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토크] 한여름 밤의 떡볶이

하륭 기자 ryung@sbs.co.kr

작성 2018.08.03 09:56 수정 2018.08.03 09:57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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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보다 더 덥다는 2018년 여름. 퇴근 후 시장 떡볶이를 종종 먹는다. 날이 더워 땀 흘리며 먹을 생각을 하면 아찔하지만, 그 집 떡볶이가 맛있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저녁 식사로 해결한다.

의자 다섯 개가 전부인 떡볶이 포장마차. 낡은 선풍기는 손님 쪽을 향해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여름 열기로 달궈진 철판에 시뻘겋게 익은 떡볶이를 휘저으며 요리하고 있다. “안 더우세요? 선풍기 회전을 하세요”라 말하니 “그럼 뜨거운 음식 공기가 양쪽으로 다 옮겨다니더라고...”라 말씀하신다.

이렇게 다닌 지 1년 째. 주인아주머니가 이제 좀 얼굴을 기억할만하지만, 매번 가면 새로운 손님을 대하듯 한다. 갈 때마다 손님도 거의 없다. 한 번은 서운하다고 한마디 했더니, 너무 미안해 하신다. 아주머니는 뇌 수술 이후에 사람을 잘 기억 못 한다고 다음엔 꼭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그 다음 날에도 필자는 새 손님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이런 행동이 애정결핍에서 온 건 아니다. 다닌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때, 떡볶이와 순대를 같이 먹기엔 양이 많아서 반반 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아주머니는 살짝 웃으며 떡볶이와 순대를 함께 주셨다. 이게 사실 여긴 없는 메뉴 구성이니깐. 내가 단골인 걸 알면 반반씩 달라고 말하기 덜 미안할 것 같았다. 늘 새 손님으로 자리에 앉으니, 늘 처음인 것처럼 부탁을 드릴 수 밖에 없다.

봄, 가을에도 대부분 혼자 먹었는데 한 여름에 두 자리가 차있다. 이 더위에 누가 먹고있나 싶어서 쳐다보니 20대 초반의 숙녀들이다. 한 사람은 튀김 한 접시를, 다른 한 사람은 떡볶이 1인분을 먹고 있다. 그 두 사람은 끊임없이 날 힐끔힐끔 쳐다봤다. 사실 처음부터 눈이 마주쳤다. 그 두 분은 지적장애가 있는 분들이었다. 눈을 둘 곳이 없어 소설책을 읽으며 먹고 있으니 옆에서 “공부하면서 먹는다!”라고 외친다. 아주머니는 옆 사람 신경 쓰지 말고 먹으라고 한마디 한다. 둘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서로 ‘남자친구가 있네 없네’하며 수다를 떤다. 아주머니는 같이 이야기하자며 포장마차 분위기는 시끌벅적해진다.

두 분이 거의 다 먹고 일어나려 하자 아주머니가 말한다. “떡볶이 좀 싸줄까?” 둘은 배부르다고 말한다. “배부르면 집에 두고 먹으면 되지”라며 봉지 안으로 야무지게 떡볶이를 넣는다. 인심이 좋다. 남친 있는 게 비밀이라던 분이 아주머니한테 말한다.

“나 순대 2000원 싸줘.”
“배부르다며? 그냥 떡볶이 준 것만 먹어.”
“아니야. 2000원 싸줘.”

이미 그 여자 분은 팔을 곧게 펴서 아주머니 얼굴 앞으로 지폐 두 장을 내밀었다. 후회하지 말라며 돈을 받으신다. 그러고는 ‘순대 양이 많네 적네’하며 또 한바탕 말씨름이 이어진다. 다툼과는 상관없이 아주머니의 손은 재빠르게 순대를 포장했다. 두둑한 순대 봉지를 주인 아주머니가 내밀자 그녀들은 “이거 아줌마 먹어!”라 말한다. 순대는 배부른 두 숙녀들의 선물이었다. 미소 짓는 아주머니의 입술 끝에 시원해 보이는 땀 방울이 맺혀 있었다.

(영상 취재: 하 륭)