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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자식 잃은 슬픔 하나로만 살게 해 주세요"

군 의료체계 문제점 보도 이후 3개월…국방부와 마주한 어머니들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8.09.13 14:03 수정 2018.09.17 17:3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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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식 잃은 슬픔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자식 잃은 슬픔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게 해 달라니. 한 어머니가 꺼내놓는 말을 듣다 그 문장이 턱 하고 마음에 걸렸다. 그것 말고 이 세상에 어떤 슬픔이 더 있을까 싶어서였다. 계속되는 어머니의 말에 고개가 숙여졌다.

"왜 군에서 의무복무를 하러 간 아이들에 대해서만큼은, 왜 군이 이렇게 하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있는 대로 진실 밝혀주시고요.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예우, 해 주십시오. 저희 오래 못 삽니다. 살 낙이 없습니다. 그냥 아이 보낸 아픔 하나로만 살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상규명하는 것, 유족이 할 수 없기 때문에 국방부 관계자 분들이 유족의 편에 서서 해 주십시오."

아이를 잃은 슬픔도 버거운데 진상 규명과 예우 문제 등을 두고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하는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 잃은 슬픔 하나만을 안고 가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5월 말, 군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SBS 보도 이후 故 홍정기 일병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거리로 나갔다. 혜화, 홍대입구, 광화문 등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나가 아들 홍 일병이 군 복무 중 세상을 떠나게 된 이유와 현 군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외쳤다. 어머니는 아들처럼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아들의 명예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투사가 되었다. 거리에서 외치는 어머니의 외침은 당연하게도 국방부를 향한 것이었다.
지난 11일,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 주최로 '군 피해 유가족 간담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가 열렸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 주세요'

계절이 바뀌고서야 어머니들의 그 외침이 닿은 걸까. 보도한 지 3개월 여가 지나고 어머니들이 국방부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마련됐다고 연락을 해 왔다. 지난 9월 11일,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이 주최한 <군 피해 유가족 간담회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에서 어머니들은 국방부와 보훈처 담당자들과 함께 앉았다. 간담회장에서 가장 먼저 이야기를 시작한 공복순 씨는 훈련소에서 아들을 잃었다. 훈련소에서 뇌수막염을 앓은 아들 故 노우빈 일병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군의관에게 받은 타이레놀만 먹다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공 씨는 지금 군피해치유센터 '함께'의 대표다. 공 씨의 말에 따르면 '함께'는, "군에서 아이가 죽거나 다치거나 했던 어머니들이 모여 손잡고 서로 치유하자, 그리고 다시는 우리와 같은 어머니가 나오지 않게 하자"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 뒤 군이 어떻게 사고 처리를 하고 유족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유가족들이 가족을 잃은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달라진다고 말한 공 씨는, 이제 국가 차원에서 운영되는 군피해치유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뿐 아니라 이후 심리 치료 등에서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을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김종대 의원이 필요성을 제기했던, 심상정 당시 대선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군 트라우마 센터'와 일견 그 결을 같이 한다.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 씨도 다시 한 번 아들이 부대에서 겪었던 일을 시간대별로 이야기하며 응급 환자에 대한 군 의료 체계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허망했던 마음에, 공복순 씨에게 "왜 당신 아들이 아플 때 더 난리치지 않았냐. 그랬으면 (의료 체계가 더욱 제대로 개선돼) 우리 애는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안타까운 기억을 털어놓기도 했다(故 노우빈 일병은 지난 2011년 4월에 세상을 떠났고 국방부는 여러 차례 군 의료체계 개선대책을 발표하고 추진했지만 5년 뒤인 2016년 3월 故 홍정기 일병의 죽음은 막지 못했다.)
故 홍정기 일병 어머니인 박미숙 씨는 군 의료 체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지적했다.故 고동영 일병 어머니인 이순희 씨도 말을 이었다. 고 일병은 2015년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일병은 2014년 소속 부대에서 실시한 적성적응도 검사에서 '자살', '정신장애' 예측 판정이 나왔고 2015년에도 즉각적인 전문가 지원 및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견으로 '자살', '군탈', '적응장애' 예측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본인이 거부한다는 이유로 전문 상담관과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군의 사망사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 일병은 "전문 상담관 면담, 정신과적 치료, 부모와 연계에 의한 집중 관리가 필요하였음에도 이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사망자의 성격상 타인으로부터 폭언이나 험악한 말을 들으면 기억하고 괴로워하는 성향을 볼 때 업무 미숙에 대해 정비관들의 질책이 심적 부담감으로 다가오는 등 위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숨지게 됐다. 이 씨는 아들인 고 일병에게 즉각적인 전문가 지원 및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왜 좀 더 신경 써서 상담 전문가 등이 대처를 하지 않았는지, 왜 부모에게 한 번이라도 알리지 않았는지를 간담회장에서 재차 따져 물었다.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 피해자인 故 박 모 상경의 어머니 박 모 씨도 간담회를 찾았다. 간담회장 벽면에 설치된 현수막을 보면서 박 씨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나라가 강제로 데려간 아들을 억울하게 잃게 되었는데 왜 어머니들이 그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좀 하자고 아무리 말해도 그렇게 만나기 어렵던 국방부 관계자들은, 국회의원이 부르면 이렇게 달려오느냐고도 질타했다.

