 "매우 가까운 장래(very near future)에 김 위원장과 만날 것"이라면서 "매우 가까운 장래에 장소와 시기가 발표될 것"이라고 한발 더 나갔습니다. 미 중간선거가 치러지는 11월6일 전에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말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의 이야기는 조금 달랐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26일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이 조만간 열리길 희망한다"면서도 "10월에 열릴 수도 있겠지만, 그 후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more likely)"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 계산과는 사뭇 다른 톤(tone)입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러면서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많은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게 올바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단서를 달았습니다. 정상회담을 빨리 하는 게 능사가 아니며, 미국이 원하는 올바른 조건에서 회담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 "시간싸움 않겠다" 비핵화 시한 차이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뉴욕에서 가진 단독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에 얼마나 오래 걸리느냐'는 질문을 받고 "시간 싸움(time game)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북미 협상을 총괄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시간 싸움하지 마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이어 "2년이 걸리든, 3년이 걸리든, 혹은 5개월이 걸리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부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고 했지만, 나는 '언론을 이해해야 한다. 세상 모든 시간이 나에게 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미국 내 기대치를 낮추려는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여기서 귀에 들어왔던 건 폼페이오 장관에게도 시간 싸움을 말라고 지시했다는 부분입니다. 조금 예민한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핵화 시한과 관련해 폼페이오 장관과 의견 차이가 있었고 자신의 지시로 북한과 시간 싸움을 말라고 정리했다는 말로도 들리기 때문입니다. 앞서 폼페이오 장관은 19일 3차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환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2021년 1월) 내 비핵화 완성을 목표로 북미 간 근본적 관계 전환을 위한 협상에 즉시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안보리+폼페이오/'신 새벽 밝았지만 제재는 유지폼페이오는 2021년 1월까지라는 시간표에 대해 "이는 김 위원장이 약속한 내용"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 싸움을 말라고 지시했다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2021년이라고 정해놓은 스톱워치를 리셋(reset)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런 궁금증에 대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국무부와 문답한 내용을 전했습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 시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정책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국무부는 "우리는 완전히 검증된, 특히 최종적인 비핵화를 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완전히 비핵화하고, 핵 이슈가 다시 떠오르지 않길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정책 변화는 없다는 이야기지만, 시한을 둘러싼 이견 여부에는 확답하지 않은 셈입니다.

● 잃을 게 없다는 트럼프, 뒤를 생각하는 폼페이오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자기 중심적이고 즉흥적입니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치적(治績)에 민감합니다. 최근 중간선거 지원 유세마다 북한 이야기를 하면서 "지난 6월 이후 핵실험도 미사일 발사도 없었다. 인질들과 미군 유해는 돌아왔다. 하지만 북한에는 아무 것도 양보한 게 없다"고 자랑해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당장 이뤄지지 않을, 전문가들의 말처럼 신기루일 수도 있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보다는, 지금 시점에서 손에 쥐고 자랑할 수 있는 성과가 중요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과 협상을 하다가 안되면 그 뿐이라는 인식을 자주 비쳐온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언제 다시 북한을 탓하고, 폼페이오 장관을 내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대북 강경파인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는 늘 국무장관 후보로 자천타천 거론돼 왔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의 입장은 다릅니다. 국무장관 취임 전부터 방북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고, 이후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도맡아 다뤄왔습니다. 국무부 안팎에서는 "폼페이오가 비핵화를 자신이 낳은 아이처럼 생각하고 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주인공 톰 크루즈처럼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말이 들립니다. 자신이 물꼬를 튼 비핵화 협상이 흐지부지 된다면, 또 북한에게서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실패한 국무장관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그러면 야심 있는 정치인으로서 다음 자리로의 도약 역시 기약할 수 없을 겁니다. 극단적인 대비일 수도 있지만, 잃을 게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뒤를 생각하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케미스트리(chemistry, 궁합)는 늘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