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특수활동비'다. 그럼에도 특활비의 정의를 피해갈 수 없어 간단히 적는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을 보면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가 특수활동비이다. 특활비의 '특수활동'은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이다.
정보 수집이나 사건 수사는 어느 정도 구체적인데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은 뭘까. 나랏일을 한다는 이들이 '국정수행활동'을 폭넓게 해석하면 할수록 특활비를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은 확장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해외출장을 가고 상금으로 쓰고 심지어 생활비에 보태 쓰고도 내역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용도 외로 사용한 적이 없다"고 과감히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특활비 정보공개 청구를 하게 된 이유는
이런 특활비 관행이 달라지게 된 계기는, 참여연대가 국회 사무처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 청구, 그리고 그 이후 소송 덕분이다. 국회는 "사용 내역을 공개하면 국익을 해치고 행정부 감시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고 버텼지만 1, 2심 모두 패소했고 지난 5월 3일 대법원은 원심대로 확정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특수활동비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된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국회는 청구인인 참여연대에 2011~2013년 239억 원에 해당하는 지출내역서를 공개했다.(기간이 이렇게 제한된 이유는 첫 정보공개 청구가 2015년 5월이었기 때문이다. 3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계기는 계기일 뿐, 근거는 근거일 뿐 알아서 바뀌지 않는다. 또 다른 계기가 필요했다. 그런 걸 만드는 게 시민단체와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앞다퉈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 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마부작침]은 최근 10년 동안 특활비를 단 한 번이라도 예산으로 편성한 적이 있는 기관 전체에 대해 청구를 넣었다.
● '공개'와 '부분 공개', '비공개'의 묘한 차이
예산 전체가 특활비라며 비공개라 하는 국가정보원을 제외하고 함께 관리한다는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한 개 기관,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을 역시 한 개 기관으로 치면 25개 기관이었다. 6개 기관은 과거 특활비를 사용할 때가 있었으나 부처 통폐합과 조정 등을 거쳐 현재는 특활비 예산이 없다고 밝혀와 '부존재'로 분류했다. 그러면 남은 건 19개 기관이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18조에 따라 이의 신청했다. 해당 조항에는 "청구인이 정보공개와 관련한 공공기관의 비공개 결정 또는 부분 공개 결정에 대하여 불복이 있거나 20일이 경과하도록 결정이 없으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의 신청을 받은 기관은 7일 이내에 답해야 하는데 7일 연장이 가능한 데다 휴일은 제외한 계산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의 신청까지 거치니 최종 결과 통보를 받기까지는 두 달가량 소요됐다.
이의 신청 결과 '부분공개'와 '비공개'였던 기관 3곳이 이의신청을 '부분 인용'해 약간의 정보를 '부분 공개'했다. 다시 정리하면 공개 3, 부분공개(부분인용 포함) 8, 비공개 8이다.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 먼저 대법원과 민주평통은 특활비 사용내역을 공개하긴 했다. 이 공개한 내용을 살펴보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억 2천여만 원을 지급받는 등 주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거의 '제2의 월급'처럼 받아간 사실이 확인됐다. 금액이 더 적지만 민주평통 또한 수석의장과 사무처장 등이 비슷하게 수령했다. 두 기관 모두 어디에 썼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비공개'로 통지한 기관들은 차라리 명확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9조에 따라 "공개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거나 "직무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에 해당한다며 '비공개'로 일관했다. 국회의 경우엔 이미 3년 치를 공개했는데도 2014년 이후의 특활비 내역 공개는 거부했다.
● '4분의 1' 폐지와 '0.2%' 폐지 사이의 거리
다음은 특활비 폐지와 축소에 대해서다. 국회의 특활비 사용 실태가 3년치이긴 하나 비교적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거셌다. 그러자 국회는 절반을 줄이겠다고 하다가 폐지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한 발 더 나갔다가 결국은 '국익을 위한 최소한'만 남기고 감축하는 수순으로 갔다. 2018년 예산 62억 원에 대비해 84.4%를 줄인 10억 원만 2019년 예산안에 편성했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조정될 여지는 있으나 이를 더 늘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7월 이후 국회로 특활비 사용에 대한 비난이 집중되자, 국회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부가 사용하는 특활비가 훨씬 크고 많은데 국회만 도마 위에 올라간 고기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답을 내놨다. 이낙연 총리는 "기밀 유지가 필요하다든가 하는 최소한의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의 특수활동비를 투명하게 하고 대폭적으로 삭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고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일부 부처는 특활비를 다 없애고 전체적으로 금액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앞서 특활비의 정의에서는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이 무엇인지 막연하다고 적었다. 각 기관들이 정보공개 청구에서 답한 내용에서는 '현저히'라는 표현이 애매했다. 100에서 50을 침해하면 현저한 것인지, 20만 침해해도 현저한 것인지 정하기 나름이다. 총리와 부총리의 답변에서는 '대폭적으로'와 '전체적으로'가 그랬다. 이분들이 생각하는 기준이 어디까지인 건지 모호했다.
그래서 따져봤다. 2018년까지는 특활비가 예산에 편성돼 있다가 현재 국회에 제출된 2019년 예산안에서는 빠진 기관들, 국민권익위원회, 대법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방위사업청 5개 기관이다. 2018년에 특활비가 편성된 기관은 19개인데(국정원 제외), 내년에는 14개로 줄어든다. 기관 수로만 보면 무려 4분의 1이 감소되는 것 같다. 여기에 총액도 2018년 3,168억 원에서 2,876억 원으로 9.2%를 감축했다. 국회 심사 전이라 더 줄어들 수도 있지만 거의 10% 정도를 줄인 것이다. 대폭적이고 전체적인 감축으로 보인다. 총리와 부총리가 거짓말을 하는 분들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9.2% 줄인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계속 제외했던 국가정보원을 보면 조금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예산 전체가 특수활동비라며 총액은 물론 예산안 심사도 정보위원회를 통해 이뤄지는 국정원이 2019년 예산안부터는 이름을 바꿨다. 특활비 대신 '안보비'라는 이름으로, 2018년 예산은 4,631억 원이었는데 이보다 979억 원 많은 5,610억 원을 2019년 예산안으로 마련했다. 국정원 예산 증액은 특활비가 아니니 특활비는 늘어난 것이 아니다. 안보비가 신설됐을 뿐이다. 총리와 부총리는 역시 거짓말하지 않았다. 그러면 진실을 말한 것일까?
●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다시 '특수활동비'다.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가 특수활동비이다.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국익을 위한 국정수행에 내역을 상세히 공개할 수 없는 비용이 많이 들 것으로 짐작된다. 남북 관계가 더 진전될수록 그런 비용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년 8천억 원가량씩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돈인데도 제대로, 목적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의문이 많다. 그간 조금 상세한 내역이 공개됐던 국회나 대법원 등의 특활비에서는 제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됐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답은 나와 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하다든가 하는 최소한의 경우를 제외하고 정부의 특수활동비를 투명하게 하고 대폭적으로 삭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낙연 총리의 말씀이다.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픽: 김그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