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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가 '재판거래'라는 말을 만든 이유

임찬종 기자 cjyim@sbs.co.kr

작성 2018.08.13 10:10 수정 2018.08.13 18:1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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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 포스터미국 드라마 '빌리언스'에는 검사가 판사를 체포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소한 범죄를 저지른 소수인종 청소년들에게 가혹한 형을 선고해온 어떤 판사의 은밀한 거래가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 판사에게 징역형을 선고받은 청소년들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교도소로 보내졌다. 재소자 수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교도소 측은 판사에게 더 많은 청소년을 보내달라며 뇌물을 줬다. 판사는 제대로 된 변호사를 선임하기 힘든 소수인종 청소년에게 집중적으로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하다가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같은 '재판거래'는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2008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터진 '현금 거래된 아이들 사건(Kids for cash scandal)'이다. 당시 FBI는 마크 시아바렐라 판사를 교도소 운영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체포했다. 시아바렐라 판사는 2003년부터 체포되기 직전까지 4천 명이 넘는 청소년들을 교도소로 보내고, 그 대가로 민간 교도소 운영업자들로부터 100만 달러가 넘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아바렐라 판사에겐 징역 28년이 선고됐다. 마크 커내헌이라는 판사도 같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7년 6개월을 받았다.

● '재판거래',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재판거래'라는 말을 만든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을 언급한 것은 '재판거래' 사태를 대하는 한국의 어떤 판사들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법원에서 보낸 세월이 긴 판사일 수록 "재판거래"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재판거래'는 그 자체로 있을 수도 없고, 설사 존재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적지 않은 판사들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대법관 일동"의 태도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지난 6월 15일, "대법관 일동"은 "법원 판결에 마치 어떠한 의혹이라도 있는 양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하여는 당해 사건들에 관여하였던 대법관들을 포함하여 대법관들 모두가 대법원 재판의 독립에 관하여 어떠한 의혹도 있을 수 없다는 데 견해가 일치되었습니다."라며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입장을 밝혔다. 성명에 동참한 대법관 가운데 상당수는 국정원 댓글 사건 등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재판에 관여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의혹의 근거가 된 법원행정처 문건을 직접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태도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의 영장 기각 사유에서도 발견된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등에 대한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와 전·현직 판사 4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이 전한 판사의 기각 사유 가운데 하나는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내용은 부적절하지만 일개 심의관이 작성한 문건에 따라 대한민국 대법관이 재판한다고 보기 어렵다"였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에는 법원에 대한 그들 자신의 신뢰 외에는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 판사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와 관계 없이, 한국 판사들이 미국 판사들보다 특별히 더 순수하고 특별히 더 공정하다고 사람들이 믿어야 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 미국 법원에서 재판거래가 있었다면 한국 법원에서도 재판거래가 있었을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 상식적일 것이다.

특히 판사들에 대한 인사를 포함해 전국의 법원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된 문건에서 '법원의 이익을 위해 재판의 선고를 미루는 방안을 검토'하거나, '판사 비리 스캔들을 수습하기 위해 재판을 이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발견됐는데도 '재판거래는 있을 수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은 지나치게 오만하거나, 과도하게 순진한 요구 아닐까?

(※ 미국 판사들의 개인비리와 한국 법원행정처의 조직적 재판거래 의혹을 평면 비교할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조직을 위해 상고법원을 추진해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관여한 판사들이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일을 진행했을 가능성도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
법원● '재판거래'란 말을 만든 이유

내가 '재판거래'란 말을 만든 이유도 판사들의 이같은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정당한 이름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이 중대한 의혹이 무시될 수도 있겠다고 나는 판단했다.

사실 지난 5월 25일 대법원이 구성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이하 '특별조사단')이 조사보고서를 발표할 때까지 '재판거래' 의혹은 관심의 초점이 아니었다. 당시 언론과 판사들의 관심은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판사들을 사찰하고, 판사들 성향을 분류한 파일을 작성했다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쏠려 있었다.

그러나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니 더 큰 문제가 눈에 띄었다. 사법부가 재판을 청와대에 대한 "협력 사례"로 내세우거나,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소송을 법원행정처가 스스로 기획하거나, 재판에 관여한 아무 권한이 없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된 보고서를 만들어 재판연구관에게 전달한 정황 등이 포착된 것이다. 보고서는 의혹을 아래와 같이 요약했다.

"재판에 영향을 실제 미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상고심의 절박한 상황을 해결하여야 한다는 미명 하에 판결을 거래나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들이 발견되었음." (조사보고서, 183쪽, 2018년 5월 25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려 있는 재판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면 이는 법원의 존립 기반 자체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특별조사단도 "국민이 (중략) 사법부에게 부여한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장치를 사법부 자신이 부인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스스로 그 존재의 근거를 붕괴시킨 것"(조사보고서, 183쪽)이라고 지적했다. 당시까지 언론이 사용했던 '사법부 블랙리스트'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란 단어만으로는 이 의혹의 중대성을 정당하게 전달하기 어려웠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담아 5월 28일 "핵심은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재판거래'다"라는 취재파일을 썼다. '재판거래'가 사실이라면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흔들리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재판 당사자들의 운명을 뒤바꾸고 때로는 인생을 파괴할 수 있는 범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후 많은 언론사가 '재판거래'라는 용어를 채택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라고 불리던 사태는 '재판거래' 또는 '사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 처음 '재판거래'라는 단어를 쓴 취재파일에서 언급했듯이 이 단어는 '부당거래'란 영화와 관련이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부당거래'는 경찰관과 검사가 사건을 조작하기 위해 부당한 거래를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나로서는 영화에 등장하는 '부당거래'보다 판결이나 재판이 어떤 목적을 위해 거래됐다는 의혹이 훨씬 부당하게 느껴졌다. '재판거래'라는 말이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 이미 확정된 판결을 포장한 것일 뿐?