● 국방부 "초기 조치 잘못했다" 인정… "개선안 마련 중"

한참 동안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은 이순택 국방부 보건정책과장은,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해도 어머니들 가슴에 와 닿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국방부가 의료 체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도 있었고 국방부 내부적으로도 개선 의지가 있어서 현재 의료체계 개선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늦어도 12월 중으로는 대통령에게 개선안 보고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모두 밝힐 수는 없다면서도, 군 병원을 거치지 않고 민간병원으로 환자를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현재 마련 중인 개선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순택 과장은 또 故 홍정기 일병에 대해서, "사실상 군에서 초기 조치가 잘못됐던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있고 잘못했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들이 '국방부가 만나주지 않는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의료 체계 개선안 마련이 초기 단계이고 초안도 검토하지 못한 단계라 그것이 마련되면 다 말씀드리고 의견을 구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유족들이 수사 자료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상황을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에 대해서, 조진훈 군 의문사조사제도개선추진단 영현관리심사제도팀장은 대한변호사협회와 협조해 60명의 변호사들이 유족에게 법률적 지원을 하는 제도를 현재 시범 운영 중이고 내년부터 전면 시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공정한 수사를 위해 사건 수사권을 해당 부대가 아니라 각 군 본부 헌병이 맡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순택 국방부 보건정책과장은 故 홍정기 일병에 대해서 그동안 의무복무자가 취사병이나 제설, 제초 작업 등을 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국가유공자로 인정되지 못했다. 국가 수호·안전 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 관련이 있는 직무의 범위 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보훈처 이정현 등록관리담당 총괄사무관은 지난 7월 2일에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등을 통해 이 직무 범위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의무복무 중 사망한 경우에는 특별히 고의 중과실 등이 없으면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라며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도 같은 시기 입법예고가 마무리됐고 관련 부처 협의가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의무복무자가 전역 이후 2년이 지난 뒤 복무 중 치료받은 질병으로 사망했거나 업무 과중 등으로 자살한 경우에도 보훈보상대상자로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 "당신 자식이라도 이랬겠느냐"

간담회 진행을 맡았던 김종대 의원은 차후 국회를 통해 국방부와 어머니들 사이의 소통을 계속 해 나가자고 말하며 크게 세 가지로 내용을 정리했다. 군 내 의료 체계 개선을 통해 병영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군피해치유센터 등을 통한 장기적인 돌봄과 뒷받침을 해야 한다는 것, 피해자에게 그에 걸맞고 충분한 예우를 해줄 것, 이렇게 세 가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제껏 이것이 이뤄지지 않아, 자식을 잃은 슬픔 하나만을 오롯이 느끼기에도 벅찼던 어머니들이 진상 규명 과정을 거치며 또 다른 분노까지 감당해야 했다. 어머니들이 간담회 자리에서 그리고 따로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가장 많이 했던 말 중에 하나는 바로 "당신 자식이라도 이랬겠느냐"다. 내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 일이라고 여기는 순간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 눈앞에 닥친 항의와 요구를 넘기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대책에 대책을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새롭게 나올 군 의료 체계 개선안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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