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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쟁영웅의 마지막 인사…"국민 위해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취재파일] 전쟁영웅의 마지막 인사…"국민 위해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동료 의원님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왼쪽 눈 위에 아물지 않은 수술 자국엔 그의 인생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뇌종양 수술 직후 의회에 선 팔순의 노(老) 정객은, 마지막을 예비한 듯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지난해 7월 추경예산 편성 문제로 우리나라 국회에선 여야가 극한 대립을 벌였습니다. 정작 국회 본회의 표결 당일엔 정족수 미달 사태를 빚을 뻔했습니다. 해외 출장, 지역 활동, 개인 사정을 들어 표결에 우수수 빠진 건 여야 할 것 없었습니다.

딱 그 무렵이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뇌종양 수술 직후에 미국의 한 상원의원은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지역구 애리조나에서 의회가 있는 워싱턴 D.C까지 3,080㎞를 날아왔습니다. 그는 "의회 업무는 나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출처: abcnews.com
'의무, 명예, 조국.'

이 세 단어로 자신을 요약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현지시간 25일 향년 81세로 별세했습니다. 매케인은 미국 보수 진영의 거두이면서도 진영을 아우르는 초당적 지지와 미국 사회의 존경을 받아온 공화당 내 원로 정치인입니다. 지역구 애리조나에서 상원의원만 내리 6선을 지냈습니다. 군인 출신으로 명예와 국가안보, 의정 활동을 중시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전쟁영웅의 신화…"그 아버지에 그 아들"

매케인은 '살아 있는 전쟁영웅'으로 불렸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에 걸쳐 자신도 미 해군에서 22년간 복무한 군인 출신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인 1967년, 자신이 몰던 비행기가 격추돼 베트남군에 인질로 잡혀 5년간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매케인-베트남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일화는 지금도 미국 참전용사들의 애국심과 자존심의 상징입니다. 해군 사령관이었던 매케인의 아버지는 '아들을 풀어주겠다'는 월맹군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들이 잡혀있던 하노이 폭격을 명령했습니다. 미 해군 사령관인 아버지와 '딜'을 위해 매케인을 조기 석방해주겠다는 제안에 대해 매케인 본인은 "나보다 먼저 붙잡힌 포로가 모두 석방될 때까지 풀려날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5년 만에 풀려난 매케인은 당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팔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릴 수 없게 됐고,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군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후 1982년 하원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됩니다.

● '정치의 품격'을 보여주다

1986년 애리조나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내리 6선을 지냈지만, 매케인은 '대통령의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0년엔 공화당 경선에서 '아들 부시'로 불리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졌고, 2008년 대선에선 공화당 후보로 지명됐지만 민주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패했습니다. CNN방송은 "매케인은 대통령이 되진 못했으나, 대통령들의 '저격수'가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진영을 넘나드는 촌철살인의 비판과 영향력은 대통령들조차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단 뜻입니다. 이런 정치적 대결에서는 칼날같이 치열했지만, 정치의 품격은 이런 것이란 걸 보여준 매케인의 일화도 유명합니다.

2008년 대선 당시 유세장에서 한 공화당 지지자가 마이크를 잡고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공개 비난했습니다. 영상 속 빨간색 옷을 입은 여성 지지자가 "오바마는 아랍인이고 믿을 수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러자 매케인은 해당 지지자를 향해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곤 "오바마는 나와 여러 문제에서 근본적으로 생각이 다르긴 하지만, 그는 품격 있는 가족의 구성원이자 훌륭한 미국 시민"이라고 답했습니다. 공화당 소속 참석자들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름(politically correct)'을 몸소 보여준 겁니다.

이후 선거에서 진 뒤 패배를 인정하며 오바마 지지를 호소한 연설은 지금도 '명연설'로 회자됩니다. "역사적인 선거였습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위한 특별한 순간입니다. 저는 미국이 근면과 의지를 지닌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했다고 믿습니다."
오바마, 매케인, 페이스북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매케인 의원의 부고 소식에 곧바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오바마는 "매케인과는 세대도 달랐고 출신 배경도 너무나 달랐고 그래서 정치적으로도 최고로 치열하게 다퉜다"면서, "그래도 '좀 더 숭고한 것', 여러 세대에 걸쳐 미국인과 이민자들이 함께 싸우고, 전진하며 지키고자 했던 이상에 대한 신의를 공유했다"고 애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숭고한 이상을 위해 복무하는 '공복'으로서의 기회를 누구보다 숭고한 것으로 여겼다"고 매케인을 회고했습니다.
문재인-매케인, 페이스북
● 북한 문제 관심 많은 '지한파'…문 대통령도 애도

'전쟁영웅' 매케인은 상원에서 군사위원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주한미군, 남북관계, 북핵문제에 관심이 많은 '지한파'로 분류돼 우리 정치인들과도 교류해왔습니다. 지난해 6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매케인 의원을 만나 사드 문제 등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문 대통령도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과 우정, 따뜻한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라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 당리당략 뛰어넘은 '매버릭'…"트럼프는 장례식도 오지 말라"

매케인은 '매버릭'으로 불렸습니다. 한 TV 방송에서는 스스로 '매버릭'이라고도 했습니다. 당리당략에 상관없이 독자노선을 구축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보였던 그에게 이단아, 독불장군이라는 뜻으로 '매버릭'이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그가 매버릭을 자청한 건 '미국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정파도, 당리당략도 뛰어넘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기인한 걸로 풀이됩니다.

그래서 초당적 존경과 지지를 받았지만, 유독 죽는 순간까지 매케인이 용납하지 않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같은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매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적 가치와 품격을 훼손했다고 비판해 왔습니다. 매케인의 측근들은 "트럼프 대통령은 장례식에 초대하지 말라는 게 매케인의 뜻"이라고 전했습니다.

▶ [영상 보러가기] 존 매케인, '매버릭의 탄생' (뉴욕타임스 회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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