'재판거래'라는 단어에 대해 많은 판사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주된 논리는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문건인 "정부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등을 실제로 재판이 거래된 정황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청와대가 상고법원을 지지해주길 바라던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에 협력한 사례로 KTX 승무원 관련 판결 등 많은 재판을 언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대화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이미 확정된 판결들을 마치 청와대 뜻대로 선고한 것인양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확정된 재판들에 대한 사후적 포장일 뿐 실제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말이었다.

물론 문제의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도 당시 진행 중이었던 재판에 대해 언급한 대목이 곳곳에 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그 자체로 온당하지 않다. (예를 들어, 발레오만도 노동조합 조직형태 변경 사건의 경우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란 사실이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문건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특별조사단이 발견했지만 공개하지 않았던 문건들이 순차적으로 공개되면서, 그리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 더 많은 자료가 확보되면서 '재판거래' 정황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2년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깨고 일본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 등에 돌려보냈다. 이후 서울고법 등은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피해자들 승소 취지로 판결했고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왔다.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사건이 대법원으로 되돌아왔기 때문에 통상적인 경우라면 큰 논란 없이 신속하게 판결이 확정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2013년 9월에 작성된 문건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신속하게 결론을 확정하는 1안과 함께 "재판을 미뤄 (한일관계를 우려해 판결을 확정하지 말아달라는 입장인) 외교부에 절차적 만족감을 주는" 2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외교부 입장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로 '해외 파견 법관 자리'와 '고위 법관 해외 출장시 의전'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신속히 끝날 것이라 예상됐던 이 재판은 마치 2안이 채택이라도 된 것처럼 지금까지 5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계류 중이다. 이 시기에 "2안"에서 언급된 해외 공관에 파견되는 판사 보직은 두 자리 늘어났다. 행정 기구에 불과해 특정 재판에 대해 검토할 이유가 없는 법원행정처가 굳이 강제징용 재판의 절차를 검토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도 이상한데, 마침 그 보고서가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을 예언한듯 보이는 것은 단순한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재판 개입 정황이 더욱 강하게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2015년 1월 18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최민호 판사 관련 대응 방안'에 대한 문건을 생산했다. 현직 판사였던 최민호가 그날 새벽 '사채왕'으로 불리는 거물 사채업자로부터 2억 6천만 원을 받았다고 검찰에 자백한 상황이었다. 이 자백 내용을 입수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이 사실이 알려지면 "메가톤급 후폭풍"이 예상된다면서 대응책을 제시한다.

대응책은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이석기 의원 사건을 1월 22일에 선고"하는 방안이었다.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선고하면 최민호 판사 사건에 쏠릴 "언론의 관심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고 문건에 밝혔다. 다음 날일 1월 19일(월), 대법원은 출입기자단에 1월 22일(목)에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선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선고 사흘 뒤인 1월 25일, 법원행정처는 후속 문건을 생산했다. 이 문건에는 "대응전략 주효해 사건 수습 국면"이라고 적혀 있다. 1월 22일에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을 선고해서 언론의 관심을 전환해야 한다는 "대응전략"이 실제로 실행됐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문장이다. 만약 법원행정처에서 이 문건을 작성한 사람이 거짓말한 것이 아니라면, 최민호 판사 사건을 덮으려는 법원행정처의 의도가 실제로 재판에 개입됐다는 뜻이다. 문건엔 심지어 "이번 사태 수습과 관련한 경험과 노하우 전수를 위해 위기 대응 자료 정리가 필요하다"고 등장한다. 모두 재판개입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의심할 수 있는 정황들이다.

● '재판거래 의혹'이란 말이 힘을 얻은 이유
재판거래그럼에도 재판거래이란 말이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판사들이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이 모두 사실이라도 재판절차의 연기나 조율 정도에 불과하지 재판의 결과를 뒤바꾼 것으로 보이는 사례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법대에 앉은 판사들에게 재판 일정을 조정하고 절차를 연기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보일지 몰라도, 재판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중대한 문제일 수 있다. 강제징용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 9명 중에 7명은 소송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적어도 이들에게는 판결이 언제 선고되느냐는 삶과 죽음의 차이에 대한 문제였다. '재판절차의 거래' 과 '재판거래' 의혹을 굳이 구분하려는 시도가 구차할 뿐만 아니라 공허한 이유다.

'재판거래'는 법원과 재판의 본질에 대한 의혹이다. 본질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판사들로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언하고 부인하기에는 이미 드러난 많은 정황과 의혹이 너무나 많다. 그런 정황이 없었다면 애초에 나같은 일개 기자가 만든 '재판거래'라는 말이 지금과 같은 파급력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법원이 해야 할 일은 '재판거래'라는 말이 터무니 없는 오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재판거래' 의혹 자체가 나중에 사실로 밝혀지든 아니든, 지금 상황에서 국민이 '재판거래'를 의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란 당연한 사실부터 받아들이는 것이다.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선제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그나마 법원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 모든 사태가 정리되면 어떤 의혹은 사실로 밝혀지고, 또 어떤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재판거래 의혹 못지 않게 의혹을 대하는 법원의 자세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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